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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과사색 Jul 28. 2022

우울증 극복 방법:친구, 정서적 지지 집단 만들기 후기

사람이란 으레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루 세 끼 밥을 먹어도 다음날이 되면 또 허기가 찾아오듯이, 사람으로 채워도 채워도 뒤돌아서면 외롭다. 본디 위가 텅 빈 채로 태어나고 매 끼 밥으로 채워도 채워도 계속해서 비워진다는 것은, 사람의 기본값이 허기짐이라는 뜻이다. 외로움도 그렇다. 누구와 무엇을 하더라도 하루 끝 상념의 시간들이 고독으로 수렴되는 이유는, 사람의 기본값이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즐겁고, 편안하고, 기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결국 그동안은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즐겁고, 편안하고, 기뻤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외국에 혼자 산다는 것은 늘 외로운 일이다.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운데, 없으니 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회는 사람들의 고립을 장려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상대방에게 폐가 되는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 되어버렸다. 외국에서 혼자 얻어맞은 코로나는 매우 처절했다. 혼자 주섬주섬 일어나서 입에 거미줄 친 채로 재택근무하고, 혼자 밥 차려먹고, 혼자 나를 지키는 일은 처참하도록 외롭고 쓸쓸했다. 덕분에 몸은 건강하게 지킬 수 있었으나 나의 마음은 이미 쓰러져서 방바닥을 기어 다녔다. 


내가 오늘 당장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고립과 외로움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가치와 자존감이 낮아진다. 나는 아무와도 연결되어있지 않고,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 같고, 나에게 마음 써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사라져도 티 하나 날 것 같지 않은 이 거대한 세상에서 나는 너무 혼자였다. 그렇게 코로나는 나의 우울과 무력감과 무기력을 가속시켰고 나의 자존감 또한 땅바닥에 처 박아버렸다.


내가 구겨져서 바닥으로 고꾸라질 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매우 큰 비극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비극은 외로움에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추락을 잡아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자유롭게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에린의 말처럼,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 지지 집단이 중요하다. 그것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될 수도 있다. 문제가 있을 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생각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내 문제를 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가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비극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 친구, 정서적 지지 집단을 찾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나 학교가 많은 보스턴 특성상, 친구들이 학교 졸업 후 다른 도시로 혹은 한국으로 많이 떠나기 때문에 친구를 자꾸만 잃게 된다. 보스턴은 오래 살 수록 친구가 줄어드는 이상한 도시이다.


어쨌든 간에,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나의 정서적 지지 집단을 내가 찾아내서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좁은 원룸 골방에서 그야말로 썩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1. 취미 활동 모임에 나간다.

에린이 같은 취미 활동을 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을 추천했다. 취미 활동을 하는 것 자체에서 일단 즐겁고, 그래서 모임에 나가는 것이 더 수월하고, 멀뚱멀뚱 어색 어색하게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만 목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친구 만들러 모임에 나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서러웠다. 언제나 학교나 회사나 성당에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만들어졌는데,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이 내게는 부자연스러웠고 낯설었고 서글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학교는 이미 졸업했고, 현재 재택근무를 하고, 다른 한인 공동체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더 이상 '자만추'만 고집할 수 없었다.


그래서 Meet Up에 가입해서 여러 모임들을 훑어봤다. 하이킹 모임, 북클럽, 와인 모임 등등 많았지만 뭐 하나 끌리지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취미가 없는 무미건조하게 말라비틀어진 곶감 같은 여자인데, 취미가 없으니 친구도 못 사귀나 싶어서 더욱 슬펐다. 어떤 모임은 대놓고 '친구 사귀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구나, 싶어서 심심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글쓰기 모임을 발견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두 시간 동안 각자 글을 쓰는 모임이었다. 발표나 비평 같은 거 없는 정말 글 쓰는 모임이었다. 세상에 이런 모임이 있다니 너무 반가워서 그 주 토요일에 당장 모임에 나갔다. 


무진장 좋았다. 열다섯 명 정도가 매주 꾸준히 나오는 잘 운영되는 모임이었다.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처음 약 10분 정도 각자 소개를 하고, 오늘 무엇에 대해 글을 쓸지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 동안 백오십 개의 바쁜 손가락들이 랩탑 위를 통통 튀어 다니며 글을 썼다. 나에게는 이것이 그랜드캐년에 비하는 장관이고 남들이 크로스핏을 하며 얻는 엔도르핀과 맞먹는다. 늘 혼자 방구석에 박혀서 오늘 사라져도 모를 노바디로 살았는데 갑자기 열다섯 명이 내 곁에 둘러앉아 취미를 공유해주다니. 마치 나의 군대가 생긴 느낌이었다. 나와 친구가 되어서 같이 밥을 먹어준 것도 아니고 술을 먹어준 것도 아닌데 벌써 외로움이 가시고 있었다. 마치 사람의 존재 자체와 외로움이 자석의 다른 극인 것처럼, 옆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서 바쁘게 글을 쓰는 한 인간의 존재가 나의 외로움을 어느 정도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니 가족이나 친구와 더 친밀히 상호작용을 하고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활동 자체가 채워주는 기쁨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내가 속해있는 그룹이 있다는 것은 소속감까지 주었다. 난 더 이상 오늘 사라져도 모를 노바디가 아니고, 나의 커뮤니티가 있고,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모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외로움이 채워졌다. 아직 주말에 브런치 먹을 정도의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정기적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나 또한 속해있는 모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고 기쁨이다.


이래서 취미를 함께하는 모임에 나가는 것이 좋은 듯하다. 취미 활동을 하는 것 자체에서 일단 즐겁고, 그래서 모임에 나가는 것이 더 수월하고, 멀뚱멀뚱 어색 어색하게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만 목 빼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 친구 사귀기 어플을 이용한다.

낯을 가리는 내 입장에서, 더군다나 나가는 모임이 입 꾹 닫고 바쁘게 글만 쓰는 모임이라면, 친구다운 친구를 바로 만들기는 힘들다. 그래서 에린이 범블(Bumble)이라는 데이팅 어플을 통해 친구를 사귀기를 추천했다. 이성이 아닌 동성 친구를 만나는 기능이 있는데, 에린도 처음에 보스턴으로 이사 왔을 때 이 어플을 통해서 현재의 베프를 만들었단다. 나의 경우 데이팅 어플에 대한 신뢰도가 크지 않았던 지라 전혀 사용해보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동성 친구를 만나는 기능이 있다니, 이건 얘기가 달라진다. 흑심 없고 안전하고 마음 통하는 여자 친구를 잘 골라서 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촉이 왔다.


범블에 가입을 했다. 프로필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취미, 친구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썼다. 그러고 나서 보스턴에 누가 있는지 사람 목록을 훑어보는데, 정말 놀랐다. 엄청나게 많은 여자들이 범블 어플에서 친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 멀쩡해 보였다. 친구가 많을 것처럼 보이는 예쁘고 젊고 좋은 직업을 가진 여자들이 마구 쏟아져내렸다. 난 내게 문제가 있어서 친구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이 학교 졸업 후 혹은 다른 도시로 이사 후 친구를 다시 사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었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 노력을 하고 있었다. 


더욱 놀랐던 것은, 미국 여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라이크'를 눌렀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주말에 시간 되면 커피 마시자고, 저녁 먹자고, 적극적으로 나를 알아가려고 했다. 사실 예전 학교와 회사에서 미국 사람들과 좋은 친구 관계가 되었을 때도, '자기네 나라에서 가족도 있고 친구도 많을 텐데 뭐가 아쉬워서 나랑 친구를 하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그랬던 게 아니라 내가 좋았기 때문이겠다, 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람만 스무 명이 넘었다. 그중 여섯 명의 여자 친구들과 커피, 브런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그중 두 명과 친구가 되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어플을 통해서 너를 만나게 되다니 너무 감사하다' 고 말할 만큼 감사한 인연이 되었다. 두 명의 친구만으로도 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웃는 순간들이 많아졌고, 행복한 추억들이 많이 생겼으며, 주말이 다채로워졌다. 마음이 통하는 단 두 명의 친구들 덕분에 내 세상이 넓어졌다.


3. 종교 모임에 나간다.

성당은 내게 큰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곳이다. 우울한 마음도 외로운 마음도 다 씻어가 주는 곳이다. 그래서 성당에 있는 시간을 늘리고 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일단 매번 빠지던 한인 성당 미사를 다시 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미사 전과 후로 한국분들과 안면을 트고 인사를 하고 간단한 말 몇 마디 나누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공부 모임에 가입했다. 모임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만 소속감과 책임감이 더욱 생길 것 같아서 서기를 맡았다. 또래가 없어서 친구는 못 사귀었다. 내가 제일 어리고 나 다음에 어린 분이 40대 후반이다. 하지만 막내라고 반겨주시고 챙겨주셔서,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모임에 나간다. 하루는 어떤 자매님께서 가족은 있냐고, 장은 어떻게 보냐고, 밥은 어떻게 해 먹냐고 물으시더니 일주일 후에 김치찌개와 나물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셔서 주셨다. 하루는 어떤 자매님께서 저녁 식사 초대를 해 주셨다. 하루는 또 다른 어떤 자매님께서 미사 끝나고 점심 먹자고 하셨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과 더욱 끈끈하게 이어지는 듯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렵지만, 오히려 마음으로는 더욱 가깝고 애틋하고 감사한 인연들이 만들어졌다. 


4.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한 모임에 나간다.

예전에 재활치료사로 일할 때 뇌졸중이나 파킨슨병처럼 만성적 장애와 진행성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많이 치료했었다. 질환 특성상 호전이 더디고 오히려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점점 희망을 잃었고 우울해졌었다. 몸이 장애를 얻은 상황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위로도 때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뇌졸중 환자들에게는 '뇌졸중 환자 모임'을, 파킨슨병 환자들에게는 '파킨슨병 환자 모임'을 가도록 적극 추천했었다. 내가 일했던 병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이러한 모임들을 제공했었는데, 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컸다. 일단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이 빠르게 형성되었고, 좋은 치료나 약물에 대한 정보 교환도 용이했고,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힘과 응원이 되었다. 환자 모임은 긍정적인 효과가 컸다. 실제로 내 환자들에게 있어서 모임에 가는 날은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날, 즐거운 날,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이러한 모임이 꼭 환자 모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라면 한 번 참여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이혼한 사람들의 모임', '아이가 없는 부부 모임', '사춘기 자녀를 가진 엄마들의 모임', '만학도 모임' 등등 다양한 모임들이 매우 많다. 나의 경우에는 '보스턴에 사는 인터내셔널 30대 여성 모임'에 나간다면 동질감을 크게 느낄 것 같다. 미국 생활에 대한 정보 교환도 될 것이며, 혼자서 하는 힘든 외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힘과 위로를 받을 것 같다. 


특히나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어두운 터널일수록 함께 걷는 사람의 힘은 더욱 크다. 그 힘을 믿고서 모임에 나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5. 봉사 활동을 한다.

8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외로웠었다. 누군가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서로에게 응원이 되고 행복이 되고 싶었는데 이런 것이 채워지지 않는 외국생활이 참 외로웠다. 단순히 함께 밥을 먹으며 공허한 저녁시간을 때우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관계가 그리웠다. 내가 상대방에게 가치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그리웠다. 그리고 이러한 결핍은 외로움을 주었다.


그래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헬렌 켈러가 다녔던 학교인 '퍼킨스 스쿨'이라는 학교가 있는데, 시각 장애인을 위한 특수 교육을 제공한다. 주말에 숙제를 도와주거나 함께 운동을 해주는 봉사자들을 많이 필요로 한다. 내가 맡은 일은 시각 장애가 있는 16살 여학생과 토요일에 함께 학교 캠퍼스를 산책을 하는 일이었다. 걷기를 좋아하는데 혼자서 산책할 수 없으니 봉사자만 목을 빼고 기다린다는 아이라고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캐서린이었다. 캐서린은 참 밝고, 웃음이 많고, 수다스러웠다. 토요일에 만나면 일주일 동안 있었던 학교 얘기, 삼촌이 지난번 땡스기빙 때 너무 크게 방귀를 뀐 얘기, 삼촌이 웃겨서 좋다는 얘기를 깔깔대며 해주었다. 덕분에 나도 참 많이 웃었다. 그렇게 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마음이 채워졌었다. 캐서린이 산책할 수 있었다는 것,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 의미를 주었다. 누군가와 단단한 끈으로 연결된 느낌, 진한 것을 주고받는 느낌, 서로에게 의미가 되어주는 느낌이 넘쳐흘렀다. 


그래서 삶이 공허하거나 외롭거나 나의 쓸모를 모르겠거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사람과 긴밀히 상호작용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돕는 행위 자체에서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을 얻게 되며, 그 마음은 나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할 만큼 강렬하다. 선을 행하면 자연스럽게 선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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