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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로부터 해방된 경험

작고 소중한 경험

by 정좋아

여행을 다녀오고 휴식을 취하고 나면, 나의 상태가 상당히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환경 탓인지, 어제는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가도 아직 배정 받은 과제가 없어 할 일이 없고, 같이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하루 종일 혼자 멍을 때리고, 자료를 조금 뒤적 거리다 딴짓을 했다.


이 상황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는 것, 이런 시간을 즐기고 누려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회사 동료들이나 선배들도 그렇게 이야기 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게다가 난 추위에 취약한데, 제주도에 다녀온 사이에 날이 너무 추워졌으나 적응을 하지 못해 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갔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떨었다. 정말 끔찍하게 추웠다.


어제는 어쩌다 보니 본가로 가게 되었는데, 중앙 난방으로 난방이 운영되는 터라 아직 난방을 틀지 않았는지 집이 너무나 추웠다.


옷도 안 갈아 입고, 손도 씻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뭘 해야할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춥고. 나가기는 싫고. 지웠던 소개팅 앱도 다시 깔고, 소개팅 앱, 브런치, 인스타, 쇼핑앱을 번갈아서 열었다 닫았다 했다. 십초도 안 되는 시간에 계속 이 앱 저 앱을 껃다 켰다 반복했다. 이런 내 모습은 익숙하지만, 이해가 안된다. 초조한 사람처럼 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걸까.


본가 근처에 내가 참 좋아하는 요가원이 있어 수업을 예약해 뒀다. 막상 가려니 너무 가기 싫었는데, 이 요가원은 자취방 앞 박리다매 요가원의 수업료보다 두배 이상 비싸다는 걸 떠올리며 얻지로라도 가야겠다 싶었다. 가지말까 이십분 전까지 고민하다, 이거라도 하면 뭐라도 좀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밍기적 밍기적 집을 나섰다.


돈 없는 빈털털이지만 또 택시를 탔다. 너무 춥고, 다운되어 있어서 지하철을 타기가 싫었다. 핑계일지도.


요가원에 이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감사하게도 기다려 주고 계셨다. 이 요가원은 보통 소규모로 진행되고, 여유가 흐르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날 뵌 선생님은 처음 보는 선생님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으셨다. 선생님은 오늘 어떤 일로 계속 화가 났다고 했다. 그런데 화가 날 때 우리는 보통 그 감정에 집중하지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잘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뭉뚱그리지말고, 잘 들여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 패턴을 알아차리고, 감정이 조절이 되고, 나아진다고.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들에 대해 무수히 많이, 생각을 하고 또 한다. 그런다고 나아지는 것들이 없엇던 것 같다.


요가하러 왔더니, 공감도 안되는 남의 엉터리 철학을 들어야 하나 싶어서 짜증도 나고, 이걸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니 답답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고, 다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이 자꾸만 올라오는 걸 어쩌겠는가.


사실, 집에서부터 또 다시 ‘삶을 지속하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됐다. 나름 노력하는데도 이 무력감, 우울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더이상 뭘 더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시작하고,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요가에 집중을 하게 되고, 그런 생각들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다. 요가가 끝나고 나서도, 이전의 우울감과 무력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사실 집에서 나오면서 뉴프람이라는 새로 처방 받은 약을 5g 먹고 나오긴 했는데, 그 약 덕인지 요가 덕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확실하게, 요가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뒤부터 잡생감과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진 건 맞다. 요가를 하면서도 어떤 동작을 할 때는 몸이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고, 어떤 동작을 할 때는 호흡이 너무 불안정해져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무기력과 우울과는 다른 감정이다.


헬스도, 런닝도 꾸준히 잠깐이라도 해본 적이 있지만 이런 경험을 한 적은 없다. 이렇게 몰입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참 다행이다. 지금으로서는, 요가만이 살길인 것 같다.


어쨌든, 숨이 막힐 것 같은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난 경험을 한 게 뿌듯하고, 안도감이 든다.


벗어날 수 있구나. 영원히 못 벗어날 것 같아 두려웠는데,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구나.


요가를 꾸진 해 봐야겠다. 내 호흡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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