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평안·행복·선순환

나의 소명

by 오렌지샤벳



사람은 저마다 소명을 지니고 땅에 내려온 별이 아닐까?

‘왜 이렇게 삶이 힘에 부칠까?’라고 생각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세상의 좋은 것들을 흠모하고 탐냈지만,

한 번도 내 몫으로 온 적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더 나의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삶은 흘러갔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은 허무맹랑한 것들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아무 생각 없이 떠들며 세상모르는 철부지가 되고 싶었다.

예쁘고 좋은 것들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면, 그렇게 세상모르는 순수하고 해맑은 어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게 다였지만, 세상은 내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단히 버텨야 했고, 살아내야 했고,

내 몫의 것은 늘 없거나 적어서 허덕거리는 삶이었다.

사랑받는 사람들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걸 느끼면서 점점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누군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힘없는 인생들은 자기가 괴로워 누군가를 돌보지 못한다.

아니, 돌보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챙기기도 버거우니까!

자기 곁의 사람을 물어뜯고, 삶의 부당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토해내곤 한다.

삶은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무너져 내린다.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절망감과 억울함

자신도 모르게,

자기 곁의 사람과 함께 힘든 편을 택한다.

나만 아픈 것은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고 물리는 인생은, 쳇바퀴 속을 끝없이 달린다.

누구 하나 그 속을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운명공동체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저주에 가깝다.

그렇게 서로를 묶은 원은, 끊임없이 쳇바퀴 속을 원심력에 의해 달리며,

서로에게 끊임없이 부딪치며 상처를 낸다.



뇌는 쉬운 선택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렵게 변화를 꾀하거나, 위험한 도전을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벗어나기 힘든 덫에 갇힌 이의 상처와 고통은

전염병처럼 옆으로, 옆으로 번져나간다.

일식이 시작되면 사방으로 어둠이 점차 번져가듯이,

모두의 삶은 어둠 속으로 잠식당하고 만다.



나는 늘 이 갑갑하고 끈적이는 누더기 같은 삶이 싫었다.

왜 떼어내도, 떼어내도 다시 붙는지 알 수 없어 힘겨웠다.

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쫓아오는 과거의 망령도,

벗어나지 못한 울타리도

나를 지치고 병들게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글을 통해 상황을 정리하고 또, 나와 대화를 나눴다.

내게 버거운 고난들이 안도할 만하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있다면 과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가?



이 고난들에 굳이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하나였다.

시련들을 통해서 내가 꼭 배워야 할 것들이,

내가 이번 생에서 꼭, 이뤄야 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다시 또 나에게 질문한다.

삶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고요해졌고,

나는 더욱더 안으로 내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미워했던 것들!

타인과 그리고 나!

이 모두와 나는 진정으로 ‘화해’를 해야 했다.

마음속에 남은 미움은 나를 갉아먹었고

나를 쳇바퀴 속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겼다.

끌어당김을 끊어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시작은 '화해'였다.

세상과 나와 화해를 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화해를 통해 나는 평안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그 질척이는 아픔과 미움을 벗어던질 수가 있다.

그 모든 감정들의 고리를 끊는 것은,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 몫이었다.

나는 또, 화해와 평안을 통해 행복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화해를 통해 가벼워지고, 평안을 통해 안정을 찾고,

그 발걸음을 옮겨 행복으로 가는 탈출!

그 모든 발걸음에는 이유와 진정성이 필요했고,

나는 천천히 하나둘 순서를 밟아 나갔다.



우선 엄마에 대한 감정의 축을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미움 대신 연민을, 원망 대신 이해를, 거부 대신 수용을 거치며

나이 든 한 인간을 내 안에 안기로 했다.

끊임없이 부딪치고 아팠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고착된 관계를 수정한다는 것은,

먹은 시간을 모두 토해내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처음, 엄마는 그런 변화를 거부했다.

스스로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나를 허무하게 했고,

그때는 그럴만했다는 말은 나를 절망하게 했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가시를 삼키는 것 같았다.



힘겨운 부딪침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엄마와 내가 모녀로 만난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만큼 젊고 어렸을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의 인생을 처음으로 아프게 받아들였다.

억척스럽고 무섭던 할머니가

나에게만 그랬을 리 만무했고,

아버지 없는 막내딸로 자란 엄마의 삶에 대한기대가,

아빠를 만나며 무너져 내렸을 때 느꼈을 절망을 떠올렸다.

그저 나약한 소녀였고, 여자였다.

버티고 억척스럽게 살며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악에 받쳐 사는 삶에 뭐라도 원망할 거리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물자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엄마의 그 모든 모진 말과 행동들은 사실 자신을 향한 말이었고,

세상과 삶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미움받은 이유가 내가 아님을 알고 나니 나와의 화해도 쉬웠다.

나나 엄마나 힘겨운 삶을 짊어진 사람들이었고,

아버지라는 지붕이 무너져 내리며

같이 깔린 존재였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화해와 평안을 지나니 그동안 미웠던 것들,

내가 갖지 못했던 것들의 의미가 변했다.

가난은 지금의 만족을 불러왔고,

내 결핍은 가족을 더욱 사랑하게 했고, 삶을 버티게 했다.

쓰러지고 무너질 때마다 기어코, 기어이 일어서서 걷게 하는 원동력이 돼 줬다.

비었기 때문에 채울 수 있었다.



나는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잘 느끼는 편이다.

햇빛 하나, 길가의 들꽃, 산들 부는 바람에도 나는 금세 행복해진다.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여유가 없어 깨닫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늦은 밤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먹을 것 걱정 없이, 가격표 하나하나 따지고 재지 않고 아이들을 먹일 수 있으니 됐고,

추운 날 손가락 호호 불어가며 설거지하고,

차가운 방에서 겨울옷 껴입으며 덜덜 떨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행복한가?

비 오고 눈 오는 날, 창문 안에서 그 모든 걸 바라볼 수 있게 돼

또 얼마나 감사한지!

이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알려준 것은 나의 과거이며,

나는 비로소 자유롭고 행복하다.

이 모든 행복을 채감하는 순간

나는 나의 소명을 깨달았다.



나의 행복을 세상에 돌려줘야겠다!

내가 받은 사랑을 세상에 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위로가 돼주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며,

내가 생각하는 선순환이자,

삶의 소명이었다.

아들이 세상에 다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결심했다.

내 아이들이,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가난하고, 삶이 팍팍해

자신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화살을 돌리고,

원망하고 싶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서로를 보듬어 주다 보면,

한 뼘이라도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을 믿는다.

그렇게 한 뼘씩, 한 뼘씩 나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더 행복해지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나는 선한 영향력이 가진 힘을 믿는다.

그렇게 살기가 나아지면,

다시 그 마음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며

세상이라는 꽃밭을 아름답게 일구게 되지 않을까?

그 어떤 강제적 통제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햇빛이 사나이의 겉옷을 벗긴 것처럼,

무장한 마음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함이다.



사람이 위로를 받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따스한 말 한마디, 나를 이해해 주는 시선,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

그런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이 사람을 살게도, 죽게도 한다는 걸 나는 안다.

마음속의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키우다 보면 그 늑대는 힘이 세질 것이다.

힘이 세진 늑대는 계속해서 자리를 옮기며 더더더 힘이 세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도, 세상도 지금보다 더 살만해지기를 나는 꿈 꾼다.

누군가 자신과 화해를 하고 그렇게 평안해지고, 행복해진다면, 참 좋겠다.

누구에게 그 행복을 전해야겠다 결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로 이미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진다는 걸 나는 믿고 있다.


사진출처: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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