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서핑
마지막 날은 서핑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난 이미 서핑을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다. 양양에서.
처음 서핑한 날은 충격적인 감정을 느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그 자연이 주는 쾌락을 느낀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람이 나를 밀어주고, 파도를 따라 앞으로 나가는 것.
나는 거의 첫 시도에 보드에서 일어나 중심을 잡고 서핑을 즐겼다. 그래서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양양의 파도가 깨끗하지 않아서, 약할 땐 약하고, 강할 땐 지저분하게 위험해서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리의 꾸따에서 서핑을 배워 보는 게 꿈이었다. 제대로 며칠 서핑 스쿨 캠프를 가는 것. 멀리 배를 타고 나가 큰 파도를 타는 것.
그런데 이번에 싹 그 꿈을 접었다. 나의 불안 수준으로는 서핑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보드애 엎드려서 뒤를 돌아 파도를 보고 있자면 집채만한 파도가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혼자 개인 레슨으로 두시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버티지 못하고 삼십분만에 포기했다. 많은 고민이 있었다. 용기를 내고 이 두려움을 극복해서 즐거움과 성장 성취감을 얻어야 할까?
아니. 내가 극복하기 어려움 공포감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서핑에 대한 성취를 얻고 싶진 않았다.
장난이 아니고, 실제로 서핑을 하다 보면 여기 저기 찢어지고 깨지고 정신 살짝 놓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자연이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느끼려면 서핑을 해보면 된다.
씁쓸하긴 했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나란 사람에 대해 이해했고,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명확히 했으며, 자연에 대해 조금 더 이해했다.
다들 수업 삼십분만에 나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놀렸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난 남들보다 불안과 공포가 더 높고, 대신 조심성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나도 멋지고 용맹하고 새까맣게 그흘린 서퍼가 되면 참 좋긴했겠지만 어쩌겠는가.
아쉬운대로 혼자 발리스타일 칵테일은 바에 가서 마셨다. 낮술 혼술 상당히 즐거웠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도 술술 생각해내며 기록해 두었다.
여행은 그렇게 슬슬 마무리 되어갔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해보았다. 모두 만족스러웠다거나 행복했다거나 도파민 풀충전은 아니었는데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았다는 것,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떤 반응을 가지게 되었은지를 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