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과의 다섯 번째 만남: 나를 사랑하는 방법
2022년 3월 1일. 심리 상담가 에린과의 다섯 번째 만남.
“저 좋은 소식 있어요! 가고 싶었던 회사에 데이터 분석가로 취직했어요.”
“정말 축하해요! 생각보다 빨리 이직에 성공했네요!”
“네, 이직해서 환경도 바뀌고 제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면 생활에 활력이 될 것 같아서 서둘렀어요. 너무 늦지 않게 제가 바라던 대로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상담 시작하기 전에는 맨날 누워있기만 하고 할 일을 미루기만 했는데, 덕분에 무기력한 생활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잖아요. 행동 활성화 일지 (Behavioral Activation Activity Diary)가 참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해요.”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기뻐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실제로 해낸 사람은 본인이에요. 일상생활 습관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기고, 이직에 성공한 것도 다 본인이 한 거예요. 저는 그냥 옆에서 가이드를 조금 해줄 뿐이었어요. 정말 축하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일에서 오는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길 바랐었잖아요. 이직한 회사에서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성공적으로 끝내는 경험들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게 될 거예요. 그러니 이직을 한 것이 한 가지의 좋은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되겠죠.”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 좋아요. 동료들과 협업해야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좋고요. 다 같이 으쌰 으쌰 해서 무언가를 함께 성취하는 과정에서 제가 의욕적으로 되거든요. 예전에는 일하는 것이 그냥 돈 버는 수단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고 제 삶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제가 의미 있게 잘 쓰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소속된 곳 안에서 성장하고 인정받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람이더라고요. 예전엔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하는 기계로 사는 것이 너무 아깝고 인생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계기로 크게 깨달았어요. 일이 저의 삶을 오히려 더욱 생기 있게 하고, 저를 살리는 원동력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일을 한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기쁘네요. 우리가 만나서 얘기를 나눈 시간은 길지 않지만 벌써 생각과 일상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보여요. 이직을 기점으로 일상이 점점 회복되길 바라요. 우리 계속 노력해봐요.”
“맞아요. 그런데 제가 이직 성공했으니까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요… 제가 사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 면요… 그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일부러 이직하지 않았어요. 이직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월급도 기가 막히게 적고, 하는 일도 싫고 팀원들도 너무 싫었지만, 일이 너무 쉽고 단순하니까 제 여가 시간이 많았거든요. 제 남는 모든 시간을 그를 위해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지만 이직을 안 하고 싶었어요. 한심하죠. 그런데 그 사건을 계기로 제 삶을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제야 이직에 매달리게 된 거예요. 너무 바보 같아요.”
“바보 같은 거 아니에요. 저도 그런 적 있는걸요. 사랑을 하면 너무 좋잖아요. 내 세계가 송두리째 바뀌고 상대방 밖에 안 보이고 그런 걸요. 진심을 다해서 본인 감정에 충실했던 거지, 바보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네, 말씀해 주세요.”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일단은 이전 직업에 크게 회의감을 느끼고 직업을 바꾸려고 다시 대학원을 가셨죠. ‘직업을 잘 못 선택했구나’라고 느꼈다고 하셨는데, 그건 간단한 감정이 아니에요.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에서 오는 회의감이 큰 타격을 줬을 거예요.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불만족스러워하거나 회의감을 느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직업을 바꾸지 않아요. 대학원을 다시 간 것은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본인은 그 용기도 냈고, 박사까지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죠. 그런데 그 마저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하기로 결정했고, 박사를 포기하자 패배감도 느꼈다고 했어요. 그리고 팬데믹이 덮쳤고, 취직이 힘들었고, 만족스럽지 않은 직장에 다니게 되었어요.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이 매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러는 와중에 그분을 만나게 되었고요.”
“네 맞아요.”
“즉, 스스로를 잘 돌보거나 본인을 완전히 사랑하던 상태에서 상대방을 만난 것이 아니란 얘기예요. 자존감도 떨어지고 인생에 회의감이 들고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때 그분을 만난 거예요. 내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랑에 빠지면, 관계 속에서 나를 잃게 되기 쉬워요.”
“그렇죠…”
“그동안 얘기를 들어보면, 상대를 위해서 많이 맞춰 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랬죠… 음… 사실 ‘내가 사랑이 참 고픈가 보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 사람은 참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사랑받는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사랑받고 싶어서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맞춰서 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면 사랑을 더 많이 받을 테니까 오히려 저에게 좋은 거라고 착각했거든요. 그러니 제 일상에 저는 없더라고요. 모든 게 그 사람 위주였어요. 늘 바빴던 사람이라서 언제 데이트하게 될지 모르니까 평일 저녁에도 주말에도 일정을 아무것도 잡지 않고 기다렸어요. 친구를 만날 때보다 그 사람을 만날 때 더 행복하고 기쁘니까, 친구도 안 만났어요. 그 시간에 그 사람을 한 번 더 보는 게 저한테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나요?”
“사랑을 하니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저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사람이 나쁘거나 잘못해서가 아니에요. 제가 사랑에 너무 목말라했고 매달린 느낌이랄까요. 제 결핍을 그 사람을 통해서 채우려는 것처럼요.”
“그 결핍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저를 사랑해주는 것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을 때 만난 사람이라서 더욱 저를 잃어버렸었고 더욱 사랑에 매달렸었나 봐요. 그래서 아쉽기도 해요. 제 결핍 때문에 관계를 망친 것 같아서요. 제 마음이 더 행복했을 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가장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채워지지 않은 결핍을 계속 느껴요. 사실은 내가 나에게 채워줘야 하는 사랑이 있는 건데 말이죠.”
“그러게요… 그래서 그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늘 쓸쓸했나 봐요. 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관계 안에서 본인을 잃는 분들에게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사랑은 선데 아이스크림 위에 있는 토핑 같은 거라고요. 토핑이 있으면 좋아요. 맛있고요. 그렇지만 없어도 돼요. 토핑이 없어도 선데 아이스크림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잖아요.”
“사랑이 없어도 되는 거라고요..?”
“사랑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랑을 하면 당연히 좋죠. 정말 좋죠. 제 말은, 인생에 사랑이 꼭 ‘필요’ 하지는 않다는 뜻이에요. 관계 안에서 나를 잃는 상황에서도 ‘내게 사랑이 꼭 필요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끊을 놓지 못하면, 그건 건강하지 못한 거예요. 스스로를 잃은 상태로 사랑을 갈구하거나 사랑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저도 안 그러고 싶은데 자꾸만 그렇게 돼요. 진짜 안 그러고 싶거든요. 저도 저를 챙기고 싶은데 왜 이럴까요?”
“먼저 본인 스스로를 사랑해야 해요. 내면이 나에 대한 사랑을 꽉 차야 해요. 그래야만 타인에게서 오는 사랑이 선데 아이스크림의 토핑처럼 될 수 있어요. 있으면 참 좋지만 없다고 해서 괴롭지 않게 되죠. 셀프 러브를 연습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셀프 러브가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말이 참 흔하게 쓰이잖아요.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 어떤 행동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행동인지 너무 모르겠고 생소해요. 도대체 어떤 게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해요. 첫 번째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하고 기분이 좋은지를 알아야겠죠. 예를 들어, 아기자기한 카페에 나가는 거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이번 주말에 카페에서 맛있는 크루아상에 커피를 마시는 것도 나를 사랑해주는 방법 중 하나예요. 미술관에 가는 것도 좋아하시잖아요. 그러면 친구랑 미술관에 가는 것도 나를 사랑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내 건강을 챙길 때 나를 사랑해주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건강한 샐러드를 먹거나, 땀 흘려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면 스스로를 사랑해준 느낌을 받아요.”
“생각보다 시작이 어렵지 않네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니까요.”
“그럼요. 두 번째로는 내게 친절해야 해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정한 기준이 있어요. 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것을 성취하면 좋겠다, 이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다, 등등 개인적인 꿈이나 인생에 대한 그림이 크고 작게 있어요. 그런데 언제나 늘 그 꿈을 이루고 목표를 달성하면서 살 수는 없죠. 슈퍼맨이나 초능력자가 아니잖아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릴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방향을 바꿔야 할 때도 있고, 다른 시기를 노려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매섭게 몰아붙이기도 하고, 한심하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실패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해요.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지 않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친구에게는 ‘괜찮아, 다른 기회가 또 올 거야. 이것은 네 것이 아니었던 거야'라는 친절한 말을 해주면서, 나에게는 ‘난 역시 뭘 해도 안돼. 이게 내 한계야. 너무 못났다.’라고 모진 말을 하죠.”
“제가 딱 그런 사람이에요. 늘 저를 몰아세우고, 아무리 잘해도 만족하지 않고 더 잘해야 한다고 닦달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주할 것 같거든요. ‘이 정도면 됐지'라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이것이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여태까지 계획한 것을 성취하고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저를 늘 달달 볶으면서 숨 쉴 틈도 없이 공부하고 일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안주하면 만족하면 인생을 그냥 되는대로 살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워요.”
“그렇지 않아요. 내게 친절한 것이 훨씬 더 크고 좋은 원동력이고 영양분이에요. 매니저와 직원의 관계를 예로 들어 볼게요. 직원 입장에서 매니저가 나를 늘 비난하고, 칭찬해주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일의 능률이나 성과가 어떨 것 같아요? 반대로 매니저가 나를 격려해주고, 인정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다면 어떨까요?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
“그렇게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니 단번에 이해가 되네요. 사실 이전 직장 매니저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잔소리하고, 성과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은 안 해주고, 계속 일만 시켰거든요. 처음에는 꾸역꾸역 일을 해내기는 했지만, 결코 즐겁지 않았고 일을 잘해주고 싶지 않다는 삐뚤어진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직장의 매니저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제가 프로젝트하는데 필요한 지원이나 도움을 아끼지 않고, 늘 격려해주거든요.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드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네, 바로 그거예요. 꽃한테 소리 지르고 면박을 준다고 해서 더 아름답게 자라나요? 햇빛과 물이 있어야 성장하는 거예요. 셀프 러브는 나 자신에게 좋은 영양분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감사해요. 노력해 볼게요.”
“그리고 세 번째는요. 내가 어떤 모습이든 간에, 어떤 상황에 놓이든 간에 그 순간의 나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가정도 꾸리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연봉도 오르고, 원하는 대로 일이 된다면 참 좋겠죠.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응원해요. 하지만 미래가 내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어요.”
“괜찮을 수 있다고요…?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저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을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이가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워하거든요. 가임기도 지나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어요. 어떤 날은 너무 괴롭다고 우시더라고요. 제 미래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저도 그렇게 될까 봐 공포스러워요.”
“마음에 따라 달린 거예요. 아이가 없다고 필연적으로 고통스러워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가 없어도 본인의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고 기쁨을 찾기로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린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키우잖아요. 그게 좋은 거니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닐까요? 저만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면 열등한 거 아닐까요?”
“그것 또한 마음에 달린 거예요. 왜 열등하다고 생각하시죠?”
“음… 제가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비혼 상태의 자신이 왜 열등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 생각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일단, 내 모습에 실망하는 이유는 본인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판단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낙오시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판단 기준들을 내가 자의적이고 독립적으로 세운 것들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을 내 판단 기준들로 삼는 걸까요? 다시 말해서, 내가 결혼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열등하다는 생각이 내가 정한 기준인지, 사회가 정한 기준인지 생각해 보라는 뜻이에요.”
“글쎄요… 그러고 보니 어떤 기준들이 나 스스로 만든 것들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네요. 스스로 정한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여러 가지 관념과 통념들을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어요. 대다수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 거나 ‘좋다’ 고 여기죠.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통념은 개인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쳐요. 나 또한 사회가 정해놓은, 대다수가 하고 있는 일을 해야만 행복해진다고 착각하죠. 뒤처지는 것 같으면 스스로를 쓸모없고 가치 없다고 느끼게 되고요. 그래서 고통스럽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자존감을 낮추기만 해요. 결혼을 하지 않아도 본인이 충분히 가치 있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 것을 깨달아야 해요. 아이가 없어도 본인 인생이 충분히 풍요롭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는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라는 사회적 통념과, 본인이 진실로 원하는 것을 구분해야 해요. 그렇게 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죠? 어떻게 해야 해요?”
“제가 좋은 책 하나를 추천해 줄게요. ‘You are a badass’라는 책인데, 제 인생을 바꿔준 책이에요. 셀프 헬프와 셀프 러브의 개념과 실천하는 법이 자세히 적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저도 스스로가 불만족스럽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제 자신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나 스스로를 사회가 정해놓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덕분에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비로소 저를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거예요. 내면이 나에 대한 사랑으로 꽉 차니까 정말 행복해요. 제 인생은 이 책을 읽은 전과 후로 나뉘어요. 정말로요.”
셀프 헬프, 셀프 러브에 대한 자세한 개념과 실천 방법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