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의 '결혼에 대하여' 시 형식을 빌어
정호승 님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는 깊은 공감이 주는 따뜻함, 관조의 여유로움, 직관이 품는 예리함을 지니면서 천천히 흐르는 시간 같은 넉넉함에, 생각지 못한 삶의 지혜는 덤이다.
그의 시 중 '결혼에 대하여'라는 시가 있다. 결혼에 대한 최고의 시적 조언.
이 형식을 빌어 나름대로 결혼에 대해, 결혼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결혼에 대하여
가난해본 사람과 결혼해라
가난함이 자신을 지배하게 두지 않고 비루함에 젖지 않으며
그저 가난해서 슬픈 것이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고, 없는 이와도 철퍼덕 앉아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음만은 넉넉한 이와 결혼하라.
외로워본 사람과 결혼해라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운 게 무엇인지 알고,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지 느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라.
혼자 있어 외롭지만 그 외로움마저 때론 당연하게 견뎌야 하는 줄 아는 이와 결혼하라.
한 끼 식사에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해라
한 끼를 차리기 위해 고민한 시간부터 음식을 준비한 분주한 손길까지 상대의 정성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맛나게 먹고 고마움을 전할 줄 아는 이와 결혼하라.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갈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라
일에 치이는 삶보다 함께 보내는 저녁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기분 좋은 식사 후 상대의 손을 잡고 가벼운 산책을 나가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편안히 대화할 수 있는 이와 결혼하라
어리석은 사랑을 했던 사람과 결혼해라. 순수한 사랑의 배반과 상처도 알고, 그 정도로 누군가에게 기꺼이 주어봤으며, 그 마음조차 이해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님을 겪어본 사람과 결혼해라.
남이 주는 사랑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소박한 따뜻함과 일상의 안온함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이와 결혼해라.
상처 없이 넘치는 이와 하는 것만이 행복한 결혼은 아니다. 부족함 속에 생긴 넓은 빈 공간을 서로가 채우는 것이 큰 사랑이다. 채우는 삶이 서로를 빛나게 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이다.
사랑이 결혼이 필요하듯 결혼도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