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결혼, 섹스. 그 본능의 현실이 정말 아름다운가?
필자는 이 글에서 사랑, 결혼, 섹스에 대해 이상을 노래하지 않고 냉정한 현실을 서술할 것이며, 모든 내용은 윤리와 본능사이의 마찰에 대한 찰나의 생각이다.
사랑, 결혼 그리고 섹스. 한 사람의 삶에서 이보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단어는 쉬이 찾기 힘들다. 드라마, 영화 그리고 음악 등 여러 문화매체에서 다루는 아름다운 서사는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을 선사하지만, 이러한 모든 감정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허상과 환상의 쾌락이다.
현대사회에서의 결혼은 사랑을 선행에 두고, 사랑에 귀속되어 그를 증명하는 하나의 절차로서의 행위이다. 하지만 섹스는 시대불문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과정 그 자체이기에, 사랑과 증명으로의 결혼 없이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바램에서의 결혼이 사랑의 증명이라면, 인간사회에서의 사랑과 결혼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과거 결혼은 권력강화, 신분 상승 그리고 가문간의 유대감 강화 등의 목적으로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중매결혼이 대다수였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사랑에 전제를 둔 결혼인 듯 조금은 이상적으로 보이긴 하나, 사실 현대사회에서의 자유로운 결혼 역시 많은 이익관계를 위해 존재한다. 혼인신고라는 절차를 밟아야만 사랑을 증명하고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시선, 절차와 별개로 당사자 사이에서 충분히 발현되고 지속가능 하다. 하지만 혼인이라는 절차를 통해서야 사회는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고, 인정된 사랑을 토대로 주택청약에서의 신혼부부가산점 등 여러 혜택을 통한 직접적인 이익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의 결혼은 무분별한 섹스를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과거의 동성동본 금지법에서 간통죄까지, 혼인에 대한 제한과 혼인 후의 성생활의 자유를 법으로서 제한해왔다. 이제는 사라진 법안이지만, 존재했음은 사실이고 우리 사회에 섹스를 허용하는 관계의 범위 및 혼인 후의 부부관계 외의 섹스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혼인 후에도 자유로운 섹스를 사회통념으로 지원하고 허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섹스는 자유로운 성욕의 해소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는 별개로 보편적윤리의 명제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덩이가 되어버린 것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낙태, 미혼모, 영아살해 및 유기 등 자유로운 섹스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는 다양하고 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섹스의 의사여부에 따라 바뀌는 판결의 성범죄 등 본능에 치우친 자유로운 섹스는 책임소재를 두고 꾸준히 공방한다. 따라서 현대사회는 본인 섹스를 책임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혼인을 통해 그 자격을 검증한다. 섹스는 혼인의 검증을 거친 후 비로소 당사자간 자유로울 수 있고, 혼인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섹스는 당사자간의 이해관계 및 극심한 조심 등 무거운 법적책임을 부여해 자발적 통제를 부여한다.
결혼은 사랑을 선행에 두고 결혼한 상호간의 합의에 의한 섹스로 후대를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인간사회는 절대 그러하지 않다. 혼인을 통해 검증받은 사랑주체를 대상으로 특별한 복지를 제공하고, 그들 사이의 섹스를 전적으로 허용한다. 어쩌면, 결혼은 사랑이 아닌, 실질적 이익과 자유로운 섹스에서의 공동책임을 보장받기 위한 상호간의 이익적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사랑과 섹스에서 오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원 후 2000년간 발전되어 온 윤리적 규제의 가장 최신본이 실질적이익과 공동책임에 대한 상호간의 이익적 계약이라면, 인류문명과 사회엔 더 이상 순수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고, 아름다움의 탈을 쓴 손익과, 이해관계로 지배된 인간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여 모두가 계약한 근본적인 가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매우 보여진다.
기존 철학자들의 견해를 보자. '버트란트 러셀'은 결혼이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이미 현재 시대와는 맞지 않는 의견이다. 더 이상 출산은 결혼과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필수현상이 아니게 되었다. 결혼 선택에 이어 출산 선택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은 본능에 굴복하지 않게 되었다. 번식이라는 본능, 그 본능에서 이어진 가문의 대를 계승해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 이러한 사회상과 부계사회의 세계 공동체의 결합으로 생겨난 여성을 하대하고 남성을 우대하는 남아선호사상까지. 한국만 보더라도 건국이래 가장 오랜 시기를 지배해온 사상이다. 이러한 관념이 현대에 이르러 조금씩 사라진다. 더 이상 가문의 명예를 위해 살지 않으며, 가정을 위한 맹목적인 희생을 피하고 일생동안 오롯이 개인의 삶의 행복과 질에 집중한다. 핏줄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에서 벗어나고, 반강제적으로 나와 다른 남과 억지로 만나 평생을 살아야 할 필요가 없으며, 부족한 형편과 처지에서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더 나아가 굳이 아이를 책임질 정도의 노력과 고생을 피하기 위해 출산을 과감히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든 결정은 개인의 이익과 결부시켜 이뤄진다. 이익이 없다면 쉬이 행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결혼, 생활, 섹스는 개인의 이익관계와 기준에 접목시켜 결정한다. 결혼이라 하여 상대배우자와의 관계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혼을 통한 사회적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 독신과 혼인신고 후의 받을 수 있는 정부의 여러 복지혜택 등 한번뿐인 개인의 삶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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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경험은 결과와 무관하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다. 첫 교제가 아닌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밤낮으로 상대방 생각만 하던, 그 때의 기억. 중,고등학교 혹은 20대 초반의 경험. 모두가 그 때를 그리워하진 않지만, 절대 잊지 못하고 그 때의 순수함 만큼은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