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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출발

돼지가 되어 오겠군

by 정좋아

며칠 전 요가학원에 지갑을 두고 온 관계로, 카드도 신분증도 없어 나는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지갑만 챙겨 오기 아쉬워서 7시쯤 요가 수업을 듣고, 약간의 담소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요가 학원의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도 몇번 쓰다듬고 요가학원을 나섰다.


지갑을 챙기고 짐을 싸러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상큼한 과일과 요거트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거트를 주문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잠을 청했다.


도착하자 잠도 덜 깬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요거트를 한 스푼 입에 털어 넣었다. 음. 만족스러웠다.


가방도 싸야하고, 제주도로 챙겨 가야할 것들을 사러 집 앞 쇼핑몰에 가려 했는데, 몸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또 배가 고팠다. 그래서 마라샹궈를 시켜놓고 잠에 들었다. 마라샹궈가 배달되기 직전에 잠에서 깨 부랴부랴 가방에 짐을 우겨넣고, 쇼핑몰로 가는 건 포기했다. 원래는 좀 예쁜 요가 바지를 하나 정도 사가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귀찮았고, 이미 시간이 늦어져 버렸다. 바지 하나로 버텨보자 뭐…하하


비행기 시간에 늦을까봐 마라샹궈도 허겁 지겁 쑤셔 넣고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꽤 무거운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섰다. 혼자 삼박사일 베트남 여행을 할 때에도 팔뚝보다 작은 슬링백 하나에 옷 두세벌 넣어 가건 나이기에, 이 정도면 좀 과한 짐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요가도 하고, 쉬라 가는 거, 조금 더 뽀송하고, 멀끔한 모습으로 지내보자 싶어서 이번에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짐을 챙겼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작은 배낭 하나를 보고는 누구도 사박 오일 여행가는 사람의 짐이라고 생각도 못할 것 같긴 하다.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눈을 감았다. 주변의 부산스러움에 선잠이 들었지만 잠에서 깨지 않으려 일부러 노력했다. 그렇게 제주에 도착했다.


나는 운전을 못하니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가 떠난디 얼마 안되었는지,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30분. 기다림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시간이다. 마땅히 앉을 데도 없고. 그래서 아 이 참에 저녁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빠르게 식당으로 갔다. 버스역에서 일분 거리 식당. 음식은 십분 안에 나온다고 했다. 참 웃긴 게, 순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긴장하며 기다리던 김치찌개가 나왔는데, 또 맛은 왜 이리 좋은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버스기 오기까지 십분도 안 남은 상태에서 음식이 나왔는데, 너무 맛있어 버렸다.

최대한 호율적으로 먹기 위해 공기밥 뚜껑에 국물과 건더기들을 최대한 덜어서 식혀두고, 불고기부터 빠르게 먹었다. 그 결과 성공적으로 김치찌개를 클리어하고, 버스 출발 사분 전에 쟁반을 반납했다.


아뿔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한명이었던 대기인원이 이삼십명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도착해 출발을 기다리는 버스는 이미 사람이 조금씩 차고 있었다. 두근두근. 나도 타야하는데. 30분 더 못 기다리는데. 불고기는 다 못 먹었는데 너무 아깝잖아.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타는 공항리무진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구비구비 한시간 반을 달려 제주도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버스라는 이 공간이 불편해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싶으면서도, 내려야할 곳을 놓치면 어쩌나 걱정이 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삼십분 정도 잤다가 그 뒤부터는 밖을 바라보며, 안내 방송에 귀 기울이며, 지도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겁이 스멀스멀 났다. 나는 낯선 곳에 어두운 시간에 혼자 돌아다닌 걸 무서워 한다. 해외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봤어도, 늘 해가 지기 전에 신데렐라보다 일찍 귀가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해는 져버렸고, 나는 외딴, 낯선 곳에 내려졌다. 성공적으로 목적지에 내리긴 했는데,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지도를 보며 가는데 점점 불빛은 사라지고 이상하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했다. 무서웠다. 긴장됐다. 그래도 삼분만 참으면 뭔가가 나오겠지. 가보자. 스스로 달래며 길을 걸었다.

그 끝에, 드디어 제주의 바다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낯선 곳. 내가 썩 좋아하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장식물들.

그런 것들이 불편하고, 싫었고, 또 조금은 외로웠고, 긴장이 됐다.


침대에 누웠다. 몸을 움직이기가 싫어서 좀 밍그적 대다가 숙소에서 예약해둔 요가 수업을 가러 간신히 이불에서 벗어났다. 요가 장소에서 마주친 직원분은 내가 사분 정도 늦었는데, 수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났다.


아 몰라. 내가 별로 안 듣고 싶었던 수업이었으니까 괜찮아. 애써 스스로를 달래며 방으로 돌아갔다. 돈은 좀 아까웠다.


편의점에서 산 귤 한봉지를 다 까먹고, 정년이를 보다가, 이도 닦지 않고 잠들었다.


내일은 보다 상쾌하게 보낼 거라고, 오늘만 좀 더 쭈굴하게 보내자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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