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가 사물을 정의하는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그의 시작에서 느끼는 설렘과, 마무리에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들뜬 마음을 추스리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 이 두가지의 경험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우리는 과정과 별개로 여행을 잘 마무리했다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조언이 있다. 짐을 최대한 간추리고 부피를 줄이라는 것. 근거리든 원거리든 여행을 다녀본 사람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몇 안되는 요소들 중 하나이다. 어쩌면 여행지에서의 훌륭한 경험보다 짐이 덜 신경쓰이는 여행이야 말로 온전한 여행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 책자 혹은 후기를 보면 대다수의 여행가들이 짐의 부피를 줄이는 법, 꼭 필요한 짐 소개를 시작으로 글을 시작하곤 한다. 옷을 돌돌 말아 부피를 줄이고 컵라면의 컵을 포개고 내용물을 따로 비닐에 담아가는 등 여러 노하우를 전한다. 여행가방 광고의 핵심이 같은 부피대비 공간활용이 뛰어남을 우선 소개하는 것만 보더라도 여행에서 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내 스스로 여행을 더욱 많이 다녀본 후 어릴 적 가족여행에서 어머니가 챙겼던 여행짐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어려선 몰랐지만 어머니는 항상 극한의 효율을 가진 짐을 챙기고 싶어하셨고, 여행출발 당일 항상 말씀하셨다.
“각자 양치하고 물기 잘 털어서 비닐장갑에 칫솔 넣어”.
어릴 적이지만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기에 그 시기에도 살균기능까지 있는 휴대용 칫솔케이스는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네 가족의 칫솔을 케이스를 담으면 얇은 칫솔 4개이지만 짐의 개념에선 어쩌면 어린이 슬리퍼 하나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는 격이었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스스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며 그제서야 어머니의 아이디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각자 필요한 짐을 각자 챙기지만, 어린 시절 여행지의 숙소 세면대엔 항상 비닐장갑 속 손가락 하나씩 찾아 들어간 네 개의 칫솔이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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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이란 그 자체로 불규칙하게 뒤섞여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라는 의미를 가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화이트노이즈’라는 이름으로 듣기 좋은 시끄러운 소리를 스스로 찾는다. 여러 불쾌한 소음 중 ‘화이트’라는 긍정의 의미를 부여하여 불쾌한 소리에서 들을 만한, 찾는 소리라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한다. 흔히 우리가 ‘화이트 노이즈’라 칭하는 소리를 찾아보면 카페소음, 도심 자동차소리, 불특정다수의 대화소리, 자연의 소리 그리고 심지어 씽크대 물소리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모두 우리가 평소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소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화이트노이즈’는 어떠한 차이로 인해 ‘화이트’라는 특권을 가질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집에서 개인적인 작업에 집중하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러한 경우 음악을 틀고 진행하는 경험을 우리는 모두 했을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 멜로디를 들으며 일하는 것이 집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음악을 재생하는 행위는 음악 외의 원치 않는 소음을 차단하는 행위이다. 세탁기의 종료알림,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 주방에서 들리는 식기들의 부딪히는 소리 등은 상당히 신경쓰이고 집중에 방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집중을 방해하는 소리와 도와주는 소리의 원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이러한 차이를 관계와 책임에 집중한다. 개인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 소리인가, 얼마나 친분이 있는가, 무시해도 괜찮은가.
방해되는 소리라고 제시한 예의 경우 개인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소리의 대다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거나, 제품의 경우 개인의 일상과 가까운 관계를 가지며, 무시할 수 없는 소리이다. 이러한 소리를 들으면 ‘세탁기가 다 돌아갔으니 빨리 꺼내지 않으면 주름지겠군, 전자레인지가 끝났으니 꺼내지 않으면 한 번 더 알람이 울리겠군’ 등 사실관계를 즉각판단하며 다음 단계를 자연스레 예측한다. 이러한 사고과정은 이미 개인이 집중하는 일과는 동떨어진 다른 일이며, 독립된 집중과는 거리를 두게 한다.
이와 달리 ‘화이트노이즈’라고 칭하는 소리의 경우 개인과의 관계에서 분명 일정한 거리를 가진다. 카페에서의 여러 소리는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남’의 소리이며 카페근처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은 내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 외부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려도 개인은 그 다음 일어날 일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진정 관계의 외부에서 발생하는 소리에 대해 개인은 조금의 책임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신경쓰고 싶지않은,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필요에 따라 부정적 의미의 소음을 찾아 들으며 ‘듣기좋은’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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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유리구슬을 산다. 분명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어떠한 필요에 의해 이끌린 행동이다. 집에 돌아와 유리구슬을 책상에 놓으려고 하지만 책상이 지저분해 공간이 부족하다. 여기서 우리는 책상정리에 대한 필요를 느낀다. 이 필요는 책상 위의 배치를 디자인하게 한다. 이어서 더욱 깔끔한 배치를 위해 수납함을 필요로 하게 된다. 개인의 시간에 집중하고자 하는 필요는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필요로 하고 책임지지 않는 소리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필요는 일회성으로 생기고 소멸되지 않는다. 필요는 이전의 필요를 요구하고, 그 후 새로운 필요를 파생시킨다. 이처럼 필요는 필요와 결부되며, 모든 필요는 연결되어 있다. 쓸모없는 유리구슬을 구매하는 행위가 어디서 생겨난 필요인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지만 분명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떠한 필요에 의해 파생된 필요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