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불통!
아이들 어릴 적만 해도,
낮에는 복도식 아파트의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옆집과 우리 집을 아이들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곤 했다.
이사를 하면 당연히 떡을 돌렸고,
이웃끼리 모여 음식도 함께 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서로 아이를 봐주기도 했다.
솔직히 요즘은 옆집과 인사만 간신히 주고받는 게 다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먼 친척보다 낫다는 이웃도 쉽지 않은 요즘이다.
야박하고 살기 팍팍한 세상,
무엇하나 쉽게 이루기 버거운 삶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나만, 우리만을 챙기게 됐다.
그 결과로 세상은 더 팍팍해졌고, 삶은 더 고단해졌다.
작은 떡을 모두 나눠 먹는 것보단
나만, 우리만 나누는 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됐고,
나눌 게 없으니 더 인색해지고 다른 이들의 아픔에는 눈감고!
그래야만 살 수 있다는 믿음은 견고해진다.
어느 시대나 삶이 만만했던 적도, 넉넉하고 쉬었던 적도 없었다.
타인을 경쟁자 혹은 나랑은 상관없는 존재로 무관심하게 보았는지,
함께 살아갈 동료나 이웃으로 보았는지가 다를 뿐이다.
전갱이가 바닷속을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한 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무리 지어 함께 다니는 이유는 하나다.
각자는 힘이 약해 생존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무리를 짓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은 흐름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힘이 된다.
한동안 '사람 인(人)'자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기댄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줄 수 있는 것은 같은 인간이다.
아무리 속을 알기 어렵고,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상처를 주지만,
인간만큼 인간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서로를 위해서!
서로 미루기 시작하면 무엇도 할 수 가없다.
'나하나 마음 고쳐먹는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생각하지 말자!
불교의 수행법에 '자비희사(慈悲喜捨)'라는 것이 있다.
수행자가 중생을 대할 때 갖춰야 하는
네 가지 마음 즉 사무량심(四無量心),
'자비희사'는 수행자가 중생을 대할 때 지녀야 하는 마음만이 아니다.
자비희사는 전혀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그 마음이 다시 타인에게 계속 옮겨가는,
따뜻한 마음으로 상대를 안는 것이고,
슬픈 일에 함께 울어 주는 것이며,
기쁜 일에 먹는 마음 없이 기꺼이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다.
네가 나 같고 내가 너 같다는 생각으로 차별 없이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이 자연스레 되지 않아 마음이 병들고 다치고,
개인문제가 사회적 문제까지 확장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인정하던 안 하던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무리 지어 사는 동물들 중
그것은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생존법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고, 힘이 돼주는 것은 서로를 위한 선택이다.
인간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집단을 형성하는 이유다.
그 이유에 이해타산과 실리득실을 뺀 순수한 의도의 자애와 연민을 더하는 것이고,
사심 없이 함께 웃고 울어주는 것, 그것이면 된다!
빈곤한 국가나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는 국가를 도우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눈에, 내 마음에 밟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것이 자비희사의 시작이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