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조종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핸들모양의 요크는 보잉계열, 막대모양의 스틱은 에어버스계열에서 주로 사용된다.
2020년 초부터 급속히 퍼진 코로나로 대부분의 국제항공편이 취소됐다.
수개월 내로 진정되리라 생각했던 처음예상과는 달리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 방콕행 비행을 끝으로 세상에서 제일 전망 좋은 사무실을 떠나 무기한 휴직자가 되었다.
계속 집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뭐라도 배워보자는 생각에 내일배움카드 교육과정을 통해 자비부담 없이 40-50대가 지게차 다음으로 많이 취득한다는 굴착기 자격증에 도전했고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했다.
배우면서 알게 됐다. 자격증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그래서 굴착기 실무과정을 추가로 등록해서 도합 반 년 정도 더 배웠다. 수강기간이 반년일 뿐 다른 학생들과 번갈아 가면서 타기 때문에 좌석에 앉아 실제 운전(현장에선 ‘레바’를 잡는다고 한다)한 시간은 100시간 정도로 추산된다.
실무과정에서는 타이어가 아닌 무한궤도 장비를 타게 되는데 제일 마지막에 배우는 것이 장비 상▪하차다.
무한궤도 장비는 접지력이 좋은 만큼 안정성도 뛰어나지만 이동에 제한이 있어 트럭이나 추레라로 옮겨지게 되고 트럭에서 지상으로 사다리의 도움 없이 장비를 적재함으로 올리고 내리는 것을 장비 상▪하차라고 한다.
현장에 가려면 가장 기본적이지만 숙달되지 않으면 전복될 위험이 있어 기량이 수준이상 된다고 판단될 때 제일 마지막으로 교육한다.
상▪하차를 마스터하면 시골 밭일이나 제초, 농장일 정도는 가능하다. 자격증이 있으면 렌탈사업소나 지자체 농기계임대사업소에서 하루6∼15만 원 정도 가격으로 빌려서 사용하고 반납하면 된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고 운전을 까먹지 않는 것처럼 굴착기도 레바가 손에 어느 정도 익으면 간만에 앉아도 금방 적응된다.
자동차에 비해 작동부위가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마치 로봇을 조종하는 느낌처럼 재미도 상당하다. 지인의 부탁을 받고 밭에 나무를 심거나 부모님 농장에서 염소 똥을 치우기도 했으며 지금도 분기에 한번은 과수원 제초작업을 나간다.
600평 정도 되는 과수원 제초는 인력을 고용해 예초기를 돌리려면 최소 수십만원을 줘야 하지만 작은 과수나무를 조심스럽게 피해서 작업해야 하는 까다로움 때문에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임대사업소에서 인근 도로까지 배달해준 소형굴착기를 타고 비포장 고갯길을 넘어가면 오가는 이 없는 온통 진녹색인 나만의 놀이터에 다다른다. 경사로와 나무사이를 오가며, 가슴높이까지 자란 풀을 바가지로 긁거나 삽날로 밀어내는 동안 주변은 투박한 디젤엔진의 털털거림 소리로 가득하다. 바리깡으로 밀어낸 매끈한 뒤통수 모양을 기대했지만 늘 그렇듯이 작업마친 밭은 쥐 파먹은 머리 꼴이다. 처음엔 꼬박 이틀이 걸렸지만 이젠 반나절이면 사업소에 반납통보를 하곤 삼년 전 팔팔할 때보다 헤지고 약해진 굴착기를 살살 달래서 그 고갯길을 다시 넘는다.
제초작업 전
제초작업 후
이렇게 굴착기 탑승은 소소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돈을 받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뼈아픈 경험이 있다.
코로나가 창궐 했던 그 시점까지 비행 말고는 다른 곳에서 근로소득을 만들어 낸 경험이 없던 난 굴착기 기술로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렸다.
굴삭기를 하루 쓰는 비용은 60∼70만 원선. 스페어라고 하는 숙달된 기사에게 25∼28만원을 일당으로 주고 나머지는 굴삭기 소유주인 차주가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물론 나 같은 초짜를 25만원이나 줘가며 기사로 쓰는 곳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서 초보도 지원 가능한 일당 15만원짜리 업체를 찾았다.
면접은 효창공원 주차장에서 했다. 장비를 트럭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가지와 뿌레카(콘크리트나 시멘트에 구멍을 내거나 부술 때 쓰는 유압장치)를 바꿔차는 법과 뿌레카로 벽돌 부수는 법을 몇 번 시켜보더니 당장 다음날부터 작업을 나가라고 했다.
바가지 대신 뿌레카(BREAKER)를 차고 있는 굴착기
의뢰가 들어온 곳은 둔촌사거리 였는데 효창공원에서 차가 안 막혀도 30분은 걸리는 거리라 새벽부터 내차를 끌고 효창공원으로 향했다. 지정주차장이 아닌 무료공영주차장이라 장비가 실려 있는 트럭을 빼고 내차를 넣어서 자리를 맡아놔야 한단다.
트럭에 올라타니 온통 흙먼지와 쓰레기, 그리고 조수석은 경유통과 각종 오일깡통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내 소지품하나 놓을 곳 없이 엉망이었다. 편도 1차선 도로를 막고 차를 빼고 박고했더니만 기다리던 차량의 신경질 적인 경적소리에 출발 전부터 식은땀이 났다. 미안함을 뒤로하고 트럭에 1단기어를 밀어넣고 출발시켰다.
차가 고바위 끝에 있었기에 바로 내리막이 이어졌는데 속도를 줄이려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안……. 아니 들긴 들었다. 엄청 늦게……. 느낌상 밟으면 5미터는 가야 먹는 듯했다.
출근길 강변북로는 거북이걸음이 이어졌고, 클러치를 계속 밟아야 했던 내 왼쪽다리는 작업장소에 도착 전부터 달달 떨리고 있었다.
어쨌든 늦지 않게 도착하니 작업장소는 둔촌사거리 교통섬이었다.
교통섬에 토기모양 조형물을 심는단다. 초보티를 내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장비에 올라타 시동키를 돌렸는데…….
반응이 없다...
두 번, 세 번, 돌려봐도 마찬가지…….
차주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더니, 늘상있는 일 인양 조수석에 있는 점프선으로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보란다. 그때 알았다. 트럭 배터리는 보닛이 아닌 적재함 옆에 있다는 걸.
감독자의 도움을 받아 점프선을 연결해서 시동을 걸고 사다리를 걸어 장비를 내리고.. 시작도 안했는데 시간은 한참 흘렀고 무엇보다 감독자의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한참 땅을 파고 이동을 위해 주행레버를 밀었는데, 좌측 트랙이 움직이질 않는다. 또 차주에게 전화를 했다. 트랙사이를 점검해 보라고 해서 자갈을 좀 걷어냈더니 돌아가긴 했다. 하지만
그날 내내 좌측 트랙은 우측대비 반 바퀴 헛돌았다.
둔촌사거리 작업을 마치니 길동사거리에서도 작업이 있다고 했다. 장비를 올리고 시동을 켜둘까 잠깐 고민했다가, 오전 내내 돌렸으니 배터리 충전이 됐을 거란 생각에 장비시동을 껐다. 하지만 집나간 배터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감독자의 도움을 받아 시동을 걸었다. 창피하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다른 일용직 근로자에게 삽을 얻어 열심히 삽질도 했다.
워낙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어디서 점심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보통 작업은 오후5시까지 하는데 길동사거리 작업을 마치니 해가져서 가로등이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감독자가 철수준비를 하면서 돈은 내일 계좌로 쏴준다고 하기에 차주에게 전했더니 “언제 봤다고 돈을 내일주나! 오늘 받아서 오라!”고 했다. 역시 그대로 전했다.
그 순간 작업 내내 궁시렁 거리기만 할 뿐 별말 없었던 감독자 얼굴이 붉어지더니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사람 많은 횡단보도 사거리 한복판에서...
“아니! 씨발 일도 *도 못하는 새끼가! 장비는 어디서 *같은 거 끌고와서! 내가 돈 떼먹을 놈으로 보이냐!!!” 로 시작해서 몇 마디 더 했는데 첫 문장만 또렷할 뿐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근처 ATM에 가서 뽑아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해서 트럭을 끌고 한 블록쯤 따라 갔을까? 그가 차를 세우더니 돈 50만원을 던져줬다. 장비대는 원래부터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감독자가 떠나고 나서 그 돈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주룩 흘렀다.
내가 심은 토기조형물
9시가 넘어 효창공원에 도착하니 차주가 나와 있었다. 돈을 건네주고 그날 일당으로 받은 돈은 세금 3.3%를 제한 14만원 남짓.
밀리는 브레이크, 좌우 따로 돌아가는 트랙, 방전된 배터리, 전혀 관리안되는 장비를 손볼 생각도 없이 차주는 다음날도 일이 잡혔다고 다녀오라고 했지만 더 배워서 오겠다고 하며 거절했다. 그렇게 차주는 싼가격을 내세워 일감을 물어오고 나같은 초짜를 딱 그만큼 싸게 섭외해서 전화 몇 통에 하루 35만원을 챙겼다.
하루 15만원도 저 업계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많은 기사지망생이 무급 또는 최저시급도 못 받는 생활을 최소 6개월에서 1년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장비기사가 된다.
새벽부터 제2의 직업을 찾은 것 마냥 부산떨던 굴삭기 알바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피로감, 더불어 욕까지 얻어먹으며 그렇게 막을 내렸다.
비행으로 해외에 가면 퍼듐이라고 하는 일정금액을 지급받는다. 잠을 자건, 밥을 먹건, 잠깐 여행을 하건, 뭘 하든 체류시간에 국가별 단가를 곱해서 달러로 지급된다. 1회 착륙 시 마다 받는 랜딩피, 야간이나 휴일에 비행하면 받는 초과수당들은 업무를 해야 받는 돈인데 반해, 퍼듐은 쉬면서 받는 돈이란 의미에서 성격이 좀 다르다. 그 역시 업무의 연장이기에 당연한 듯 받아왔지만 숨만 쉬어도 받을 수 있는 돈과 길바닥에서 개고생 끝에 받은 최저시급 수준의 돈은 그 무게감이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깨끗한 돈, 더러운 돈이 아닌 가벼운 돈, 무거운 돈을 배웠다.
소위로 임관 후 받은 첫 월급이 70 몇 만원, 중위 때 100만원 남짓 이었다. 한참 비행을 배우는 시기라 스트레스는 최고조였고,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은 음주와 게임 등 자극적인 소비로 탕진됐다.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를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홈쇼핑에서 지른 270만 원짜리 펜티엄 컴퓨터는 독신자숙소의 느려터진 인터넷 속도로 제구실을 못했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김해공항 부대에 근무하면서 주말에 스키를 탈 요량으로 100만원이 넘는 카빙스키를 질렀다. 몇 번 타지도 못해 흠집 자국도 없는 스키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시골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군인 월급이 빤한데 초대받아 방문한 선배관사에선 빌보, 포트메리온 그 외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명품그릇에 안주가 놓였고, 술자리 분위기가 업되는 날이면 발렌타인 30년과 조니워커 블랙을 한잔씩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2만원도 안하는 그린피 덕분에 보기플레이만 해도 민간인에 비해 2억은 세이브 한다’는 선배들 말에 외산 골프채로 매달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싱글 스코어를 달성했고, 받은 상패에 버금가는 돈을 저녁식사 비용으로 지출했다.
몇 천, 또는 억 단위로 오르는 주변 전세금 뉴스는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 이야기 였고, 보증금 250만원으로 관사에 산다는 사실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도 모르고 엄청난 복지인양 떠벌리고 다녔다. (물론 그렇게 아낀 돈을 잘 모을 수 있다면 좋은 혜택임에는 틀림없고 그러라고 이렇게 언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돈에 무지한 내겐 밖을 볼 수 있는 작은 쪽창에 한 장 한 장 덧대 쌓는 벽돌만큼이나 바깥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었다.) 지인이 청약에 당첨됐다는 소식엔 겉으로는 축하하며, 속으로는 배 아파 죽는 밴댕이 소갈딱지로 살았다.
내심 돈을 좋아라했지만, 선▪후배, 동기 누구와도 돈에 대해 깊게 얘기 할 수 없었다.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장군 말씀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생활한 것도 아닌데 본심을 드러내기엔 쪽팔렸고, 매월 월급이 들어오니 절실하지도 않았다.
전역 직전 받은 재무 설계 덕분에 소비패턴엔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저축액과 퇴직금을 합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직장근처 전세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조종기술 딸랑 갖고 있는 몸뚱이만 믿고 보무당당하게 군문을 나왔다.
수능을 마친 큰딸에게 알바를 권했더니, 인근 아파트 커뮤니티 관리직을 잘도 따왔다. 물론 최저시급이다.
받아온 근로계약서를 보고 주휴수당과 연차 등 근로기준법 상 적법하게 받아야 하는 급여에 대해 점검하고 설명을 해줬다.
주말 파트타임 홀써빙도 하루 다녀오더니만 힘들어서 못하겠단다.
그래서 꼰대 아빠의 역할을 자청했다.
어차피 최저시급이라면 네 시간과 노력이 최소로 들어가는 곳을 택해라.
어디가 그런 곳인지 판단은 후기나 지인의 조언도 참고하되 결국 네가 겪어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젊을 때 여러 경험을 쌓아라.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지금의 시급을 계속 받고 일할 이유가 있다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네 몸값과 역량을 올리는데 도움 되는 곳인가 잘 따져봐라.
부모님도 군선배도 민항기장님도 돈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 준 적 기억이 없다. 아마도 했는데 내가 한귀로 흘려보냈을 수도 있다.
알고 있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내 생각을 바꾼 것은 돈을 벌고자 하는 절실함과 독서 그리고 부자 스승의 가르침도 있었다.
어느 날 돈 공부를 하고자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내 글이 그냥 스쳐가지 않고 눈꼴시게 거슬려서 당신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2023년 최저시급은 9,620원으로 인상되었다.
집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면 나나 큰딸이나 같은 돈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돈에 대해 아는 만큼 그녀석이 알고 있다면 그 돈이 얼마나 무거워 질지 당신은 상상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