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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Mar 27. 2023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이란 무엇으로부터 해방일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초록색 바탕에 붉은 계통의 집 그림과 나무가 그려진 표지.

  바쁜 일상 속에서 운동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심지어는 글씨까지 열심히 쓰는 친구가 새해에 선물로 준 책이다.

  주부와 교사, 중년에 갖게 된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 무엇도 만족스럽게 충실하지 못하고 허덕이며 해를 넘긴 나에게 '엄마의 해방일지'라면 몰라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 장남으로서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약해 보이면 안 되고 누구와 나누지 못하는 가장의 무게를 그린 내용일까 싶었다. 겨우 환갑의 나이에 떠나신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떠올려 봤다.

 다른 친구에게도 이 책을 선물하고 단체 대화방에 이 책을 소개하는 친구를 보며 뭉클한 감동이 있긴 한가보다 하며, 신학기 시작으로 정신없는 때에 이 책을 잡았다.

 3월과 12월은 교사에게 숨이 턱턱 막히는 때다.

 학교라는 것이 늘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계획과 생활을 하며 학기말에는 그들의 생활을 기록해야 하기에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그때에만 맞춰해야 되는 일들로 정신이 없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수능 보는 학생들 못지않는 피로와 긴장감이 있다.

 일에 억눌린 만큼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더 강한 때이기도 하다.

 2년 만에 담임을 맡고 보니 낯선 학교에서 시작하는 신학기의 버거움은 더했다.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할 일을 하고 8시쯤 컴퓨터를 켜고 새로 신청할 교과 예산과 수업자료를 정리하고 제출 자료를 작성하다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1965년 생 정지아 작가, 나보다 겨우 3살 많은데 프로필 사진은 언제 찍은 것인지 모르지만 힘 있고 활력 있고 멋지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경력도 화려하다. 신춘문예로 출발해서 김유정 문학상, 심훈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

 읽고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확 밀려들었다.

 문장 솜씨뿐만 아니라,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피로가 가득한 몸이지만 밤 10시가 넘어 책장을 넘겼다.

 전라도 사투리가 이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되다니, 경기도 토박이인 내가 읽는데 정겹다.

 십여 쪽을 읽는데 재미있다. 아, 자야 하는데, 더 생각할 것도 있는데, 재미있는 만화책 보듯 일하다 몇 쪽 읽고 덮었다가 잠 깨면 또 조금 읽고......

 펄벅의 '대지'를 읽을 때 한여름 더위도 잊고 읽었던 독서열이 살아났다보다.

 삼베옷을 입은 듯 꾸밈없는 내용인데 정겹다, 끈끈한 인간미, 이게 작가의 문장력일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무뚝뚝한 아니 사실은 인민해방에 대한 열정으로 충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사람들의 회상이 나올 뿐인데 사람을 끌어당긴다.

 반공의식이 철저하게 강요되었던 시대에 빨갱이 가족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작가의 아픔은 몇 자 나오지 않아도 깊고 깊게 느껴진다.

 숨 쉬는 순간은 한순간도 자신이 믿었던 신념에 충실했던 아버지는 가족에게 안락한 삶과는 먼 가시밭길을 가게 했지만 당시의 사회에서도 딸을 사랑하며 누구라도 아끼고 존중했던 아버지의 삶이 결코 이념적이 아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이었다.

 성인이라 부를 만큼 이타적이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간 모습이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다.

 가족이기에 사랑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되기도 하는 현실 세계에서 작가는 끝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다. 아버지를 둘러싼 관계가 버겁고 아버지의 삶이 싫어서 피하려고 하지만 이념의 굴레는 시대가 만든 것이고 아버지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사람을 사랑했다.

 어느 성직자 못지않을 정도의 따뜻했던 아버지의 삶이 주는 여운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식지 않는 온기로 그의 죽음을 감싸고 주인공의 마음에 뜨끈하게 아버지를 느끼게 한다.

 책을 덮으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런 거야. 그토록 힘든 삶을 그렸지만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온기가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보다 잔인한 것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맹자가 말한 인간의 4가지 본성이 마음바탕에 그득해서 발현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제도와 이념도 완전할 수 없고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추운 날 이부자리처럼 무조건 서로 덮어 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바쁘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다 보면 마음 바닥이 마르기 일쑤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에 쫓기면서도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독서를 했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나보다.

 어떤 운명으로 만난 중1들이 예쁘고 예쁘다. 정지아 작가 덕에 내 마음에 따뜻한 물이 좀 차오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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