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다.

커피도, 세월도

by 오렌지샤벳


위~잉 쪼르륵 기계음과 물결소리로 아침을 연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마시기 전, 커피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기계가 내는 소리와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공간을 채우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빛나는 아침햇살 아래, 깊고 어두운 물줄기를 향해 시선은 고정된다.

몽글몽글하고 폭신한 크레마의 수면 아래 가려진 것들이 목젖을 따라 몸속으로 가라앉는다.


커피가 맥박을 따라 흐른다.



“하!”

안도와 감동의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도를 따라 몸 곳곳으로 퍼지는 카페인의 영향력을 느낀다.

몸은 조정당하기 시작한다.

의지 없이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카페인을 연료 삼아 스스로를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커피 향과 맛에 취한 나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쓰임을 허락하고 만다.

커피가 자작자작 몸 안에서 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기호를 넘어선 유혹과

끊기 어려운 중독적 습관의 커피는

삶의 원동력이 돼버린다.

피곤이 일상이 된 것보다 커피 자체가 루틴이 돼버린 삶!

피곤은 핑계가 되고

만남은 커피의 수단이 되며,

글은 단짝이 되고 만다.

삶과 커피가 5:5의 비율로 섞인다.


향기는 기억을 부르는 재주가 있다.

잊혔던 기억이 향을 따라 스멀스멀 올라온다

스무 살 무렵,

과립 형태의 갈색 커피와 미색의 프림과

반짝이는 하얀 설탕이 만드는 하모니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달달하고도 쌉싸래한 오묘한 맛이 매력적이어서

홀린 듯 호로록, 호로록 연거푸 들이키곤 했었다.

추운 날 체온을 올리기 위해,

무료한 오후의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색함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이 모이는 자리 웬만한 곳에는 언제나 커피가 있었다.

그때부터 커피는 우리 삶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시절 커피는

형편과 자리에 따라

공장에서 나온 유리병 그대로 쪼르르 놓이거나

예쁜 도자기단지에 담기기도 했다.

마녀의 마법 재료들처럼!

둘둘둘!, 하나 둘 셋!, 둘하나!, 하나넷등 숫자로 표시되던 취향들!

취향을 기억하는 건 관심이자 센스여서,

커피를 잘 탄다는 건 일도 잘한다는 지표가 되기도 했었다.

똑같은 둘둘넷도 누가 타냐에 따라 묘하게 맛이 다르기도 했었다.


각설탕과 스틱 설탕이 테이블에 놓이던 커피숍의 시절이 지나고 커피는 황금기를 맞는다.

에스프레소부터 라테, 핸드드립커피까지…….

거리마다 건너, 건너 카페고

누구나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얼죽아’까지!

흐르는 세월에 따라

커피는 다방커피를 거쳐 블랙커피를 지나 아메리카노로 안착한다.


내 삶 속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달달 씁쓸한 첫 만남부터

강렬한 에스프레소를 거쳐

만만한 아메리카노로!

시간을 따라 커피도 나도 변했다.

이십 대의 혼란을 닮은 첫 커피!

쓰고, 달고, 고소했지만 느끼하기도 했던 커피의 맛!

마시고 나면, 입안에 남는 탁하고 텁텁한 느낌은 꽤 오래 입안을 맴돌았었다.


청춘의 맛도 그랬다.

어른이 됐다는 기대와 설렘이

실망과 좌절로 꽤 오래 텁텁하게 남았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던 객기와 패기가

세상에 섞이며 색을 잃고 흐려졌다.

멋모르던 호기는 세상의 기준에 밀려

뒤섞인 채 휘저어져야만 했다.

또, 달달하고 고소한 맛에 휩쓸리며

자신을 잃기 십상이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잘 섞여야만 선택받을 수 있었다.


섞인 것과 섞이지 않는 그 사이, 혼란


청춘이 늘 그렇듯 나는 세상에 저항했다.

혼란이 자신을 갉아먹을 것이 두려워

순수의 커피를 지향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주장,

나의 혼란도 색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커피의 순수가 지켜지길 희망하며

커피잔옆에 슬쩍 놓이던 설탕을 못 본척하곤 했다.

타협하지 않았다는 자부심!

나만의 고유를, 취향을 지켜낸 것에 혼자 뿌듯해하곤 했었다.



나야 그러든가 말든가.

세상은 다시 변했다.

다방과 커피숍대신 카페가 들어서며 다양한 커피들이 쏟아졌다.

블랙커피는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낯선 커피들이 외국물 먹은 것을 뽐내며

비엔나, 카푸치노, 라테 등등 낯선 이름으로

메뉴판을 채웠다.

낯선 이름들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세련된 이름과 메뉴판으로 젊음을 홀렸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젊음의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호기심과 도전 의식을 자극하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전히 취향을 탐구하던 여정은 기호를 낳았고,

사람들은 결국 자신만의 색을 찾아냈다.

전성기를 맞이한 커피는 삶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들었다.

아메리카노는 일상이 되고 밥은 걸러도 커피는 마셔야 했고,

밥보다 비싼 커피를 기꺼이 마시게 했다.


아메리카노 전성시대

나의 세월도 커피를 따라 흘렀다.

거대한 세상 앞에 존재조차 미미했던 나는, 속절없이 섞여 들어야만 했다.

나만의 색과 향을 찾기 위해 소리 없이 저항하기도 했다.

변하는 세상 속 다양한 길 앞에서 수없이 망설이고, 흔들렸으며, 헷갈렸다.

나를 알아가며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과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방커피에서 블랙을 지나,

에스프레소를 거쳐 아메리카노라는 확고한

취향을 얻기까지,

수없이 흔들리고 미혹됐었다.

혼란과 방황을 지나 나를 찾기까지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도 함께 흔들렸다.

생 원두가 뜨거운 불위에서 적당히 익어 제 색과 맛을 내기까지 고통을 참아낸 것처럼!

원두가 다시 갈리고 압력을 견디고 온도를 견뎌야 커피가 되듯이,

나 또한 인생의 뜨거운 맛과 나를 갈아내는 고통 속에서 나를 찾아야만 했다.


인간의 삶을 따라, 함께 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닮는다.

커피도, 마음도, 사람도!

스무 살의 내가 반백이 된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것들의 모든 이야기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향기는 여전히 추억을 불러오니까!

나와 함께한 모든 것들이 나를 채우고

나를 정의한다는 사실은 나의 서사가 된다.

원두가 긴 여정을 거쳐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 모든 것을 감당했듯이…….

평범한 우리 모두 일생을 다해 삶을 채우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린다.

이 시간, 이 공간의 유일무이한 커피는

나의 코끝을 자극하고 목젖을 따라 흐른다.

나의 삶도 흐른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고유의 색과 향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삶을 추출 중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 고유의 흔적을 이 별에 남기려는 중이다.

사진출처: pixabay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