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봄날은 간다

[봄날의 7 대 7]

by 차지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버스커 버스커 — 봄바람 휘날리며


봄이 되면 꼭 들려오는 이 노래.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렸을 그 멜로디가
나에게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이유 없이 들뜨고,

별 이유 없이 기대하게 되는,
나에게 봄은 늘 그런 계절이다.


새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아직 비어있는 첫 페이지를 보며

수많은 가능성을 상상하는 날들.


몽글몽글한 설렘이 살며시 가슴속에

피어오르던 때.

그해의 봄은 특히나 더 유난했다.


흩날리던 벚꽃은 마치
내 앞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꽃길 같았고,
작게 돋아나는 새싹들은 나의 무안한 가능성들을 일깨워 주는 거 같았다

걸음 한 걸음 을 때마다

"어서 와, 봄이야" 라며


그 길 전체가

나를 축복하고 있는 것만 같던 시절


유난히도 빛나던

그해의, 나의 봄.



봄이 오면 늘 떠오르는 추억 하나가 있다.
모든 게 설레기만 했던 그 시절,


스무 살. 경주에서의 7대 7 미팅.

그날의 나는 정말 소풍 가는 아이 같았다.
새하얀 벚꽃이 흩날리는 경주에서 미팅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극 F인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14인분의 김밥을 바리바리 싸고,
과자며 음료며 이것저것 챙기느라
두 손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예뻤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아차렸던 때.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처하고
그저 그날의 봄 향기에 취해
내 감성의 행복을 실컷 누리던 스무 살의 나.

돗자리 위에 둘러앉은 열네 명의 사람들.
처음 보는 일곱 명의 남자들.
어색함 반, 수줍음 반으로 김밥을 나눠 먹고
무안함을 감추려 음료를 들이켜던 순간들.

서로 힐끔거리던 눈길 사이로
벚꽃은 천천히 흩날리고,


따뜻한 봄바람은,

서툰 우리들을 감싸 안는다.


그 시절의 ‘썸’은 정말 그렇게 조용하고 서툴렀다.

다행히 친구 중에는
진짜 개그맨보다 더 웃긴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스르르 풀렸고, 웃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나는 유난히 빛났던 것 같다.


김밥 때문인지,
F의 감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스무 살의 봄이
나를 예쁘게 비춰주고 있었던 건지.


어느 정도 친해질 무렵

다가온 대망의 '사랑의 짝대기' 시간


젓가락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가리켜

서로를 향하면 커플이 되는 게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유치하지만,

그땐 모두가 하나같이 진지했던 거 같다.


"하나. 둘. 셋!"


_(헉! )_


순간 놀랍게도, 모든 남자들의 젓가락이

모두 나를 향해 있는 것 아닌가.


부끄러움이 많던 나는 누구를 찍을 용기도

없어 나를 향해 찍고 말았다.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하하하:)


때마침,

벚꽃은 축하라도 하듯, 폭죽 같은

꽃잎들을 내 머리 위로 한 껏 흩날려주신다


나는 그렇게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절로 피어나고,

친구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속으로 만세를 불렀던 그해의 봄,
가슴 한쪽이 여전히 따뜻해진다.


가끔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또 장난스럽게 외치곤 한다.
“야, 나 몰표 받은 여자야~~”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 다~그 김밥 때문이~ 다잉"..

(피식:가소로운 것들~ㅎ)


그리고 정말, 놀라운 사실 하나는

지금의 그 친구들은 모두 다 시집을 갔고

애 셋 달린 '아줌마'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때,

남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나는

아직도 혼자인 사실이.. 웃기지 아니한가..(웃프:웃기지만 슬프다 ㅎ )


친구들은 농담처럼 혼자인 내게 말한다

"그날의 김밥 저주가 걸린 것이야"

(하하:ㅎ)


요즘 들어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긴 한다

그때의 김밥을 14줄이나 싸던 내가,

아직도 혼자인걸 보면..


" 정영 김밥의 저주를 받은 것인가?!"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하고 말이다.


그렇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몰표를 받았던 그 여자의 봄은-


그해,

그날의 나는

진짜 '봄'이었다.

벚꽃만 봐도 피식 웃으며 그때가

떠오르는 내 청춘의 봄날,


그 봄날은

조용히 또.. 그렇게 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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