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그녀는 명랑이

[맹랑 소녀]

by 차지윤


워라밸(Work-Life Balance)

우리는 워라밸을 흔히 ‘일과 삶의 균형’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품은 뜻은 그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

워라밸이란, 돈이라는 현실과
삶이라는 온기를 한 손에 자연스럽게 들고 걸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돈이 주는 여유,

시간이 주는 쉼,
그리고 그 모두 속에서도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는 마음의 중심.

일이 삶을 잡아먹지도 않고,
삶이 일에 치여 사라지지도 않는 상태.

돈이란 숫자에 흔들리지 않고,
하루의 시간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그들을 워라밸을 가진 사람이라 부른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사치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부.
그것이 워라밸이다.


돌아보면, 나의 30대는

워라밸의 한가운데였다.
그게 얼마나 귀한 시기였는지도 모른 채,
내 전성기는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단 한 번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한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서 했고,
즐겁게 하니 늘 여유가 따라왔다.
그 여유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그 시절의 나는 절실함도,

절박함도 없었다.


인생을 즐기기 바빴고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넘쳐났던
그야말로 명랑한 아이였다.

무언가 하고 싶으면 주저 없이 시도했고,
안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놓아버렸다.
“또 하면 되지, 걱정이즈 뭔들.”
그게 그때의 나다.

일생일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들도
잡았다가, 놓았다가를 아무렇지 않게 반복했다.


그게 얼마나 큰 운이었는지조차 모르고

말이다.


나의 40대, 50대도 당연히 그렇게 흘러갈 거라 믿었다. 내리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던 때였으니까..


‘열심히 벌어 열심히 쓰는 삶’이 자연스럽다고 여겼던 그 시절.

가끔 내가 과하게 보일 때면
부모님은 늘 잔소리를 하셨다.
“지금은 좋지?
나이 들면 아픈 데도 생기고,
큰돈 쓸 일도 생기고,
네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고,
내 재산은 세계여행 포토북이야.
난 나이 들어도 이렇게 살 거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큰소리치던 아이.
참으로 명랑하다 못해, 아주 맹랑한 소녀다.


젊음에 흠뻑 취해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그저 오늘의 빛만 좇아 달리던 맹랑한 소녀.

좋은 기회가 오면
또 다음 기회도 당연히 찾아올 거라 믿었고,
세상 모든 기회와 돈, 자유와 여유가
늘 내 편일 거라 착각했던 나의 청춘.

이제 와 돌아보면,
세상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며,
돈과 여유, 그리고 운이란 것도 영원히

머물지도 않는다.

또한, 그 소중함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에게서는 더 빨리 달아나버린다는 사실도.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른다.


만약 젊을 때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만약 조금 더 준비하며 살았다면,
그때의 찬란하고 자유롭던 나의 워라밸은
과연 존재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몰랐기에
나는 원 없이 해볼 수 있었고,
몰랐었기에
내 청춘은 더 찬란했다고 믿는다.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의 혹독함을 치르는 중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명랑하고, 맹랑했던 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

아주 명랑하고,
어찌나 맹랑했던지,..


지금은 그것조차,

나의 마음 한구석을 환하게 비춰주는

내 청춘이니까.

맹랑소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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