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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pr 06. 2022

9번의 일

저성과자에 관한 이야기

9번의 일. 김혜진 저. 2019.10.02. 한겨레출판(주). 258쪽. 14,000원.

   

김혜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어비’, 장편소설 ‘중앙역’ 등이 있다.


  이 소설은 KT 전신인 속칭 ‘전화국’에 취직해서 20년을 근무한 화자는 회사에서 퇴직 압력을 받는다. ‘저성과자’로 교육을 갔다 왔다. 세 번째 교육을 갔다 오면 퇴직을 해야 한다. 아직 갚아야 할 대출금, 고등학생인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 부모님 병원비 등 돈 들어갈 일만 있는데 지금 퇴직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내도 맞벌이로 마트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다. 10년이나 남은 퇴직까지 버텨야 한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퇴직도 하고, 새로 생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혼자 남아 본사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발령이 나고 ‘고장수리’라는 전공과는 다른 일에 투입된다.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민원이 발생하고 점점 퇴사 압력은 거세진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자기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잘 못 만난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아는 삶의 방식이란 특별할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자신이 자라온 것과 비슷한 가정을 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일상. 완벽한 하루. 그런 것들을 욕심내어본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 완벽함과 충만함 같은 것들은 언제나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 속에만 머무는 것이었고,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담벼락에 붙은 현수막, 경고무 같은 것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낡고 해져서 분명 오래전에 붙었을 이것들을 왜 한 번도 보지 못한 걸까. 왜 무슨 일이든 자신에게 닥치고 나서야 보게 되고 듣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것들을 미리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어느 때고 조롱과 야유는 쉬운 것이었다. 무엇인가 믿고 기다리고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과 수고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얼마간 자신을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퇴직을 대비해서 대출을 받고 어렵게 구입한 주택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대출이자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헐값에 처분하고 남들은 쉽게 버는 돈을 자신은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없다.


  책 제목 ‘아홉 번의 일’은 화자가 들어간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된 이후 겪어야 하는 업무를 말한다.

언제나 서민의 삶은 팍팍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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