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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엉겅퀴(제4장)
엉겅퀴는 가시도 약이 된다.(2021.8.11.)
by
우산
Aug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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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는 실낱같이 얇은 꽃잎이 모여 자주색의 꽃송이가 된다. 아래쪽 총포에서 꽃잎을 꼭 묶어주어 꽃잎이 흩어지지 않는다.
날마다 고통, 분노, 좌절, 유혹으로 순간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어른들은 신념, 도덕, 체면, 지위라는 총포로 삶을 묶어 놓고 지지하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묶어 놓고 삶을 지지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 간의 사랑, 꿈, 친구일까.
이런 것들이 희미하여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지는 마음을 붙들 수 있는 삶의 결속이 약한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삶의 가시에 자신도 찔리고 상처가 나고, 때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 아프게 하는 사춘기의 가시는 때를 잘 넘기면 다시 그 삶의 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엉겅퀴의 뿌리, 잎 줄기, 가시 등 전체가 간 해독에 좋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마리아 엉겅퀴, 또는 밀크 시슬이라고 하며 종자에 들어있는 종자 추출액을 간질환 치료약으로도 쓴다고 한다.
엉겅퀴라는 이름은 피
를 엉키게 해서 붙었다는 말이 있다. 엉겅퀴는 '한거싀'라는 큰 가시를 뜻하는 말에서 항가새로 불리기도 했단다.
청마 유치환은 '항가새 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어느 그린이 있어 이같이 호젓이 살 수 있으니 항가새 꽃
여기도 좋으이 항가새 꽃 항가새 꽃
생각으로 살기엔 내 여기도 좋으이
하세월 가도 하늘 건너는 한 솔바람 소리도 내려오지 않는 빈 골짜기
어느 적 생긴 오솔길 있어도 옛같이 인기척 멀어
멧새 와서 인사 없이 빠알간 지뤼시 쪼다 가고
옆엣 덤불에 숨어 풀벌레 두고두고 시름없이 울다 말뿐
스며오듯 산그늘 기어내리면 아득히 외론대로 밤이 눈감고 오고
그 외롬 벗겨지면 다시 무한 겨운 하루가 있는 곳
그대 그린 항가새꽃 되어 항가새꽃 생각으로 살기엔 여기도 즐거웁거니
아아 날에 날마다 다소곳이 늘어만 가는
항가새꽃 항가새꽃
일반적으로 우리가 엉겅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억새와 가시 달린 잎과는 달리 호젓하고 인기척 멀어진 곳에서 풀벌레와 새들의 울음소리를 벗하며 호젓하게 사는 모습을 그린 시이다.
아마도 엉겅퀴의 가시가 다른 존재들과의 거리를 두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시를 두르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 누군가 그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움츠려 들거나 지치지 않고 강렬하면서도 고운 자줏빛 엉겅퀴처럼 그들도 자신의 빛을 드러내리라 생각된다.
그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는 그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일찍 찾아온 사춘기의 사랑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서영은 생각해 본다.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진이는
밝고 환한 얼굴로 학교에 왔고 여행 간 동안 수업에 참여를 못했어도 성적은 중상위권을 기록했다.
선생님, 있잖아요, 내 말 좀 들어봐 봐요라고 했다가 이제는 스스로 뒷말을 고쳐 말하곤 했다.
아버지의 일하는 현장 모습도 보고 아버지와 대화도 많이 하며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 진이의 얼굴에서 빨강 노랑 튤립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진이가 여행을 다녀오고 두어 달 지났을 때였다. 또다시 아이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서영이 소식을 듣자마자 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진이야, 어디야, 학교로 와야지."
"학교 갈까요?"
"그럼 와야지."
"알았어요. 그럼 갈게요."
아이의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뿔싸!
서영은 수업에 들어갔고 학급 교실에 돌아온 진이는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평소에는 교사에게 불손하기도 했던 녀석이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교과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수업에 내는 퀴즈까지 혼자 맞혔다고 한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가니 진이가 품에 안겨 엉엉 운다.
"진이야, 왜 그래? 선생님한테 말해봐."
" 난 이제 엄마, 아빠 필요 없어요. 다 소용없어요."
아이를 그대로 학교에 둘 수 없어서 부장 선생과 아이를 달래고 진이 아빠에게 전화 한 다음 집에 태워다 주었다.
사정은 엄마, 아빠가 다투는 소리를 듣고 그간 서로의 마음이 멀어지고 이혼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아이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가 학교를 나가 술을 사서 근처 산에 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전화를 받고 취한 채로 학교에 들어왔다.
서영이 아이 목소리가 안좋은 것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사정을 듣고 아이가 측은하기는 하지만 학교를 이탈해서 술을 마셨으니, 게다가 학교에 들어와 술에 취한 모습을 모두가 보았으니 선도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었다.
진이 아버지는 이제 창피해서 학교에 못 가겠다며 교칙대로 알아서 하시라고 한다. 그렇게 된 데는 부모도 부모의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며.
교감 선생님께서는 서영에게 그 아이 감당하기 힘들지요, 하며 전학 보내려면 보내라고 한다. 다른 교사들도 지쳐 보인다. 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결정권이 서영에게 주어졌다.
진이는 그 일 이후로 이제 부모도 상관없다며 엇나가기보다 서영을 따르고 학교 생활을 열심히 했다.
진이와 보낸 시간이 결코 쉽지 않지만, 학급에서 진이는 자신의 문제로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관계가 나쁘지도 않다.
이제 마음이 조금 열리고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보려 하는데 지금 전학 보내면 영영 그 아이는 자포자기할 것 같았다.
서영은 진이가 마음의 가시를 뽑아내는 것을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았다.
서영은 결국 진이를 품어보겠다고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했다. 매일 명언 한 구절씩 쓰고 세 줄씩 감상을 쓰는 걸로.
주말에도 엉뚱한 일을 할까 싶어 자주 안부 통화를 했다.
진이는 한동안 부모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로 자기에게는 부모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니, 부모님의 이혼은 보류되자 하루하루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진이는 서영을 잘 따랐고 무사히 졸업을 했다.
졸업식날, 진이 아버지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꾸벅 인사를 했다.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배정받는 것을 보통은 싫어 하지만, 새로운 출발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진이나 그의 아버지는 좋아했다.
지난해 제일 속을 썩였던 녀석을 졸업시킬 때는 아이가 안기는 데 서영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았지만, 진이는 웃으며 보냈다.
다음 해 서영은 진이가 다
녔던 학교와는 먼 지역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 해 겨울, 진이가 고 1 겨울 방학이 되었을 때였다. 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같은 반 했던 애들하고 선생님 보고 싶다고.
아이들 8명이 나왔다. 역에서 만나자마자 진이 녀석이 선생님, 우리 점심 사주실 거죠 한다. 그리고는 선생님, 뭐 갖고 싶으세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
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밥이나 먹자 하고 돈가스 집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음료를 마시는데 진이가 잠깐 나갔다 온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무엇인가를 내민다.
"좋은 건 아니에요."
수줍게 웃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포장을 열어보니 카키색과 갈색 줄무늬 목도리였다.
받아도 되나, 그래도 녀석의 마음이 기특해서 받아왔다.
서영은 목도리를 보며 진이 녀석이 앞으로도 잘 되기를 기도했다.
그다음 해 봄, 중간고사를 치른 후, 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흥분된 목소리였다.
" 선생님 저요, 내신 성적 2등급 받았어요. 잘했죠?"
그리고 어디에 근무하느냐고 오고 싶다고 했다. 바쁘기도 하고 거리가 있어 다음에 보자고 했다. 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1등급 받으면 또 연락하겠다고 했다.
1등급이면 어떻고 2등급이면 어떤가. 지금은 교사들에게 버릇없이 굴지 않고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니 다행
이라고 서영은 생각했다.
그 아이의 사춘기 가시는 다 빠진 것일까.
흔히들 중학생들은 사춘기의 절정이고 고등학교 때는 철이 들어 나아진다 하더니 그 말이 맞
다고 생각하며 서영은 픽 웃었다. 아무래도 중학교 교사들에게 사춘기
수당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했다.
진이의 경우 부모님이 아이를 위해 노력할 마음을 갖고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가
좋았을 것이다.
진이의 경우 부모의 갈등이나 아픔이 아이에게 큰 파도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
에, 서영은 진이의 안정을 위해 외적으로 보류된 부모님의 갈등이 내적으로도 합리적인 해결이 있길 바랐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해결이 아닌 그저 문제를 감추기만 하면 결국 아픈 어른의 마음이 아이에게
다시 역류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엉겅퀴의 꽃말은 독립, 엄격이라고 한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며 혼자서 끙끙 앓을 망정, 남들 앞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세 보이고 싶어 하는 사춘기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나 꽃부터 뿌리까지 약이 되는 엉겅퀴처럼 사춘기의 아픈 경험이 학생들 자신의 삶을 단단히 곧추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서영은 산책을 마치고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온 서영은 학교 축제 때 찍은 사진에서 진이가 분장한 얼굴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보다 재기발랄한 면도 있는 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영은 다시 한번 진이의 말투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행복할거지, 인정? 안인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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