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카뮈의 언명에 매혹되어 그의 저서들을 탐독하였다. 그에 따르면, 명철한 의식은 부조리를 인식한다. 그로 인해 '반항하는 영혼'은 '이방인'이 된 느낌을 받고, 세상에 구역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이방인은 '모든 것이 허용되고,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다.
『시지프 신화』는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한다. 그 논리의 전제는 초심, 즉 명철한 의식으로 우리의 고민을 끝까지 말고 나가보자는 집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질문에 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그는 '도약'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부조리란, 본질적으로 어떠한 절연, 단절, 즉 모순이다. '통합되지 않은 느낌'이 바로 부조리라고 할 수 있고, "이런 상태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외치는 영혼은 반항하는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간단한 도식에 욱여넣기 위하여 수많은 차이를 외면하는 이념은 도약하는 생각이다. 절연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 하는 인간은 도약으로 부조리를 극복하려 한다. 부조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몸서리치는 인간은 자살로 그를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자살 또한 일종의 도약인 셈이다. 결국, 명철한 의식에서 시작하여 명철하지 않은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는 자살을 거부하며, 반항하는 인간은 다시 마음 속 순수한 불꽃을 따라 재도약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돌을 끊임없이 굴리러 가는 시지프처럼 부조리를 빠짐없이 인식하며, "그것이 삶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니체)이라고 외치는 위버멘쉬처럼 삶 살아낸다면, 세상의 아름다움 또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카뮈에 따르면, 자살을 할 합당한 이유는 없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반항하는 인간』에서, "살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과거에는 감정적으로 살인을 했다면, 허무주의와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20세기는 논리적 살인이 횡행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죽이는 데 숭고한 이유를 갖다 붙이며, 무죄인 인간이 유죄인 인간을 심판하는 형국으로 살인이 진행된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서 자행되는 살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명철한 의식이 이 '논리적 살인의 정당성'을 논리적, 역사적으로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서론에서, 카뮈는 '자살을 거부한다면, 살인 또한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에 따르면, 부조리의 추론의 최종적 결론은 '자살의 거부인 동시에 인간이 던지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세계의 침묵 사이의 절망에 찬 대결 상태의 유지'이다. 부조리의 추론이 함축하는 바는, 삶이 유일무이한 선이라는 것이다. 삶이 자신에게 선이라면, 삶은 타인에게도 선이다.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는 근원적 전제를 생각한다면, '논리적 살인'은 일종의 도약 행위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적 검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기독교, 왕정, 봉건 제도에 "모든 것이 의미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부조리함을 느끼고 반항한 인간이, 또다시 이데올로기에 젖어 새로운 '신'을 만들고 숭배하는 모습은, 결국 유한한 인간이 무한자를 요청하는 모습과 같다. 20세기에 유행하였던, '이상사회는 분명히 도래할 것이다!'는 언명은 '예수님이 심판하러 다시 찾아올 날은 분명히 도래할 것이다!'는 언명과 근원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카뮈는 '반드시 도래할 그 날'을 위하여 '현재'의 인간을 억압하고 살인하는 모습은 반항인의 초심에 위배된다고 느꼈다. 기독교, 왕정, 봉건 제도를 용납할 수 없었듯, 이런 방식의 논리적 살인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뮈는 자살과 살인을 모두 거부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 그는 절대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 등 '개인을 어떠한 생각에 가두는 이념'을 배격한다. 그는 인간이 완전한 무죄는 아니지만 완전한 유죄도 아니라고 본다. 또한 진리는 상대적이기에 우리는 '절도와 한계'를 인정해야 하고, 치열한 겸허함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요약하자면, '우리는 유한자인 인간이고, 인간은 부조리하고 부조리는 모순을 내포하는데, 오류 가능성을 늘 내포하므로, 그것을 인정함에서 출발하여, 반항의 세계에서 인류 공통의 존엄성을 찾자.' 정도로 이해하였다.
인류가 절망의 페스트를 앓을 때,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반항 정신은 인간을 연대하게 한다. 어떤 길도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인간의 힘으로 세계의 절연을 통합하려 할 때, 세계는 더 부조리해진다. 그것이 삶의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말한다. "반항하는 인간의 논리는 인간 조건의 불의에 또 다른 불의를 보태지 않도록 정의에 봉사하고, 세상에 가득한 거짓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고, 인간의 고통에 맞서서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데 있다.", "반항은 스스로의 그 심오한 리듬을 찾기 위하여 광란하는 진폭으로 양극을 오가며 흔들리는 불규칙한 진자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불규칙한 운동을 도를 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축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서 이루어진다." 세계의 서정성을 향유하고, 때로는 삶의 무관심에 절망도 하며, 다시 일어나 '절도와 한계' 속에서 연대하는 길이 느리지만 합당한 길일 것이다. 즉,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이 모순을 버리고 도약하려 할 때, 인간의 삶은 부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