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자기 연민을 넘어서!

by 오렌지샤벳



아침을 여는 새소리, 살갗을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

알록달록 예쁘게 핀 꽃과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

파란 하늘과 몽실몽실한 구름까지!

내가 요즘 사랑하는 것들이다.

사람은 마음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채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좋거나 싫거나, 별로거나 괜찮거나!

인간은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며 행복을 느끼고 보람을 느낀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당신 자신도 그 사랑하는 것들에 포함돼 있나?

단박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는 어려웠다.

도대체 나를 사랑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사랑하라고 하는지는 더 이해가 안 되고 막막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지 몰라서 지치고 기운 빠지고!



내가 나를 사랑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과 예고치 못한 사건과 상황들이 있었다.

원래 가치 있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가 보다!

남을 미워했던 만큼 나를 미워했고,

그 마음을 돌려놓는 것은 산을 옮기고 땅을 메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깊은 병을 고치는 데는 그만큼의 공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와 노력이 필요했다.

자기 연민!

나를 사랑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연스레 자기 연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자기 사랑과 자기 연민은 어떻게 다른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을 연민하는 것서로 완전히 다른지!

우리는 애정이 없는 것은 가엽게 여기지 않는다.

연민은 사랑과 맞닿아 있다.

자기 연민은 궁극적으로 이해받고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세상이 내게 가르쳐준 자기 연민은 ‘’ 같은 것이었고,

자기 사랑도 ‘나르시시스트’처럼 병리적인가 고민할 만큼 난해한 문제였다.

그만큼 내게 ‘자신을 사랑한다.’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타인보다 나를 먼저 챙기고 이해하고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연민이었다.

내 마음속의 상처들,

인정받지 못한 아픔,

외면당한 고통

내 인생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인정해줘야 했다.

나의 아픔을 수용하고 상처를 보듬어야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자기 연민’은 ‘자기 동정’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자기 연민’을 ‘피해자 코스프레’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생각했다.

‘상처를 주고 다치게 한 사람이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외려 당당하다면,

다치고 아픈 마음은 누가 알아주나?’

‘나라도 내 마음에 괜찮다고 위로를 전하고 상처를 보듬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네 잘못이 아니다!, 네 탓이 아니니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라!’라고

나라도 말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자기 연민은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가혹하게 비판하거나 판단하는 대신,

깊은 이해심으로 온화하게 대하는 자기 친절이다.

고통에서 느끼는 소외감대신,

비슷한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통해

경험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또, 그를 통해 고통을 무시하거나 과장하기보다

균형 잡힌 지각으로 수용하는 마음 챙김이다.



자기 연민과 자기 동정은 다르다.

자기 동정은 자신의 고통이나 상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감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여긴다.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자신감을 상실한다.

이 자기 연민과 자기 동정을 구분하지 못해

나는 미성숙한 사람이 되고, 내 눈물은 의미 없는 몸부림이 됐다.

나의 연민은 이 세상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아픔에,

내가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행위였지만, 그마저도 이해받지 못했다.

세상은 상처를 주고도 쉽게 잊고,

자기 방어적 기제는 ‘자기 연민’을 빌어

상처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석으로 몰곤 한다.

상처받고 치유받지 못해 아프다 하는 것인데,

그 모든 걸 또다시 피해자에게 덮어씌운다.

“왜 그러냐고!”, “다 잊으라고!”,

상처 입은 마음에 다시 생채기를 내곤 한다.

상처는 개인의 몫이 되고, 불편한 존재가 돼버리고 마는

이중고를 겪어내야만 한다.



상처를 준 사람이 가족일 땐 그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그 일을 입에 올리는 것부터가 들추는 꼴이 되니,

상처 입은 마음은 안으로 안으로만 꾹꾹 숨겨야 하는 것이 된다.

모두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그땐 그럴만해서 그랬다고!, 힘들어서 그랬다!”라고 이런저런 이해를 요구한다.

상대는 갑옷에, 무기에, 투구까지 자신을 보호할 모든 장비를 둘러쓰고,

맨몸으로 웅크린 사람을 몰아붙인다.

그러니 언제나 죄인은 정해져 있다.


타인은 또 어떤가?

다른 사람의 삶을 재고 판단하며 상처를 들쑤신다.

“사람 사는 거 다 그래!”, "너만 힘든 거 아니야!"

공감까진 아니더라도 침묵을 선택할 정도의 친절도 베풀지 못하는 마음들!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듣는 귀가, 마음이 더 불편한 사람들!

우리 모두는 타인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어차피 ‘코끼리 다리 만지기’인 것이 타인의 삶이다.

인간은 누구나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되다.

내 고통과 슬픔을 이유 없이 전가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도 안 되는 이유다!


결국, 나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스스로 일어섰다.

이제 내가 나에게 위로를 전하고 사랑으로 보듬는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자기 연민은 자기 세계 속에만 안주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시작은 자기 사랑에서부터 나온다.

불교에서 자비 명상‘나 자신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에서 시작한다.

나 자신의 행복과 평화에서 내 주변, 모르는 사람들, 범 지구적으로

연민이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니지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행복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내보낼 때 세상도 그 에너지의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만사가 그렇듯이!

자기 연민은 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의 일부이며,

성공적 자기 연민 과정은 자기 사랑으로 귀결된다.

나는 나를 보듬고 이해하며 사랑해 줄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러니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자! 기꺼이 안아주자!

타인을 사랑하기 전에 나부터 사랑해 주자!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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