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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

직접 볶은 커피의 깊은 맛

by 우산

나는 배우는 걸 못한다.

배우러 시간 맞춰 나가는 걸 못한다.

문화센터가 담장 옆에 있어도 그림 그리기, 요리, 수영 등 배우고 싶은 생각은 하지만 오분 거리를 못 나간다.

물론 직장은 시간 맞추어 열심히 다녔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주먹구구 식으로 대충 집에서 어설프게 직접 해보는 편이다.

아마 글쓰기를 배우러 2주에 한번 1년 정도 다닌게 가장 오래 배운 것이다.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지만 마음만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커피를 알았을때 헤이즐럿 향을 좋아했고 다른 커피는 커피의 구수하고 약간 달착지근한 뒷 맛을 좋아했다.

블루마운틴을 접하고는 그 이상의 맛이 없을 것 같아 10년을 집에서는 그것만 마셨다.


언제부터인가 산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색다른 커피맛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카페를 나와보니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때 산미를 처음 느낀 것 같았다.


몇 년 전 커피콩을 꾸준히 복용하면 다이어트에도 좋고 혈당을 낮출 수 있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생두를 좀 샀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몰랐다.

삶아서 먹을까, 밥에 조금 넣을까, 고민하다 그냥 냉장고 야채 서랍에 둔 채 몇 해를 넘겼다.


결국 커피콩은 커피로 먹어야겠다 싶어 재작년 여름에 볶아 보았다.

보통 먹는 커피보다 덜 볶았다.

원래 건강을 위해 생두를 복용하려 했던 거라 가루로 한 스푼씩 먹으려 했는데 신맛이 너무 강했다.

그냥 내려먹던 커피에 섞어서 커피로 마셨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너무 오래되어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힌 번 볶아볼까 하고 주물 프라이 팬에 볶았다.

전기쿡탑을 방에 놓고 느긋하게 두 시간 좀 넘게 볶았다.

검게 변한 커피 한 알을 씹어보니 커피 향이 깊게 느껴진다.

쓴 맛 없이 구수하다.

차츰 콩을 젓는데 커피가 후라이팬 위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경쾌하다.

콩색이 고루 검어진다.

이전보다는 진하게 볶아야지 하고 계속 젓는데 주방에 앉은 남편이 커피 향이 난다고 한다.

한 알 먹어보라고 하니 맛있다고 한다.


카페에서 마시는 것은 이보다는 조금 더 진한 것 같은데 여열이 있으니 불을 끄고 저었다.

커피가 좀 식은 후에 분쇄기로 분쇄하여 커피를 내렸다.


아, 어쩌지.

나 진짜 금손인가.

냉장고에 몇 년 묵힌 생두를 볶아 내린 커피가 그동안 마셨던 그 어떤 커피보다 맛있다.


친구가 나더러 사진 잘 찍는다고 금손이랬는데.

독자분들 자뻑 심하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산미가 깊고 풍부한 부드러운 커피. 산미가 한가지가 아니고 여러가지 행복한 이랴기가 머리에 가득차는 느낌이었다.


아, 좋은 생두였나 보다.

그리고 커피는 역시 갓 볶아 내리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두를 한번 더 사야지 했는데 콩봉지에 행복한 콩이라는 글자 말고는 정보가 없다.

배달처가 안산이었는데 안산 생두 행복한 콩을 검색해도 뜨는 게 없다.


생두가 좋고 건조가 잘 되어 보관한 지 오래되도 변질이 없었나 보다.

사실 얼마 전 유명 매장의 커피 쿠폰으로 커피를 사 왔는데 별로 맛이 없었다.

오래된 커피 가루에서는 담배 냄새가 난다.

그래도 커피로 내리면 좀 다르긴 하지만.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거라 볶은 지 좀 시간이 지난 거였다.


정성들여 볶은 맛있는 커피를 마신 어제의 행복이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입술 위쪽에 물집이 잡혔다.

안 하던 일을 했더니 힘들었나 보다.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릴까 했던 오래된 생두를 볶아 내린 커피의 맛이 너무 좋아 커피의 산미만큼 행복을 맛본 다음날 입이 부르트다니.


고용복지겐터에서 받은 국민 배움 카드로 바리스타 학원에 가볼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는 커피의 맛은 좋은 생두, 적절한 로스팅, 드립이 모두 조화가 돼야 소비자의 입에 맞는 커피가 될 것이다.


나는 그중에 우리 집 냉장고에 보관되었던 생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생두의 맛이나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어설픈 내가 커피를 잘 볶은들 그런 깊은 맛이 났을 리 없다.


생두의 건강함이 곧 사람의 올곧은 마음 같다는 생각된다.

그 마음 바탕이 세상을 살며 이런저런 상황에서 변치 않고 선하게 발현되는 것이리라.

마음바탕이 곧지 않다면 좋은 환경에서도 남을 해치는 독을 뿜어 내리라.

경비원에게 갑질하고 버스기사를 폭행하고 고위직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뉴스가 가득하다.

반면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담의 향기가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두 세 사람에게 베푼 친절과 미소가 주변을 밝히고 때로는 남의 목숨까지 구하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은 건강한 생두가 만들 수 있는 커피 향보다 깊고 귀할 것이다.


기후변화가 커피 생산에 어려움이 많고 생산량이 줄고 있다고 한다.

커피가 우리 손에 오기까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우가 바르지 않은 경우도 있어 그렇지 않은 경우를 착한 커피라는 유통망이 따로 있기도 하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 마음에 닿기까지의 과정도 커피처럼 향기로운 과정이기를 바란다.

날마다 마시는 커피의 향이 세상에 퍼질 때마다 사람들 마음도 건강한 생두처럼 올곧음이 채워지길 바란다.

#커피#커피 향#갓 볶은 커피#에디오피아#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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