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과 공간 나누기
올겨울은 화분을 실내로 들여놓지 않고 베란다에 둔 채로 심하게 추운날만 히터를 틀어 놓으려고 했다.
우선 심한 추위가 오기 전 선반 둘레에 기둥을 세우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일 한파가 온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 밤 10시가 넘어 화분을 모두 거실로 들여놓았다.
햇빛이 많이 들지 않는 집에서 화분을 키우려니 보고 또 보고 해가 좀 더 잘 드는 위치로 화분 자리를 서로 바꾸어 주었다. 사실 동백은 자리바꾸는 것에도 예민하다고 하던데 그래도 햇빛을 잘 받는게 더 중요할 것 같아서 가끔 자리를 바꾸어 준다.
화분이 작으면 분갈이를 해주고 물이 말랐을까 살피고 신경 써도 잘 자라다 죽는 화분도 생긴다.
어떤 때는 영양제 푼물을 너무 많이 주어 죽은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도 지나친 관심이나 참견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그냥 무심히 내버려 두어야 할 때도 있는 것처럼.
대체로 장마철 습기가 많을때 베란다 문을 너무 꼭 닫아 죽는 경우도 있었다.
누구나 잘 알듯이 바람, 햇빛, 수분이 식물의 생존 조건이다.
이런 자연 조건에 불리한 우리집에서는 늦가을이 되고 식물 조명등을 두어 시간씩 켜주기도 한다.
올 여름에는 더위와 습기에 지칠까봐 에어컨을 켜고 거실 창을 열어 냉기를 쐬어 주었다.
습기와 열기가 높은 상태로 사람도 견디기 힘든 때였으므로 굵은 나무가 아닌 화분의 식물들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동물이 가족이고 자녀인 것처럼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화초들이 나에겐 아이들이다.
출근할 때는 아침에 물한모금씩 주고 바삐 나갔는데 요즘은 이 아이들을 살피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같이 근무했던 분에게 우리 아이들 잘 크고 있다고 하며 사진을 보냈더니 처음에 학교 아이들인 줄 알았다며 웃었다. 화분 몇 개는 학교에 갖다놓고 학교 아이들과 같이 키우기도 했다. 그중에는 장난꾸러기 덕에 몇 번 쏟아져 잎이 다 꺾이고 하나만 남게 된 것도 있었다.
집에 와서 돌보고 분갈이를 해주었더니 한 장의 잎이 몇 달 만에 올라와 둘이 되고 지금은 여러장이 되었다.
딸들을 키우며 보고 또 보고 마음 살피고 건강 살피고 공부도 살폈다. 어떤 때는 자는 모습이 예뻐서 보느라 부족한 밤잠을 채우지 못한 적도 있다.
학교 근무를 시작하고는 교과 시간 담임반 아이들을 보고 또 보고 이야기를 듣고 지도하고 상담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꼈다.
다음 수업 시간이 없을 때는 담임반 교실을 둘러보며 초콜릿하나 주고 오기도 하고 교실에서 말썽을 부리려는 아이들의 장난을 조용한 눈빛으로 멈추고 오기도 했지만 사실 토끼같은 아이들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어 가보곤 했다. 이렇게 불쑥 둘러보는 것은 사고예방 효과도 크다.
이번 학기는 쉬면서 내 자녀와 학생들에게 주었던 관심과 에너지를 집의 식물들에게 쏟아부었다. 이 아이들은 초록 잎의 성장과 꽃으로 나에게 답한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저 물을 주고 잎을 살피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올해 1월에 아산 식물원에서 사 온 게발선인장이 11월부터 점같이 작은 꽃봉오리가 맺히더니 자라서 12월에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난1월보다 길이도 몇 마디 더 자라 그 끝에서 진분홍 꽃이 피어난다.
좀 자란 꽃송이는 진분홍색으로 꼭 닭 벼슬 같기도 한데 다 피어난 모습은 새가 머리를 쭉 내밀고 깃을 아래로 쫙 펼친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고운 발레복을 입은 무용수 처럼 보이기도 한다.
먼저 아래쪽 꽃잎이 몇 장 피고 나중에 꽃술을 품은 꽃잎이 펴서 다 핀 꽃은 두송이가 겹쳐 있는 듯 보이니 참 독특한 모양이다.
가지 끝에서 아래로 쳐져서 피는데 살짝 고개를 들고 초례청에서 신랑 흘낏 신랑을 바라보는 족두리 쓴 신부 같기도 하다
잎이 여러 개 늘어지니 이름이 게발선인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가 보다. 이름보다 꽃이 훨씬 예쁜데 아래 쪽으로 쳐지니 사진으로 예쁜 모습을 다 담지 못한다.
진분홍의 외래종 식물 중에는 원산지가 남미인 경우가 많은데 이 선인장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가 고향이라고 한다. 꽃말은 불타는 사랑.
한겨울에 붉게 피어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는 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보통 선인장은 꽃이 많이 피지 않는데 이렇게 1년에 한번 여러 송이의 고운 꽃을 피우니 참 기특한 식물이다. 오늘 한송이, 내일 한송이 매일 피어나니 하루하루 바라보는 기쁨이 크다.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열매 맺고 낙엽 지고. 식물의 사계를 바라보며 1년이 흘러간다.
새해 1월과 등지고 선 12월이 시작되었다.
한해의 끝과 시작이 등을 맞대고 서서히 서로에게 임무를 넘겨주는 시간이다.
이 식물들과 따뜻한 공간을 나누어 쓰다 보면 눈이 내리고 바람 불고 꽁꽁 언 날들이 지나 봄이 올 것이고 것이다.
계절마다 해야할 일이 있겠지만 봄날보다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서는 준비할 것들이 많다.
김장, 따뜻한 옷, 난방시설 점검 등.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서로 나누는 마음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할 것이다.
서로 해줄수 있는 것과 마음을 나누면 추운 겨울도 한결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올 무렵이면 경기가 어렵다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음이 움츠러들더라도 한 손은 가까운 이웃에게 내밀며 서로의 따뜻함을 나누면 좋겠다.
집안이 넓지 않아도 나의 반려식물과 공간을 함께 나누며 봄을 기다려 본다.
시간과 마음을 주며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제자리를 찾아가듯 나의 반려 식물들도 봄이 되면 바깥 공기와 햇살이 더 가까운 베란다로 다시 나갈 것이다.
봄을 함께 기다리는 겨울도 함께 행복하려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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