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에게서 엉겅퀴의 자줏빛 꽃잎이 빛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먼 것일까, 아직도 자기를 보호하려고 초록 잎 둘레에 뾰족한 가시를 날카롭게 세우는 것 같다.
오후 세 시쯤 되어 진이가 사복 차림으로 학교에 왔다. 서영은 음료수를 들고 벤치가 있는 곳으로 나가자고 했다. 진이는 좀 차분해졌다.
"학교 다니기 싫어?"
"그냥 다 귀찮아요. "
"그래서 집에 갔어?"
"OO선생님이 짜증 나게 해서요."
"정말? 너는 잘못한 게 없었어?"
"잘못했죠."
"나한테는?"
"잘못했어요."
"점심 먹었어?"
아이는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분노의 폭풍에 휩쓸려 지친 모습이었다. 무엇때문인가. 사춘기의 가시라고 밖에는 다른 이유를 말하기 어렵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
점심을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창백한 아이의 얼굴을 보는 서영의 마음 속에서는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음료수를 내미니 한 모금 마신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공고 가고 싶었는데, 학폭때문에 포기했어요."
"어렵긴 해도 네가 열심히 하면 갈 수 있는데도 있지."
"정말요? 사실은 제가 잘못해서 1학년 때랑 2학년 때 돈도 많이 물어줬어요. 이제 정말 안 그러고 싶은데..."
"선생님은 너 만난 지 한 달도 안되었잖아. 그러니 너에 관한 것은 엄마에게 여쭈어야 하니 전화한 거야. 네가 잘하고 싶은데 엄마 속상하게 해서 더 속상했구나."
"..."
"진아,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습관이고, 훈련이 좀 필요해. 화가 나면 숨을 크게 세 번 쉬고 화를 좀 가라앉히고 말하면 좋겠네."
" 네. 이제 노력할게요"
"학교를 정말 안 다니고 싶은 것은 아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일부터 늦지 말고 교복 잘 입고 오자고 했더니 아이는 수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선생님 있잖아요 내 말 좀 들어봐 봐요,' 진이는 언제부터인가 교무실로 쫓아와 자기 말을 들으라고 야단이었다. 어떤 때는 등굣길에 찬이를 놀리고 옥신각신하다 교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있잖아요, 그랬다 봐요, 인정? 안인정? 아이는 이런 특유의 어투대로 떠들다가 서영이 뒷말을 고쳐주면 그대로 따라 했다.
"선생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도 될까요?"
어느 날은 서영이 진이의 말투를 따라 하기도 했다.' 등교시간은 지켜야 한다. 인정? 안인정?'
좁은 교무실에 아이가 수시로 와서 떠드니 찌푸리는 교사도 있다. 어쨌든 진이는 마음 문을 열고 학교 생활을 하며 자신의 마음 상자를 채워가는 듯 했다.
미술시간에 그린 크로키 작품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학원에 다닌 적도 없다는데 손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았다. 교실에서 진이의 작품을 보고 서영은 칭찬을 많이 했다. 호들갑스럽게 폭풍 칭찬을 한 것이다. 아이의 가시는 차츰 속으로 들어가고 어여쁜 꽃잎의 빛깔과 향이 빛나는 순간이다.
학교 생활에서 파동이 많이 일고 교사와 부딪히는 진이 같은 아이들에게서 장점을 찾고 칭찬할 점을 발견하면 그것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아이를 꾸중하고 혼내는 일이 좋을 리 없다.
아이가 꿈을 키워갈 방향을 찾아 지도할 열쇠를 찾아내는 기쁨이 바로 교육자의 큰 기쁨 중의 하나이다. 서영은 진이를 보며 교육의 참 기쁨을 발견하고 행복의 씨앗을 품기 시작했다.
때로는 진이에게서 심한 담배 냄새가 나서 흡연 수치를 재기 위해 부를 때도 있었다.
"오늘 몇 대 피웠어?"
"안 피웠는데요, "
"불어봐~"
두 번 세 번 흡연이 확인되면 선도 위원회가 열린다.
맘먹고 참기도 하지만, 등교 시간에 좀 늦는다 싶은 날은 또 심한 냄새가 났다.
담배는 아파트 소화전에 넣어 두었다가 등굣길에 피우고 오면 지각을 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피운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손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물어보면 나무젓가락으로 집고 피웠다고 한다. 담배 만큼은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쉽게 끊기 어렵다는 것은 어른들도 아는 일이다.
유혹 투성이 세상에서 어른들이 만든 유혹에 빠진 아이들, 수업하며 한두 시간 비는 동안 업무처리에, 수업 준비, 잠깐의 상담을 통해 이 아이들을 그 유혹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는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교사들은 학교에 등돌리고 수업에 등돌린 아이들까지 구해야 한다.
금연지도를 하며 서영은 늘 생각했다. '대체 담배는 누가 팔아 돈 벌고, 뒤치다꺼리는 교사가 한단 말인가.' 흡연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는 교사의 업무가 배로 증가한다. 흡연을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 때문에 교문 앞문, 뒷문 지킴이와 교내 외 순회를 한다. 결국 흡연의 증거가 발각되면 선도 위원회가 열리고 담임 교사는 서류를 작성하고 관련 부서 교사는 또 관련 업무를 한다. 그리고 위원회 기록과 관련 문서 작성, 선도 후 지도 등...
어른도 끊기 담배가 단지 선도 위원회가 열리고 처벌이 결정된다고 그들의 의지로만은 끊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흡연 때문에 선도 위원회에 몇번이나 회부되는 학생들도 있다.
좀 더 효과적으로 진행되는, 기관에 입소하지 않아도 학교로 와서 이 흡연 학생들을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수업에 지장이 없으면서 학생이 즐겁게 참여하며 효과적인 프로그램은 담배 인삼 공사에서 준비해 주던지. 서영은 적어도 학교 상황에 따라 흡연이 평균 몇 회 이상 일어나는 곳은 적어도 학교에 상주하는 금연지도 관리자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도 흡연 학생이 꽤 있었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흡연학생도 많고 흡연한 기간도 길어 끊기가 더 어렵다. 적어도 학교에서 피우지 않을 정도의 자제력을 원할 뿐이었다.
교내 흡연으로 적발된 적이 있는 학생은 쉬는 시간에 자주 둘러보고 때로는 불러서 담배 생각 덜 하라고 사탕을 주기도 했다. 한동안 매일 사탕을 주었는데 결국 사탕만 먹고 담배는 그대로 피우다 걸려온 학생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버스 승차 시간을 못 지키고 흡연 때문에 늦기도했다.
서영은 흡연만큼은 담임의 몫도 학생 혼자 해결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부모님의 협조를 적극 요구했다. 흡연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체격이야 성인 수준이지만 어린 나이에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흡연 욕구로 수업 이탈이 생기고, 일단 학교 규칙 위반으로 선도 처리를 하게 되면 학업에 지장이 생긴다.
이런 설명을 하고 아버님, 담배 피우시나요? 훈이랑 금연 프로그램 함께 참여하시면 좋겠네요. 아버님도 못 끊는 걸 아이가 어떻게 끊겠어요, 적어도 아버님이 함께 노력하시는 걸 봐야 아이도 단단히 맘먹지 않겠어요, 하면 학부모는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부모의 마음이 여기까지 함께 하는 경우 그 아이도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고 학교 생활 모습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발전되었다.
흡연으로 선도 위원회가 열린 후, 진이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것이 보였고, 돌발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 5살 된 아이같이 뛰어다녔고, 어떤 날은 요동치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 반복되었다. 약간 조증과 울증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한때 치료약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그 아이 마음 속에 있는 아이가 숨지 않고 나와 자라고 있는 것을 서영은 느꼈다.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사나운 날씨에 화들짝 놀라 마음을 닫던 아이의 자아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 아이가 어린 시절 만났던 파도의 일부를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어떤 파동이 일고 있는지도 서영이 다 알지는 못한다.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와서 주말에 진이가 이웃학교 아이들하고 싸우러 간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모 학교와의 싸움에서 진이는 꾹 참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이번에는 친한 친구가 모욕을 받았다고 주동으로 나선다고 했다.
진이를 불렀다. 이번 주에 뭐하느냐고, 싸움이 또 있으면 졸업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더니 그래도 친구가 모욕을 당했으니 바보같이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 그 싸움에 이기는 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잘 생각해 보라고. 네 꿈을. 주먹으로 이겨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면 그 승리가 진정한 승리이겠느냐고.
진이는 생각해 보겠다며 돌아갔다.
남자아이들의 세계를 모르는 말을 담임은 진이의 어머니에게 이번 주말에 아이를 꼭 지키라는 전화도 해주었다.
다행히 싸움은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교내에서 생겼다. 1학년 학생이 진이의 친구를 툭 치고 지나갔다고 3학년 녀석 몇이 그 아이를 때리고 욕을 한 것이다.
1학년 학생의 학부모는 진이와 때린 아이들을 경찰에 고발하였고 병원에 입원하였다.
경찰로 넘어간 사건은 교사들도 더 이상 관여하지 못했다. 조사도 합의도 경찰에서 하며 가해자의 부모는 의무적으로 부모 교육에 참여해야 했다.
진이의 아버지는 학교에 와서 죄송하다고 하며 이제 아이 교육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많이 아파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의 정서 교육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했다.
서영은 아이가 혼자 노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감정 조절을 위해 상담을 권유했다. 굳이 병원이 아니어도 청소년 센터에도 전문 상담사가 상담을 한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이와 여행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경찰 조사와 합의가 끝나면 진이와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하고 자연을 접하는 여행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서영은 말했다. 다행히 진이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늦게라고 깨닫고 최선을 다할 의지가 있었다. 그 후, 진이는 아버지와 일주일 동안의 여행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