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과 평화를 위하여
얼마 전 눈에 문제가 생겨 한동안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선글라스 쓴 것을 잊고
“날이 왜 이렇게 계속 흐리지? 비가 오려나?”하며
혼자 다른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날이 아무리 맑아도 내겐 흐린 날이었고,
날이 우중충하니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선글라스 하나에도 빛을 잃고 왜곡됐고,
옆에서 아무리 날이 좋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 왜곡!
이렇게 우리는 알고도 모르고도
귓속말로 홀리고, 색이 낀 안경으로 눈을 가린다.
'에고'는 세상과 우리를 연결하고,
사고와 감정, 의지 등을 통해 우리를 행동시키는 주체다.
어떤 상황과 사고 속에서도 동일성을 유지하며 지속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런 에고의 견고함과 완고함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에고는 허풍도 아는 체도 잘하고, 목소리도 크다.
겁쟁이에 걱정도 많은 불안한 아이 같은 에고!
에고는 사사건건 관심도 많고 말도 많아서,
주저리주저리 이 말 저 말 끌어다 붙인다.
에고는 무게가 없어 가벼워선지 중심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람에 나부끼듯이 말에 나부낀다.
육신은 눈에라도 띄는데, 에고는 보이지도 않으니
불안이 습성이라 제 존재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 생길 때마다, 간섭을 쏟아내며 이러쿵저러쿵해 대는 참견쟁이다.
“이건 이렇네! 저건 저렇네!”
말이 많아 정신을 쏙 빼놓는다. 아차 하면 홀리고 만다.
있지도 않은 얘기를 끌어다 이야기를 잘도 만든다.
주인공은 언제나 나이니 이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가 없다.
서사의 주인공이 됐다가, 비련의 주인공이 됐다가,
사건의 피해자도 됐다가!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스펙터클 하다.
감정도 남달라서 슬프기는 왜 그렇게 슬프고,
아름답긴 어찌나 아름다운지!
또, 아픈 것은 너무 생생해 몰입도가 끝내준다.
이 이야기꾼은 거짓말도 잘해서
아, 이쯤 되면 에고는 정말 탁월하고 능력이 좋다고 할만하다.
그 와중에 욕심은 많아서
그 많은 욕심을 채우기가 버거우면, 실망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
다시 돋아나기 어렵게 싹을 밟는다.
참 고약하다.
투명하기도 해서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마음에 안 들면 안 드는 대로,
전부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내며 지치게 만든다.
제가 운전대를 잡고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며
제 존재감을 드러내려 안달이 난다.
말썽꾸러기, 욕심쟁이, 고집쟁이 에고!
넓은 집, 비싼 차, 좋은 직업!
모두의, 에고의 꿈이다.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며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한다.
우리는 이 달콤하고 아름다운 유혹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삶의 전부도 아니고, 나는 더더욱 아니다.
삶의 모든 가치를 이것들과 동일시할 경우,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고,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삶의 목표를 물질적 가치에만 둘 때 삶은 방향을 잃고,
우리는 주인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난파선이 된다.
이처럼 불안한 삶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에고를 길들이고, 허튼 말로 우리를 현혹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생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시선은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공정함을 얻는다.
우리는 종종 상황보다 생각에 휘둘려 자신을 괴롭힌다.
나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글로 적는다.
현재 상황과 문제를 적고, 내 생각과 상대의 입장을 정리하다 보면,
내 생각의 오류를 찾게 된다.
상황과 별개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상황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인지하게 된다.
마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안경을 벗기까지는 아무리 똑바로 보려 해도 볼 수 없다.
에고에게 고삐를 쥐여주면,
에고는 비극의 서사를 장황하게 써 내려갈 것이다.
그 이야기에 홀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정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주전자의 물이 부글부글 끓을 때는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다.
불을 끄고 식힌 후에야 물의 상태와 높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문제와 거리를 두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상황은 고요 속에서 제대로 보인다.
비바람이 불 때는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고,
나와 상대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뿌연 시야가 트이고 나서야, 잠잠해지고 나서야
정확히 볼 수 있게 된다.
사는 동안 우리는 끝없는 문제와 부딪칠 것이다.
에고는 그때마다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를 홀릴 것이다.
에고는 페르소나라는 얼굴로 세상을 만나고,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중요시한다.
진짜 우리는 우리 안 깊숙한 곳에 있다.
겉모습이 바뀐다고, 외모가 바뀐다고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유다.
에고가 변하는 상황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나의 중심을 지키고 사는 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고,
외부의 잦은 바람과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오랜 시간 인간은 에고와 참자아 사이 끝없는 갈등을 겪어왔다.
인간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그것을 판단할 능력과 자질을 익혀왔고,
삶을 통해, 유전자를 통해 우리에게 이어졌다.
에고를 이기기로 마음먹는다면, 관리하기로 작정한다면,
우리에게는 충분한 자질과 능력이 있다.
말로는 미워한다고 하지만 자신을 지키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다.
누구보다 자기 삶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킬 의무와 권리가 있고,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운전대를 잡고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운전해 가면 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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