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의 초록색 눈이 동그랗게 켜지자, 하늘이와의 이별을 생각하던 나는 하늘이의 검은색 안장을 바라보며 길을 건넌다. 만 오천 원 주고 안장을 바꾸었는데 브레이크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새 자전거 값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뒤엔 또 고칠 게 없을지 걱정이 되었다. 길을 건너고 다시 올라타려고 하는데, ‘낡았다고 다 버려? 고칠 수 있으면 고쳐가며 살아야지.’ 하늘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십 년 넘게 이곳저곳을 과체중인 나와 짐을 싣고 다니다 보니 하늘이의 안장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자전거 가게에 갔더니 하늘색 안장이 없다고 해서 검은색 안장으로 바꾸고 가는 길이다. 검은색 안장을 올린 하늘이는 아무래도 낯설다. 그런데 브레이크도 바꾸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하늘이는 원래 나를 닮아 하늘색을 좋아하는 큰딸에게 사준 하늘색 자전거이다. 작은딸에게는 빨간색 자전거를, 나는 피아노를 살 때 덤으로 얻은 성인용 자전거를 탔다. 세 모녀는 이렇게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시내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타고 다녔다. 그런데 내 것과 둘째 딸 자전거는 오래전에 도둑맞는 바람에 하늘이가 내 전용 자전거가 되어 외출에 동행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단짝 친구와 함께 그 아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 배웠다. 그 후 나의 관심은 오직 자전거에만 쏠렸고 어서 빨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섬유공장에 취직하는 게 꿈이 되었다. 당시 그 공장의 여자 사원 월급이 사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 달만 일하면 삼만 원 정도 하는 자전거를 살 수 있다는 야무진 계산을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빨간색 삼천리자전거를 사주었다. 나는 산타클로스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나서 가을 다람쥐처럼 쏘다녔다. 작은아버지는 그때 내게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분이 되었다.
가끔은 큰집의 성인용 자전거를 타기도 하였다. 안장이 높은 자전거의 왼쪽 페달을 턱턱 밟아가며 바퀴를 굴리다 오른쪽 다리를 휘돌려 안장에 올라타면 묘기라도 부린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는 대학교 옆 코스모스 핀 논둑길을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달렸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 자전거 타기를 즐기던 삼총사가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우리들은 무엇인지 모를 열정에 휘말려 한겨울에도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자전거를 탔다. 들길을 지나고 철길을 가로질러 달리면서 보이는 세상은 다 우리 것 같았다. 두 볼을 얼리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면 박하사탕을 머금은 입속처럼 머릿속이 상쾌해졌다. 지금 같으면 미세먼지 걱정에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흙먼지가 이는 운동장에서도 자전거 타기는 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지난해에는 여러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한 엄마에게 가는 길을 하늘이와 내내 동행했다.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없고 주차장이 좁아서 차를 갖고 가기도 불편한 길을 하늘이 덕분에 편하게 다녔다. 과일이나 반찬을 하늘이의 앞 바구니에 싣고 거의 매일 병원에 들렀다. 하늘이 덕분에 운동도 되고 효도도 한 셈이다.
체중이 정상범위를 한참 넘었지만 성인병 없이 건강이 유지되었던 것은 자전거 타기를 즐겼던 덕분이다. 장롱면허를 면해보려 몇 번 자동차 운전을 시도했지만 운전대 앞에 앉으면 가슴이 방망이질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게다가 첫 운전대를 잡은 날 살짝 닿은 차주에게 돈을 물어주고 나니 운전대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 뒤로 자전거는 나에게 더욱 고마운 친구가 되었다. 일을 하러 가거나 장을 보러 갈 때, 아무리 먼 거리라 해도 시내는 늘 자전거를 탔다
(중략)
작년에는 친한 이웃과 광교산 자전거 도로로 가을맞이를 갔다. 내려올 때는 산 입구에서 파는 다육이를 하늘이의 바구니에 가득 싣고 돌아왔다. 이렇게 하늘이와 친하게 지내는 동안 나의 근육이 살아나고 건강해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에는 ‘괴물 차’ 또는 ‘나는 새’라고 불릴 정도로 신기한 물건이었던 자전거. 요즘은 없는 집이 없고 종류도 다양하고 고급화되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쉬운 점이 있다. 햇빛이나 가랑비 정도는 피할 수 있게 탈부착이 편한 파라솔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하늘이의 브레이크를 교체해야 한다는 집 문이 닫혀서 다른 수리점에 갔더니 두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으면 문제없다고 한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구가 정상이라니 마음이 놓인다. 하늘이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기름도 칠하고 색이 벗겨진 곳은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오래도록 함께 해야겠다. 익숙한 길을 함께 가다 보니 검은색 안장을 두른 하늘이가 이제 멋스러워 보인다. 브레이크를 잡을 곳과 가야 할 길을 잘 살피며 하늘이와 새로운 추억을 향하여 달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