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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토파일럿 Jan 12. 2023

비행대신 대리운전

[멘토파일럿의 코로나 생존기 2탄]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

첫 발을 내 딛는 것이 언제나 떨리고 쉽지 않아 내일로 시작을 미루게 된다.

‘내일’이 하루 지나 오늘이 되어도 그 프로젝트의 시작일은 아직도 ‘내일’이다. 

그렇게 거창하게 세워 놓은 계획들은 없애지 못한 테트리스 막대처럼 자꾸 쌓여만 간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서 같이 바뀐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의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정말 전화하기 싫은 사람과의 통화버튼을 질끈 눌러버리 거나 실패 보다는 성공 가능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시간을 투여함으로써 맘속 한 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이 자라날 새도 주지 않고 양분도 공급하지 않는다.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맞벌이하는 누구네집 엄마가 녹색어머니회 교통안내를 서야하는데 대신할 사람 찾기가 쉽지 않더라는 말이 나왔다. 문득 돈벌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근에 올렸더니 정말 하루 만에 의뢰가 들어왔다. 아침 한 시간 투자로 얻은 2만원의 수익이 나쁘진 않았는데 도통 일감 찾기가 쉽지 않았고 설사 매일 일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아침시간 딱 한번이기에 월40만원을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코로나로 경영상황이 심각해진 회사는 인사팀을 통해 대여금을 상환하라는 메일에 이어 전화까지 하며 압박했다. 일시금으로 상환하지 않으면 월급에서 깐단다.

업어 치나 메치나지....

투자를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한 부채와 이자는 회사 덕에 더 커져만 갔다.

회사 또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란 것을 알기에 탓할 생각은 없다.

법인격으로서 이익추구가 회사의 본질이고 직원과는 서로의 발전을 위한 파트너 관계일 뿐 그 이상을 기대할수록 내 실망만 커진다는 걸 진작 깨달았다.


다른 대안을 찾기 전 까지 일단 현금흐름을 만들기 위해 대리운전에 뛰어들었다.

오토바이배달은 투입비용과 안전성 측면에서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경차를 가지고 쿠팡이츠도 해봤지만 잠시 주차할 공간 만들기 쉽지 않아 기동력이 떨어졌고, 유류비를 빼면 이익이 박했다.


회원수가 가장 많은 대리운전 네이버카페에 가입을 하고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2인1조’ 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대의 차를 이용하는데 ‘앞차’를 맡은 사람이 핸드폰 앱으로 일감을 잡으면 ‘뒷차’가 손님에게 데려다 주고 앞차가 대리운전을 마칠 때까지 좇아가서 일을 마친 앞차를 픽업하면 한 사이클이 끝난다.


뒷차를 자처해서 귀찮을 만치 꼬치꼬치 물어가며 배웠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한 뒷차는 새벽두시가 돼서야 끝났고, 톨비/유류비를 제하고 반으로 나누니 8만원이 손에 쥐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대리운전으로 팀을 만들어 경기도일대 골프장을 다니기도 했고, 법인대리운전 소속으로 특정교육을 이수 후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이른 바 지체 높은 손님을 모시기도 했다.


술 취한 진상 손놈을 나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제일 역대급 진상을 한 사람만 소개하자면, 콜을 잡은 곳 상호가 고기집이나 식당이 아닌 여성접객원이 있는 무슨 ‘싸롱’이었다. 손님이 아닌 마담이 불렀는데 내가 도착하니 잠시 기다리라고 해놓고는 10여 분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업소로 들어가보니 손님에서 손놈으로 변한 그는 더 마시겠다고 버티고 마담은 집에 가라고 등떠미는 전형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때 그냥 돌아섰어야 했는데……. 경험도 없었고, 기다린 10분이 아까워서 10여분간의 실랑이를 더 두고 보고서야 손놈을 태웠다.


에쿠스 뒷좌석에 몸을 삐딱하게 기대고 나서 뭔지 알아듣지도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지만 대꾸할 만큼 큰소리가 아니었기에 운전을 계속했다.

한참을 가고 있다가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왜, 이 길로 가냐! 이 00아!!”

난 티맵이 추천한 최소시간 경로로 가고 있을 뿐이고 나도 처음가보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로 가면 톨비가 추가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미리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지만 여긴 고속도로도 아니었다.

출발부터 정해진 요금이라 돌아갈 이유도 없고, 시간이 더 소요돼봐야 손놈과 나 서로 손해임을 몇 번을 설명하고 나서야 목적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빈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며 간신히 구석에서 자리하나를 발견하고 폭 넓은 에쿠스를 조심조심 밀어 넣었다.

시동을 끄고 밖에서 그가 나오길 기다리는 데 그대로 앉아 혼자 중얼거린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차간 간격이 너무 좁다고 다른 곳에 다시 대란다. 분명 주차자리는 거기밖에 없었고 난 역할을 다했기에 안 된다고 거부하며 대리비를 요구했다. 한참 돈을 주네 안주네 실랑이를 하다가 대뜸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며 돈이 그것밖에 없다고 한다. 싸롱에 도착 후 기다린 20분에 대한 팁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못 받은 돈을 받기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경찰을 부르고... 같이 가서 조서를 쓰고... 받은 피해에 대해 증빙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콩밥을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오늘 집에는 언제 들어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뭣 때문에 여기 나와 있는가?” 하는 질문이 머리를 스치자마자 낚아 챈 만 원짜리 한 장을 주먹 속으로 우겨넣고 다음 콜을 잡기위해 자리를 나섰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이 바닥의 경험도 미천했을 뿐 아니라 20분이란 시간을 허비한 매몰비용에 함몰되어 손놈을 뿌리치고 돌아서지 못했다.      




대리운전이 거리별로 가격이 다르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기본적으로 거리별 기본단가가 산정되지만 거래는 경매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기사가 많은 곳에서 부르면 싸게 갈 수 있고, 기사가 적거나 혹은 당신 목적지가 선호하지 않는 곳이면 비싸게 불러야 거래가 성립된다.

대리운전으로 집에 싸게 빨리 가고 싶은가?

일부러 기사가 많은 곳을 찾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겠지만 수원 인계동이나 일산 라페스타 같은 대형 유흥가에서 대리를 부르면 된다. 어떤 대리기사 앱은 당신 주변에 기사가 몇 명인지 표시까지 해준다.



그런 곳엔 대체로 나 같이 적정시세를 모르는 초보기사들이 많다. 아니면 집으로 퇴근하는 길에 대리운전이 대중교통보다 시간과 돈 어느 모로 보나 낫다 생각해서 단가가 싼 일명 ‘똥콜’을 잡는 기사가 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당신 목적지가 대형 유흥가 근처라면 금세 기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인적 드문 시골주택 같은 오지에서는 싸게 빨리 집에 갈 방법은 없다. 그저 빨리 라도 가고 싶다면 대리비를 올리면 된다. 주변 차량이나 편의점 등에서 레이더 프로그램을 켜고 당신이 단가를 올리길 기다리는 기사들이 어디에나 있다. 가격만 맞는 다면 당신을 전국 어디든 데려다 줄 사람들이다.      


내 경우 대리운전의 시간당 평균수익은 2만원 정도였다.

잘하시는 분은 시간당 5만원도 번다고 들었다.

대리운전이 다른 일반적인 최저시급 알바보다 수익이 쏠쏠한 이유는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에선 누군가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그것을 해결해 줄 능력을 가진 자가 소수 일수록 치러야 하는 단가가 올라간다. 아니면 관혼상제, 회갑, 칠순, 여행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무리해서라도 지갑을 연다.


어제 본 캘리그래피 유튜브 영상에서 서민갑부에 출연한 강사는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그린 글씨로 30만원을 벌었다.

나에겐 그런 분야가 어디일지 꾸준히 생각하고 노력해야 몸값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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