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이라는 건 정말 '보편'의 의미를 다할 수 있을까?
늘 사랑스럽고 좋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나는 그건… 아직 ‘그’ 시기가 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랑의 유효기간은 2년이라는데 나는 되려 그 말은 믿지 않는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무한이다. 다만 도파민의 유효기간이 2년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만약 내 연애의 도파민이 몇 개월도 채 못 가서 사라졌다면 냉정하게 그 관계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내가 사랑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을 때를 떠올려보자면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떨 때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힘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힘들 수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당사자성 문제이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감이라는 말 밖에는... 그 시절엔 은은함이란 없었다. 아직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 끝을 살짝 벌려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느낌이랄까. 시종일관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릴 정도였다. 이런 것들이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렵지도 않았다. 분명 이후에는 두려워지는 시기가 왔지만, 그때는 세상에 그 친구와 나 둘뿐이었고, 그때 우리는 늘 함께였다.
자기 전에 A를 생각하고,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였다. 물론 지금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이유(=마음)가 다르다. A 역시 그런 종류의 감정과 호르몬에 미쳐있었다. A와 나 역시 그때의 모습과는 꽤 다르니까. 호르몬이란 생각보다 솔직하다는 사실, 그러니까 사랑에는 일련의 과정이 있는 게 맞는 것이구나. 난 보편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보편은 A와 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부정할 수 없으며 불가항력이었다. 감정까지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니 새삼 매우 큰 천장을 위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압도되기까지 했다.
사실 A와 나의 경우 둘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최악을 마주했다. 나는 A의 최악을 꺼냈고, A 역시 나의 최악을 계속해서 들추는 날이 계속됐다. A와 나는 서로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사이의 다름은 그 어떠한 차이보다 치명적이었다.
어느샌가 보이는 우리의 다름은 나를 ‘사랑이 사라질까 두려운 아이’로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나에게 먼저 찾아왔다. 상황은 끔찍해졌고 나 역시 -다른 의미로- 제정신이 아닌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상황과 내가 요동치고 있다고 한들 우리에게 도파민의 시기가 다시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비유가 우중충할 수도 있겠지만, 잘못 키운 식물처럼 소생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치달았다.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아버렸고, A와 다투던 중에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것들을 꿰뚫고 있다고 말해버리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A와 헤어지면 난 그것들을 다 말하고 네 다음 사람에게 그런 행동은 제발 하지 말라고 할 참이었는데.
난 용기가 없는 것은 분명한데, 어느 쪽으로 용기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부터 모르겠다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 싫고 모든 걸 꽉 쥐고 살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어쨌든 결정이 확실한 편이다. 모르겠다는 마음이 떠오를 적에는 몸이 터져버리는 것 같다. 죽어도 회피하기 싫은 사람. 모르겠다는 걸 하나의 결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자유로워 본 적이 없다.
이 시기가 동시에 찾아왔다면 우리는 금방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시기는 각자 다른 때에 찾아왔다.
정말 헤어지든 헤어지지 않든, 이별을 말하고 싶은 순간이나 진실로 그만하자는 말이 나올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다만 그 헤어지자는 말을 서로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건이다. 이때 개입하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믿음이다. 나는 상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지, 에 대한 고민을 상대를 사랑하나, 라는 고민보다 더 해야 할 것이다.
난 그 친구를 예전에 두 번이나 붙잡았다. 붙잡은 사람이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내가 마음을 먹고 헤어지자고 했을 때, 네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힘들지만 난 그걸 받아들여볼게, 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엔 속이 울렁거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또 붙잡은 셈이 됐다. 그 친구에게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 했고, 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돌아온 건 우리는 낡은 걸 못 버리고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난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 사랑에 대해 연대기를 써보겠다는 큰 포부가 첫 줄에 담겨 있지만, 이 글은 끝으로 갈수록 어째서인지 자신 없어진다.
사실 이런 게 사랑이라는 말로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이게 사랑인 것 같다는 문장을 적고 금방 지웠기 때문이다.
지금 각자 하는 사랑이 너무 견고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적힌 문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읽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언젠간 헤어짐을 고려하는 시기가 올 거라고 저주하는 글도 아니고, 지레 겁먹으라고 쓴 글도 아니다.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건 한 가지다. 지금 놓인 단계에 충실하길 바란다. 과거를 훑어보거나 하는 일은 사실… 건강하지 않다-내가 앞서 계속한 것이 회상이라 역설적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 결국 미래니까.
사랑은 스스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믿어야 사랑이 성립된다. 도파민이 발생해야 사랑이라는 명제를 믿고 있다면 그건 틀렸다고 과감히 말해보겠다. 다만 사랑은 어느 지점에서 시절적으로 도파민의 포자를 뿌린다.
이 사람과 미래를 꿈 꿀 수 있는지, 훗날 멋진 여행과 탐험을 하고 싶은지, 가능한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그러한 여행과 탐험에 대한 예감과 기대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간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