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리오 Jan 31. 2023

나는 구축 아파트에 산다(2)

이사 첫날, 우렁찬 신고식

나는 어린 시절 빌라에서 살았다. 우리 부모님이 소유한 빌라였는데, 어머니는 항상 빌라에 사는 게 불만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사는 동네에 아파트가 없다보니 근처 대형 마트가 없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나 분리 수거를 해서 버리는 것 등이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피곤하면 코를 골면서 잤다. 그럴 때마다 아마 그 소리가 아랫집에 다 들렸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집주인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코를 곤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집주인 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우리 어머니는 본인의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경기도 외곽 지역이었고 신축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식구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를 사랑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나 역시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30대였던 어느 날 모아 놓은 돈을 탈탈 털어 구축 아파트를 샀다. 나중에 독립하게 되면 이곳에서 살아야지, 와 같은 포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전세를 놓고, 나중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매수할 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의 나에게도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하고 단정하며 내부가 무척 화사한 신축 아파트. 위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단열이 잘 되며 층간소음도 별로 없는 그런 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또한 매수한 아파트가 나중에 재건축을 해서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야심찬 꿈도 있었다. 위의 계획 중 구축 아파트에 실거주한다는 선택지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다. 갑자기 정부에서 집주인은 실거주 2년을 해야 어쩌구저쩌구 와 같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그 바람에 나는 스스로 이 구축 아파트에 걸어 들어가게 되었다.



 실거주 2년만 채우고 나오면 되지 뭐.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삿짐을 챙겼다. 1인 가구이다 보니 이삿짐이 매우 간단했다. 그래서 경기도 외곽 지역에서 이 구축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이삿짐센터에 전화하지도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도 내 짐이 있어야 한다는 핑계로 가구를 하나도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은 새로 사야 했다. 새로 산 제품은 배달을 해주기에 이삿짐센터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내 짐이라고는 여행용 캐리어 두 개에 잔뜩 넣은 옷과 화장품, 세면도구, 이불 두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필요한 짐이 있으면 또다시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서 자동차로 움직이거나 지하철을 타고 옮기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행용 캐리어 두 개로 당일 이사를 끝내버리고 말았다. 



 이삿짐을 한창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윗집이라고 했다. 자기네 집에 중학생 남자아이가 있는데 집안에서 쿵쾅거리며 뛰지 말라고 계속 주의를 줘도 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소음방지가 될 것 같아 매트를 깔았는데도 시끄럽다며 전에 살던 사람은 몇 번 방문했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집 아이가 좀 시끄러워도 양해 부탁드린다며 잠시 후에는 과일을 한 봉지 가져오기도 했다. 



 이사 온 첫날, 잠을 자기 위해 이불을 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원래 나는 침대를 써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도 침대를 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 이불은 깔고, 다른 이불을 덮고 자려고 누웠다. 누워 있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과연 2년이나 혼자 살아야 하는 걸까, 중간에 결혼을 하게 되면 여기서 신혼살림을 차릴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났는데 몸이 좀 피곤했다. 이사를 하겠다고 움직였더니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때 누군가의 말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어디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 깼나 보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아파트는 층간소음에 매우 취약한 아파트라는 점을 말이다. 본의 아니게 이웃들에게 우렁찬 신고식을 해버려서 멋쩍으면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구축 아파트에 산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