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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Oct 27. 2021

닥터 인사이드 (14)

내 안의 의사

13. 건강 수명 늘리기



인생은 태어나서 아프다가 죽는 게 전부다


  오십대가 넘어 친구나 형제들을 만나면 화제는 주로 '어디가 아픈가?'로 흐른다는 사람이 많다. 나의 아내도 여자 형제들이 모두 갱년기를 지나면서부터 여기저기 탈이 나서 자꾸만 아픈 데가 생기다 보니 화제가 자연히 그쪽으로 모아지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서로 아프다는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 '그저 인생은 생로병사가 다야.'라는 말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말끝마다 '생로병사가 다야.'라는 말을 붙이면서 깔깔거리기도 했답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가 허리가 아파서 한참 허리 운동을 하다가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한국인 일생 중 8년 질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인 일생 중 8년 질병, 평생의 10분의 1을 병상에서 보낸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21일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여명 및 건강수명'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국인의 기대 수명과 건강수명을 예측한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태어난 신생아의 기대수명은 80.67세로 이 중 8.04년은 질병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일생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다.  성별에 따라서는 님성의 기대수명이 76.8세, 여성이 82.92세였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남성 71.38세, 여성 73.37세로 조사돼 여성이 질병에 시달리는 기간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수명이란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뺀 기간으로 실제로 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산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1999년의 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4.3세(남자 67.7세, 여자 75.7세)이고 건강수명은 65세로 되어 있다. 그동안 평균수명은 길어졌지만 2009년에 태어난 신생아들을 기준으로 봐도 일생의 10분의 1을 아픈 상태로 지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번 조사에서 건강수명을 판단하는 기준은 운동능력, 자기관리, 일상활동, 통증, 불안, 우울감 등 5가지 항목이었다고 한다. 특별한 질병이 없어도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거나 불안이나 우울감 등에 시달린다면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서적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늙음을 의식하면서 삶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이 질병을 유발하는 큰 요인이 된다. 건강수명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시 두 편을 소개한다.


청춘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밋빛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굳은 의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열정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따르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마음은 늙는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려주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에 떨어지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70세든 20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이 있다.

인간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충분히 젊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혀 있을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그 사람은 청춘으로 살 수 있다.



어느 17세기 늙은 수녀의 기도

                                                   -작자미상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곳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마음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만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들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금강경과 자연치유


  불교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인기 있는 경전으로  금강경을 꼽을 수 있다. 불교의 중심사상 가운데 공(空)의 개념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경전이다. 이 경전에는 설법의 핵심 사항을 네 개의 사구게(일종의 詩)로 표현해 놓고 있다. 이 금강경의 사구게를 음미 해 보면 자연치유의 여러 이치를 깨우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주의 이치를 안다는 것은 우리 몸의 이치를 안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를 믿는 신도는 아니다. 그러나 금강경은 나에게 유익한 책이다. 



제 일 사구게 -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5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과 형상 아닌 것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이 게송에 나오는 내용은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모든 물질은 궁극적으로 어떤 알갱이(?)도 없이 허깨비 같은 파동과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양자물리학을 더 깊이 들어가서 골치를 썩이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이라 생략한다. 다만, 자연치유의 기본이 이 금강경의 제 일 사구게의 생각과 양자역학의 입장에 터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몸과 마음은 마치 파동과 에너지처럼 분리할 수 없는 그 무엇이고 존재를 결정하는 양면이다. 고달픈 삶으로 마음이 상처받으면 곧 몸에 병이 일어나며, 기쁘고 고양된 영혼은 암 따위로 만신창이 된 몸이라도 거뜬히 회복시켜 준다. 사람의 몸은 대우주와 동일한 원리로 구성된 작은 우주이다. 스스로 완전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마음이 건강하리라 생각하면 몸이 그리 되고,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리라 걱정하면 몸이 그리 된다. 우리의 몸은 크게는 마음에 작게는 세포 하나하나의 의지로 만들어지고 무너진다. 무릇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다. 그러나 그 허망한 형상은 다 그 무엇인가의 의지로 만들어졌다. 이 점에서 자연치유의 개념과 상통한다. 허망하지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결합하여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대우주를 닮은 작은 우주를 이루고 있으면서 내부에 모든 오류를 고칠 수 있는 완벽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한 완벽하게 동작하는 치유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자연치유의 개념이다. 현대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자연이 고칠 수 없는 병은 의사도 고칠 수 없다” 결국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치유 신봉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대의학은 자연치유보다는 인간의 의술을 더 신봉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치유는 자본주의에는 맞지 않는 개념이다. 아무런 부가가치도 창출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료계가 거두어들일 거대한 수익을 좀먹는 개념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만일 사람의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작업을 멈춘다면 의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병을 의사가 고친다, 혹은 고쳤다는 평판은 불공평한 평판입니다. 병은 사람의 몸이 스스로 고친다. 무릇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기 때문에 사람의 치유체계는 사실상 神과 같다. "이렇게 되라!” 고 하면 그렇게 되는 것과 같이 신비스럽기 짝이 없는 오류 수정 장치이다. 과도한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자연치유에 대한 믿음이 회복된다면 아마 그것이 '여래를 본'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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