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터져도, 그래도 좋아
이직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저 살 이유가 없어졌다. 통근 시간 줄이려고 온 곳인데, 더 이상 그 메리트가 없어졌기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부터 틈틈이 지금 회사 근처 강남 쪽으로 전세 집을 알아봤다. 지금은 전세로 살고 있는데 계약 만기 전에 이사를 원하면 원래 새 세입자 찾을 복비를 내주고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때마침 집주인도 집을 팔려고 내놓은 상태라 집이 팔리면 그때 나도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결국 일년동안 집은 팔리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거의 일년 동안 틈틈이 회사 근처의 매물들을 찾아보았다. 일년을 지버 모7, 확실히 지금 사는 동네보다 집값이 많이 비싸서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집은 복층 원룸인데, 조금 더 좁은 평수로라도 복층으로 가려면 최소 오천 이상은 더 필요했다.
강남쪽은 오피스텔 전세도 잘 없고, 복층은 더더욱 없다. 있어도 비싸고. 그래서 그간 집들을 볼 때마다 걱정스러웠다. 왜냐면, 나는 짐이 꽤 많기때문이다.
이 집에 차음 들어올 때, 나름 인테리어에 욕심이 생겨서 이것 저것 사둔 것들이 있고, 살다보니 옷이 너무 많아져서 행거를 두개나 사고, 서랍장도 네줄이나 샀다. 침대는 2층에 넓게 두고 쓰려고 퀸 사이즈이다.
복층이 아니면 도저히 이 짐을 다 가지고 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여유가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제 정말 전세 계약 만기일이 다가 와서 집을 본격적으로 알아 보기 시작했다. 복층은 꿈도 안 꾸고, 단층 원룸이어도 좋으니 너무 낡지 않고, 화장실이 깨끗하기만을 바랬다. 좁은 건 뭐 어쩔 수 없고.
며칠 전, 처음으로 한 오피스텔을 보러 갔다. 좁은 건 둘째치고, 오피스텔 주변 사방이 모텔, 호텔이었다. 그것만은 싫었다. 왜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건 정말 싫었다. 이게 내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인가 싶어서 그 집을 보고 돌아가는 내내 슬펐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집을 보러 갔다. 역시 전용 면적 5평 남짓하는 작은 단층 원룸이었다. 하지만 남향이었고, 바로 앞에 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또 호텔이 하나 있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무엇보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과 같은 브랜드라 벽지 색이나 전반적인 구조들이 비슷해 친숙했다.
내 넘쳐나는 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걱정은 되지만, 내가 일년간 본 매물 중 제일 가성비 좋고, 깔끔한 매물이다. 집을 보고 현관을 나서는데 부동산 사장님이 현재 세입자 분께 내일 몇시에 또 보러 오는 거 잊지 않으쎠냐며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다. 그때 마음이 조급해졌다. 물론 그럴 수록 잘 따져 봐야 하지만.
사장님께 집이 마음에 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입주일자도 협의했다. 등기부 등본도 받아 들고 은행에 가서 전세 대출 연장, 목적물 변경에 문제가 없을지 확인도 받았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문제 없이 연장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순 없을 것 같다. 최근에 한번 카드값을 살짝 연체했던 게 영 마음에 걸린다.
주변에 부동산을 운영하는 분께도 여쭤보았는데, 문제 없도, 좋은 매물을 운 좋게 잘 찾은 것 같다고 했다.
내게도 이런 행운이..?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가끔 이런 날도 있나보다 싶었다.
계약날짜를 잡고, 가계약금을 송금했다.
새 집을 꾸밀 생각에 지금은 마음이 설렌다. 수많은 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겠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집에서의 시간들은 어땠었나 생각하니,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집은 좋은 집이고, 구조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남향인데, 그냥 내 기억이 좋지가 않다.
그리고 무기력에 빠진 어느 순간부터 집은 손댈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다. 점점 더 짐은 많아지고, 청소는 점점 더 안 하고. 점점 더 손 쓸 수 없게 되었다.
새로 이사를 가게 되면,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작지만 편안한 나의 은신처. 어떤 공간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낄지 생각하면 기대가 된다.
무사히 모든 이사 과정이 이뤄지길 바라며, 설레는 생각들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