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낯선 밤]
"똑! 똑! 똑!"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식어가는 음식과, 빈 잔 몇 개
그리고 나만의 조용한 정적.
그때 알았다.
청춘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끝난다는 걸.
커다란 박수도, 특별한 장식도 없이
그저 익숙한 음악이 멈추듯
서서히 사라진다는 걸.
나는 그 조용한 자리에서
내 청춘의 마지막 페이지를
내 손으로 직접 넘기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 넘겨주지 않는
나만의 작은 작별식.
내 인생 통틀어 서글펐던 날을 꼽으라면
아마 서른아홉이었을 것이다
이유 없이 마음이 자꾸 가라앉았고, 사람들 틈에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어도, 나에게만 조용한 안개가 끼어 있는 듯했다.
마흔이라는 숫자를 코앞에 두고
내 마음은 아주 많이 무거웠나 보다
어딜 가도 밝고 명랑했던 나. 언제나 중심에 서 있던 시절. 그때는 늙지도, 지치지도 않을 것 같았던 내가 어느새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생일은 1월이다
늘 새해가 시작되면 신년회와 함께 내 생일 파티가 있었다.
친구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웃음과 음악 속에서 새해를 맞았고,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탄생도 함께 축하되곤 했다.
서른아홉의 마지막 밤,
삼십 대의 여정을 닫는 그날은 참으로
조용하고 고요하다.
한때는 누구보다 파티를 좋아하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다들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힘에 겨운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육아에, 가족 챙기기에, 새해가 주는 설렘마저 달갑지 않은 나이,
예전 같으면 모임에 빠지는 친구들에게 벌금을 씌워서라도 다 모였을 우리였다.
우리의 청춘은 늘 요란했고, 웃음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한 명이 빠져도 그럴려니 하고,
어느새 우리는 각자의 삶을 조용히 응원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눈치다.
점점 요란한 음악보다 잔잔한 분위기를 찾게 되고, 한때 큰 소리로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의 우리 모습은 어쩐지 조금씩 어색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공간이 바뀌고, 음악 취향이 달라지듯
우리의 청춘도 서서히 저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캄캄했던 밤,
그날의 조용함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낯설고, 아련하고, 마음이 헛헛했던 밤,
잔을 들고 앉아 있으면서도 생각이 끝없이 맴돌았다.
나는 정말 잘 살아온 걸까?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삼십 대에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그 질문들이 자꾸만 마음속에 맴돈다.
낯선 마흔을 앞에 둔 우리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조금은 쓸쓸하게 청춘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날 친구 둘과 나누었던 작은 한탄들이, 아마 그 나이에 우리가 가장 솔직했던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생일 앞에서 느끼는 낯섦과 서글픔.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나는 처음으로 내 청춘을 깊고 길게 돌아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서,
아직 아무것도 해놓지 못한 것 같아서,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믿었는지, 왜 스스로를 잘난 사람이라고 착각했는지..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흔들었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마흔은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꺼져가던 촛불처럼,
흔들리는 불빛처럼, 나 역시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와
숨조차 가빠질 만큼 나를 휘몰아칠 때,
나는 낯섦과 두려움 속에서
미치도록 떨고 있었다.
어쩌면.. 그 밤이야말로 다시 일어서라는,
인생이 보내온 조용한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춘이라는 핑계로 철없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내 삶의 속도를 다시 정리해야 만한다.
나라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고,
나를 다시 쌓아 올릴 시간.
이제는 핑계 댈 청춘도 없고, 철부지의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는 나이..
후회와 미련함.
낯선과 두려움.
공포와 서글픔이, 나를 삼켜버린 내 청춘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잘 가, 나의 청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