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자연 2. 네가 뱁새니?

작은 몸, 갈색 털로 행복하게 사는 뱁새야.(브런치 글 4).

by 우산

벚꽃잎처럼 봄기운이 옅게 피어나던 날, 공원의 작은 연못 앞에서는 떠나갈 마른 갈대와 피어 날 장미 줄기가 어색하게 서성이고 있다.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래쪽 갈대 사이에서 부산한 기운이 감돈다.

" 삐비 비, 삐비, 삐비 비비 삐비"

" 여권은, 비행기표는, 구급약은, 내일 늦지 않게 일찍 일어나야 해."

하며 대가족이 여행 준비라도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책가방은, 실내화 주머니는, 체육복은 챙겼어?"

하고 처음으로 입학하는 아이에게 준비물을 확인하는 엄마의 설렘이 담긴 급한 목소리 같기도 하다.,

어찌 들으면 고기는, 참기름은, 양파 깐 거는 어디 갔지? 하고 손님 대접하느라 분주한 주방에서 나는 소리를 새들의 언어로 하는 것 같다.

바스슥 부서질 것 같이 마른 갈대의 위쪽 끝에서 아래로, 벚나무 가지 위아래로 바삐 움직이며 푸드덕, 바스슥, 푸드덕 바스슥...

가만히 말하는 아이들을 살펴보니 참새와 비슷한 갈색인데 머리가 많이 작다.

얼굴 작은 참새인가 하고 숨을 죽이고 살펴보니 털이 갈색 털이 보이는데 참새처럼 검은 줄은 없이 단색이고 인형이나 병아리 털처럼 짧고 보드랍게 보인다.

숨을 죽이고 가만히 다가가 드디어 갈대 줄기 사이에 있는 그들의 옆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또 숨죽이고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아, 너희들 참새가 아니로구나.'

그때 한 마리가 위로 날아오른다. 마침내 그 소란한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내가 자란 곳은 딱 도시와 농촌의 경계지역이었다.

집은 정육, 과일, 쌀, 철물 점의 상가가 늘어선 곳에 딸린 방이었고 그 집을 돌아서면 옥수수 밭, 콩밭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학교 갔다 오면 바로 밭둑길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밭 가장자리에 있는 삘기라는 풀을 따서 그 안에 있는 알맹이를 빼먹기도 했다.

때로는 밭 건너편에 짓다 만 집에 모여 벽돌을 모아 아궁이처럼 만들고 불을 지피며 놀기도 했다. 우리는 그 집을 드라마에 나오는 유령의 집이라 불렀다.

여름밤에는 근처에 있는 대기업의 사원 아파트 놀이터에 가기도 했다.

나를 대장으로 여기고 따라온 여남은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그네를 타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뿌듯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월급을 타서 후배들 밥을 사주며 바라보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큰댁에 사시면서 좀 걸으면 숨이 차서 힘들어하셨고 사는 집을 옮기면 안 된다며 여간해서 우리 집에 오는 일이 없었다. 이따금씩 손수건에 꼭꼭 싸 두었던 분홍색 옥추단 사탕을 건네시는 게 할머니 사랑의 표현이었다.

어머니는 먹을 음식과 빨래를 해놓고는 명절에도 오전만 쉬며 장사를 하느라 바빠서 나와 함께 어디를 가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간섭도 안 하셨다.

그러니 학교 갔다 오면 자유롭게 밖에 나와 몇 살 위에서 몇 살 아래까지 온 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놀았다. 나이 차이도 나는 아이들 여럿이 어울려 놀았어도 다툼이나 불화는 없었다. 아마도 그때는 또래 아이들이 나에게 가장 중요했고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그러니 들판이 펼쳐진 시골 풍경이 나의 곁에 있어도 그곳에 핀 꽃이나 새 이름을 알지 못했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 말고는 다른 것을 바라보지도 않았을 것 같다.

지저귀는 조그만 갈색 새는 모두 참새이고, 깍깍이는 것은 까치, 까옥하는 것은 까마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참새 사이에 뱁새가 있었더라도 작은 갈색 새는 다 참새로 생각했을 것 같다.

지인이 어렸을 때 할머니 손잡고 나물 캐러 다니며 꽃 이름을 많이 배웠다는 말을 들으니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뱁새야, 그 새를 오십이 넘도록 속담에서만 듣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그런데 뱁새는 속담과 달리 황새를 전혀 바라보지도 않고 황새를 따라가고 싶어 할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뱁새를 처음 만나고 보게 된 날, 그 새는 저희들끼리 너무 바쁘고 즐겁고 자신의 일을 하느라 주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는 다른 새들이 민감한 인기척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 저리 바쁘고 즐거울까 하며 어린아이들 노는 것을 본 노인 같이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남들과 함께 사는데 어찌 남의 눈치를 안 보고,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자기 편한 대로만 하고 남에게 폐를 끼친다면 사람답지 않은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지나쳐서 남의 눈에 근사하게 보이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을 잊고, 자신의 경제 상황을 생각지 않고 과소비하며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 것이 문제이다.

어쩌면 자신의 자녀들까지도 남들 눈에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 아이의 적성이나 능력은 생각지 않고 힘들게 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녀를 위해 지금 힘들더라도 참고 노력하라는 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뱁새는 붉은 머리 오목눈이라는 이름처럼 다른 새와 달리 눈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봉제 인형같이 귀여웠다.

북한에서는 '부비새' 또는 '비비새'라고 한다니 저희들끼리 지저귀는 소리가 맑고 예뻐서 붙여진 이름 같다.

집에 들어와 큰딸에게 뱁새를 보았다고 말하고는 너 뱁새 알아? 했더니 저희 세대 사이에서 뱁새는 귀여운 새로 유명하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자연에 대해 더 모를 것이라는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속담에서만 알던 그 귀여운 새를 보고 내가 즐거웠으면 되었지, 뭐 누구한테 아는 척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니 상관없지만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니 다소 서운하다.

작고 다리도 짧은 뱁새가 당연히 늘씬한 황새를 부러워 따라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사람의 편견이 만들어 낸 생각이다. 뭐 멋진 외모나 근사한 차림을 한 사람 보면 멋있다고 감탄하고 한순간 부럽기도 하지만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다.

백조가 참새보다 반드시 아름답다고 할 수 있나. 참새는 참새의 매력이 있고 참새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다. 참새는 참새에게 맞는 생태계에서 그 본성대로 살뿐이다. 누구의 삶이 더 좋고 가치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오목눈이 붉은 머리 뱁새는 오늘도 저희들끼리의 이야기로 너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어디서 먹이를 먹고 어디서 짝을 만나고 알을 낳아야 하는지. 저희들 만의 맑은 소리로 지저귀며 오목눈이의 귀여움을 발하면서 말이다.


여름날 비 온 뒤 풀잎의 빗물 마시는 듯한 뱁새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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