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전부는 아니다
오늘 밤은 반드시 글을 쓰고 자야할 것 같다. 조금 전 러닝을 하며, 여러가지 생각을 쏟아내고, 이 생각과 감정을 꼭 글로 기록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많은 생각들이라, 제목도 정하지 않고 글을 쓴다.
퇴근 길에 지하철에서 눈물을 쏟았다.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화가 났다가, 억울했다가, 서러웠다가.
‘난 괜찮아‘ 따위의 말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생각이 가지를 내리고 내리다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10년간, 늘 열등감과 패배감에 젖었고, 이번에 지원한 회사는 이런 나의 ’루저‘의 지위를 바꿔줄, 그간의 한을 다 풀어줄 꿈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이 회사에 거고 싶었고, 실패했고, 패배감에 몇년을 우울증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먼 왜인지 또 패배가 결정된 것 같다는 생각에꺼지 닿았다. 이후에도 난 또 다시 이런 좌절감과 열등감에 젖어 살겠구나.
지하철에 커플이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난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할까. 따뜻하게 마음을 나눌 연인이나 배우자를 간절히 원했고, 노력했지만 정말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졌고, 상처만 남았다. 커리어는 뭐 말할 것도 없다.
내 노력히 충분하지 않아서? 내가 행복을 deserve할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서? 잘나지 않아서? 성격이 좋지가 않아서?
끝없는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에 눈물늘 펑펑 흘리며, 오늘은 부모님의 집으로 왔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한강. 한강에서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견디려면 달려야 한다. 그게 러닝머신 위일때보다, 영감을 주는 자연 근처일 때 더 좋다.
부모님의 집으로 퇴근한 건 어떻게든 오늘의 이 괴로운 감정을 털어내고, 내일의 다른 회사 면접을 장 치뤄내기 위한 결정이었다. 달리면 좀, 아니 많이 나아진다는 걸 최근애 계속 느끼고 있기때문이다.
일단 집에 와서 멈추지 않는 눈물을 계속 뚝뚝 흘리다 누워 잠에 들었다. 나를 걱정하는 엄마가 챙겨준 육회를 맛있게 먹고는, 다시 힘없이 침대에 누웠다.
슬슬 나가서 달려야 하는데. 다녀와서 다시 다른 면접 준비도 해야 하는데. 힘이 나지 않고 우울했다.누워서 인스타를 켰다. 주변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아기들 피드나 퇴근 이슈들, 예능 짤 등등을 봤다.
최근에는 에픽하이의 타블로 영상을 자주 보는데, 오늘도 타블로의 게사물이 눈에 들어 왔다. 영상에서는 에픽하이의 미쓰라진이 공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부정적인 것들에는 하나도 씬경 쓰지 않아요. 조금 전에 멋있는 척라면서 선글라스를 쓰고 넘어졌지만, 쪽펄림보다 남은 공연이 중요해요” 대충 이런 말이었다. 멋있다고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타블로는, 자기는 신경쓴다며 넘어지는 영상을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짧은 찰나에, 정신이 좀 들었다. 맞아. 부정적인 것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계속 누워 스크롤을 내렸다. 오늘은 너무 우울하고 피곤하니 달리지 말고 그냥 쉴까 싶었다. 그러다 진서연의 영상이 나왔다. 마냥 편하게 지내는 것보다, 고통과 귀찮음을 이겨내고 공부하고, 운동할 때 기분은 훵씬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익히 경험한 바이다. 특히 최근에.
몇년간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져, 출퇴근만 간신히 하고, 다른 삶의 낙도 찾지 못하고 지냈었다. 그냥 퇴근 후 누워서 예능을 보고, 맵고 자극적인 것을 많이 먹으면서.
그런데 최근에는 몸은 조금 고단하고, 마음도 불안함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목표를 가지고 공부도 꾸준히 했고, 운동도 했다. 이직 결과가 안 좋을 것 같단 생각에 내 노력이 다 헛수고 같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생기를 찾았었고 그게 즐거웠다.
그런 생각 끝에 정말 억지로, 간신히 옷을 갈아 입고 집에서 나왔다.
요며칠 정말 이상하게도, 달리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은 초연해진다. 세상사 별거 있나? 세상은 이렇게 크고, 내가 경주마처럼 보고 달리는 그 세상 말고도 이렇게 멋진 다른 세상이 있다.
사실 최근에 달릴 때는 별 다른 생각이 잘 안 들어서 좋았다. 오늘은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머리를 채우는 생각들이 종전과는 달리 긍정적인 생각들이었다.
1. 그냥 좀 내려 놓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다.
내 목표가 높고, 내가 바라는 게 많은 게 사실이다. 내가 못난 건 아니지만, 정말 특출나게 뛰어나지 않은 건 솔직히 맞다. 그렇다고 그 회사가 특출나게 뛰어난 사람들로만 구성된 건 아닌 것 같도 맞지만.
뭐 어찌됐건. 그렇게 잘나야만 삶이 행복한 게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단 하나다. 나의 행복.
2.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번 이직 시도에서, 마음 고생도 많이 했고, 시간 투자도 많았다. 이직이 설령 성공하지 않더라도, 내가 얻은 것은 너무나 많다. 내가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인지 다시끔 깨닫았다. 또, 얼마나 끈기와 열정을 가진 사람인지도.
그리고, 이런 목표를 위해 달리는 과정에서, 나와 어떻게 잘 지내야 하는지도 더 알게 됐다. 그래서 다음엔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3. 단 하루의 경험도 나라는 사람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뛰고 나니 생각과 기분이 전환이 되는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 오늘같은 날에도 지푸라기 같은 의지를 붙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도 다시 그런 전환의 경험을 했다. 경험이 자산이자 힘이 되어 준다. 이렇게 반복되며 쌓이리라.
4. 아주 아주 잠깐의 행동으로 나의 하루를 바꾸기에 충분하다.
사실 오늘은, 오랜만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잠깐 했다. 그만큼 힘이 들었고, 좌절감을 느꼈다. 그래서 달리러 나오는 것도 마음 먹기 힘들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오는 60초 안팎의 시간이 나의 나머지 하루를 바꿨다. 긍정의 힘으로.
아마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또 면접을 두개 보고, 면접 결과들을 기다리면 마음이 또 무너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도, 상처는 여전히 아프고, 실패는 여전히 가슴에 사무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회복하고, 견디는 법을 더 잘 알게 된다면, 그게 well-aging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