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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 Jul 13. 2021

프리랜서의 도시락 4

떡갈비 고추 계란덮밥과 인절미 와플

엄청 잘 자란 작물들

4월쯤엔가, 고추와 고구마 모종을 집 앞에다 심었다.


시장에서 사 온 고구마 한 단과 고추 한 판. 밭의 안 쪽에는 고구마를, 길 가에는 고추를 심었다. 고구마는 9월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고추는 언제든지 따먹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저게 제대로 자랄까? 사실 기대는 없었다. 살면서 뭘 심어 본 적도 없고(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심었던 관상용 식물은 여럿 말려 죽인 적이 있다) 모종 자체도 비실비실해 보였던 터라 건강하게 자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왕에 심었으면 키우는 시늉이라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에 고추 비료와 고구마 비료를 사서 솔솔 뿌려주긴 했다.


그런데 왠 걸, 먼저 쑥쑥 자란 고추는 풍년을 일구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는 제법 단단하게 여물었고, 가까이서 보니 매운 냄새가 풍겼다.


이게 맛도 좋을까 몰라.


보기에는 튼튼하게 잘 자랐는데, 맛은 어떨는지. 나는 잘 자란 고추를 몇 개 따서 가져와 큼직큼직하게 썰어 계란물에 넣고 섞었다. 그런데 잘게 썰어야 할 걸 크게 써는 바람에 말이로는 잘 안 말릴 것 같아, 결국 스크램블 에그로 만들어 밥 위에 덮기로 했다. 계란과 야채만으로는 심심할 것 같아, 저번에 사 두었던 떡갈비는 몇 개 썰어 넣는다.



"어우, 맵다."


썰 때도 그랬지만, 볶을 때마저 올라오는 매운 낌새가 심상치 않다. 그렇게 덮밥 재료를 다 볶은 나는 도시락을 꺼냈다. 밥을 담을 때 도시락 구석에 높게 쌓던 평소와 달리 이번에는 도시락 바닥에 얇게 편 다음, 케첩을 밥 위에 살살 발랐다. 그리고 준비해두었던 덮밥 재료를 싹 얹었다.


곱게 싼 도시락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밥때에 도시락을 열어 만들었던 것을 떠서 먹었다. 부드러운 향의 계란과 매콤한 고추, 그리고 살짝 달짝지근한 떡갈비가 입안 가득 씹혔다.



좀 맵긴 한데, 맛은 있네.


매운 걸 거의 못 먹다시피 하던 나지만, 이 매운맛은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덜 매운 것도 아닌데 신기하기도 하지. 나는 아삭아삭 씹히는 싱싱한 고추를 음미하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 + +


와플 메이커로 떡을 찍어 먹는다는 발상은 대체 누가 한 걸까.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천재 임이 틀림없다.


와플 메이커가 유행하던 시절, 사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영상은 많이 봤기 때문에 레시피는 알음알음 아는 편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 크로플과 인절미 와플. 크로플은 생지를 와플 기계로 찍어 만드는 거고, 인절미 와플은 떡고물이 묻은 인절미를 기계로 찍어 먹는 것이다.


내가 인절미 와플이라는 게 있다. 나중에 한 번 인절미를 사 와서 먹어보자.라고 했더니 우리 집 여사님은 인터넷으로 3kg를 시키셨다. 2000원짜리 한 팩 사서 먹어보자라는 뜻이었는데... 우리 집은 나 빼고 다 손이 크다.  


광고...아님....(맛있었습니다)


나머지 것은 다 냉동실에 넣고, 한 팩만 해동한 후 와플 기계로 찍었다. 그런데 크로플보다 더 오래 구워야 했는지, 처음에는 실패했다. 1분만 더 구워 봐야지. 나는 한 봉지를 더 꺼내 시도해봤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진짜 커졌네.


손바닥만 했던 한 덩이는 와플 메이커에 들어가자마자 두 세배로 커졌다. 게다가 옛날, 할머니가 해줬던 대야 인절미(커다란 고무통에 인절미를 가득한 것.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어쨌든 할머니는 대야 인절미라고 하셨다)의 냄새가 났다.


갓 방앗간에서 나온 듯한 고소한 내음에 나는 곧장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그러자 인절미는 바삭! 소리를 내며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설탕보다는 꿀이 맛있다고 해서 집에 있던 꿀을 살짝 찍어 먹어 보니 사실이었다. 더 맛있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나 떡 와플을 좋아했나 했더니만.


유행이 1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당시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떡 한 판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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