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SNS 사진 속 화려하게 플레이팅된 스테이크는 연출된 단면일 뿐, 주방 깊숙한 곳에선 얼마 전까지도 피가 철철 흐르는 시뻘건 날것의 고깃덩이였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는 가운데 촛불을 켜고 와인 향을 맡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잔을 마주치는 로맨틱한 순간만 즐기고 싶지만, 칸막이 너머의 번잡한 조리도구 소음과 매캐한 연기냄새,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가스불꽃까지 요리가 테이블에 놓이기까지 모든 과정은 이어져있다.
어렸을 때 내 눈에 비친 남의 인생은 제법 쉬워보였다.
보여주는 것만 보고 사는데 익숙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해 뜨면 출근해서 업무를 하고 해질녘 간단한 회식을 마치고 달밤에 잠자리에 들었던 오랜 친구는 이튿날 해가 중천인데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남은 가족에게 할 말이 산더미처럼 켜켜이 쌓여있을 만도 한데 한마디 뱉어내지 못하고 떠났다.
몇 번의 비슷한 황망함을 실감하고 나니 이제 철이 좀 드나보다.
모든 삶에는 양지 바른 곳이 있는 반면 그늘져 춥고 어두운 곳 또한 있음을, 그리고 온전히 받아드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고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발달된 두뇌를 지닌
만물의 영장 인간도 역시 동물인지라,
생로병사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제 아무리 옳고 그름, 공정과 평등을 목청껏 외쳐 본들 인류의 연대기에 대비하면 찰나의 소음일 뿐이다.
죽음 앞에 인간이 만든 제도는 밀물에 바스러질 모래성처럼 부질없다.
다시 내일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매끈하고 가지런한 백사장의 본모습을 되찾겠지만
그래도 역시 만물의 영장 사람인지라,
기록한다.
이생에서 너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고,
하얘져가는 두발처럼 바래만 가는 머릿속 니 모습을 조금이나마 붙잡고 싶어서……. 끄적여 본다.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물리적 시간들은 각자의 여생에 따라 제각각 이겠지만,
그곳에선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찰나의 순간처럼 순식간에 지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