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자유

안 해! 안 할 거야!

by 오렌지샤벳


피플 플리저(people pleaser)! 친절 강박자

‘타인을 기쁘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심리학 용어로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의견을 억제하는 성향이 있다.



나는 집안의 둘째다.

둘째인 사람은 안다.

둘째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물론 첫째도, 막내도 녹록지 않은 건

마찬가지리라는 것도 안다.

어디 쉬운 삶이 있을까?

첫째와 막내 사이에 낀 둘째는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에 가깝다.

더구나 내 경우 언니는 아팠고, 막내는 남동생이었다.

늘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착하게 살아야만 했다.

그래야 칭찬 한 번이라도 들을 수 있는,

꾹 참고 인내해야 눈길 한 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엄마는 늘 칭찬처럼 말씀하셨다.

“애가 배고픈데도 젖 달라고 울지를 않아서 얼마나 편했는지 몰라”

갓난아기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았던 건지,

원래 태생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 적 부모님이 외출하시고, 집에 수도관이 터져 물이 넘친 적이 있었다.

당황한 나는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돌아오신 부모님은 나를 칭찬하셨다.

대견하다고!

나는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세상을 다 얻은 듯 짜릿하고,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신났다.

부모님이 외출하시고

나는 또 바닥을 닦았다.

칭찬받고 싶어서!

두 번은 되지 않는 거였다..


착하게 말 잘 듣는 딸이 되자!

‘언니는 아프고, 동생은 어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걱정된 나는 결심했다. 도움이 돼야겠다고!

외할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쓸데없는 게 태어나서!"

소리를 하곤 하셨다.

저항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어차피 나는 사랑받기 힘든 조건에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픈 언니와 어린 남동생에게 주려면

내 몫은 당연히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허전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늘 떠돌았다.

누른다고 되지 않는 간절함만 가슴속에 채운 채!

눈길 한번, 관심 한 번에 목매며 버티고 있었다.

착한 어린이 상을 받아도,

장학금을 받아도

나는 늘 부족하고 모자랐다.



어느 순간부턴 포기에 가까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구나.

이번 생은 틀렸구나!

맞지나 않기를, 엄마의 모진 말들에

상처나 덜 받았으면, 그저 그 바람뿐이었다.

짹짹이라 불리던 나는,

체념을 배우며, 문제 일으키지 않는 순한 아이로 살았다.



나의 페르소나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크게 문제 일으키지 않는 유하고 순한 사람!

문제는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혹시나 상대가 싫어하면 어쩌지?

나를 떠나면 어쩌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학교폭력은

중학교를 함께 진학하며 이어지고 있었고,

몰매를 맞고, 걸레 빤 물에 머리가 처박히면서도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아니다, 나를 때린 아이에게 달려들어 뺨을 한번 쳐보기는 했다.

하지만, 친구라 믿었던 아이가

내가 맞는 걸 외면할 때 모든 걸 포기했다.

아 나는 안되는구나!

이번 생은 정말 틀렸구나

도대체 내가 사람들과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나는 점점 착하고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이 돼 갔다.

나는 떠밀리듯이 피플 플리저(친절과잉러)가 되었다.

유년기 신체적· 정서적 학대 속에 방치되면

피플 플리저가 될 확률이 올라간다.

부모의 조건부 사랑,

공부를 잘하면, 말을 잘 들으면…….

이런 조건이 충족될 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확신이 되면

자연스레 피플 플리저가 된다.

자기 의사를 표현한 후 따돌림을 당한 경우도,

눈치를 살피고 상황과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피플 플리저가 된다.



이쯤이면 궁금해진다.


나도 피플 폴리저 인지?

피플 플리저 Check List

1.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다.

2. 거절 후 죄책감이나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3. 항상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4. 내 의견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5.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 감정을 숨긴다.

6. 내가 힘들어도 남을 도와야 마음이 편하다.

7. 주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렵다.

8. ‘싫다’, ‘힘들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어렵다.

9. 다른 사람의 기분이 나쁘면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10. ‘나’보다 ‘우리’, ‘상대방’이 우선이다.

이중 5개 이상 해당된다면 피플 플리저일 가능성이 있다.

출처 pixabay


피플 플리저는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거절하고 싶어도 입으로는 승낙을 하고,

타인과 내 생각이 다를 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모두가 평화롭게 지내고,

분란이 일어나지 않아야 안정감을 느낀다.

인정과 칭찬에 목매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행동한다.



피플 플리저가 되는 경우가 어린 시절의 문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가 중요한 ‘고 맥락 사회’에 사는 아시아인들이 이런 성향이 강한 편이다.

고맥락사회 특성상 말보다 상황, 관계, 분위기를 중시하고,

직접적인 표현보다 은유적 표현을 선호한다.

관계를 망치거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공동체에서의 개인의 역할은 전부를 위한 하나로 존재한다.

개인의 성향이나 특성은 자연스레 무시된다.

우리나라에 ‘화병’이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자기 신념이나 생각이

사람들과 단체와 다른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버티기 힘들다.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

관계를 망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너무 튀지 마라! “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말 잘 듣고 모나지 않은 피플 플리 저는 이렇게 사회 속에서 양산된다.

사회는 피플 플리저가 되기를 강요한다.

그렇다고 사회가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느냐?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가, 사회가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의무이자 자격이며

그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문제가 된다.

결국, 우리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피플 플리저로 살아온 반백년의 결과로

나는 몸과 마음에 병을 얻었다.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외려 또다시 상처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예민하다.’, ‘자기 관리 못한다.’

비난받기도 한다.

억울하지 않은가?

평생을 남을 맞추기 위해 살았는데,

책임은 네 몫이라고 한다.

격하게 표현하면 열매는 내 것이고, 실패는 네 탓이다.

스스로 알아서 병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피플 플리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더 이상 ‘착하고 친절한 금자 씨’가 되어선 안 된다.



우선, 거절을 시작해 보자.

작은 제안부터 시도해 보며 차츰차츰 그 범위와 강도를 높여가 보자!

상대와 적적한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다.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싫은 것에 당당히 “No”를 외쳐야 한다.

직장이나 어려운 관계에선 어렵더라도,

주변의 관계에서부터 실천해 나가면 된다.

“못해”라는 수동적 자세 대신

“안 해”라는 주도적 자세로

자기 의사를 확실히 표시해야 한다.



처음에는 욕을 좀 먹을지도 모르겠다.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피플 플리저에게 적응해 있을 테니!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갑자기 왜 저러냐?”, “이상하다”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욕을 좀 먹으면 어떤가?

자신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세상만사 그렇듯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다 그러려니 한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한때 지나가는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지나가는 말이 되고 만다.



“내 세계가 끝나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세상이 난리가 나도,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 무슨 의미인가?

나를 지키고 내가 살아남을 때 이 세상은 의미가 있다.

남의 마음을 알아주느라 내 마음을 외면하지 말자!



타인에게 맞추느라 자신을 억제하고 통제하게 되면,

억울함이 쌓이고 울분과 슬픔, 분노가 차오르며 수동적 공격성이 올라간다.

‘왜 나만!, 나는 잘해주는데 왜 나한테는?’

억울함은 분노가 된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다시 자신을 통제하며 번 아웃을 겪게 될 수 있다.

습관이 된 태도는 점점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감정과 어긋난 행동은 잘못된 기름을 주유한 기계처럼 고장 나고 결국 멈춰버리게 된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 머물지 않고

불안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내가 불안하기 싫어서,

주변을 통제하며 주변 사람 모두를

고통에 밀어 넣는다는데 있다.

우리나라 같은 ‘고 맥락 사회’에서는 그 여파가 내 가정에 미치고 반향이 클 수밖에 없다.

얼마나 비극적인가?

피하고 싶고 괴로웠던 굴레를 다시 내 가족에게 씌우게 된다.

기억하자!

내가 나 스스로 중심을 잡고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일 때,

스스로 자유를 만끽할 때,

내 곁의 사람도 함께 자유로울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가둔 감옥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경험해보지 않았나?

그 감옥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들어가도 괜찮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부디 스스로 용기를 내기를,

자신을 가둔 감옥을 나와 자유로워지기를!

거절할 자유가 당신에게는 있다.



사진출처 pixabay

※ 참고 《거절하지 못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패트릭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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