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그 자리
스무 살 때는
지하철 역에서부터
급한 맘을 메고
계단을 서너 칸씩 뛰며
도서관으로
달렸다.
고소한 빵 냄새 맡으며
육교를 지나고
매혹적인 커피 향도
단번에 지나치며
달렸다.
도서관 100m 앞에서
더 달리려고
헐떡이는 숨 달래려
멈춰 선 자리,
돌담 옆에서
나를 측은하게 보던
홍철쭉.
따뜻한 그 눈빛 바라보다
서로 손잡고 피어있는
청춘처럼
붉은 그 꽃잎에
맘을 뺏겼다.
그 옆에 있던 소나무 가지에서
살랑이던 바람 한줄기
내 입가에
내려앉았다.
바쁜 맘을 허리춤에 묶어 놓고
다시 100m를 달렸다.
떨리는 맘으로
도서관 문 살짝 열면,
검은 머리들이
조용히 헤엄치고 있었다.
법률의 바다에서
영어의 바다에서
사회학의 바다에서
지식의 팔을 뻗고
청춘의 발장구를 쳐서
꿈의 섬으로 향했다.
봄 향기에 취했던
10분 덕에,
도서관 메뚜기가 되었던 나.
책 하나 필통 하나 가지런한 자리에서
두꺼운 사전을 펴고,
첫 페이지 글자의 바다에 발을 담그자마자
경제의 바다에 발 담근 주인이
다가왔다.
아, 내 자리가 아니다.
슬슬 옆자리에 다가가는데
책 속에서 헤엄치던 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지식의 바다에 빠지지 못한
방황하는 머리였나 보다.
주인 없는 자리를 둘러보며
소심한 맘으로
살짝 앉아보는
도서관 메뚜기.
한동안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지만
당당하게 위엄 있게 주인이 또 나타났다.
철쭉 개나리, 초록 향기 가득한
도서관 밖 세상에 맘을 뺏겼던
지식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지 못한 메뚜기는
파란 하늘과 금잔디를 찾아
꿈을 메고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