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나를 키웠다.
악몽이 아닌 꿈을 꾼 건 오랜만이었다.
아빠는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 어귀 구석에서 갈피를 못 잡고 서 있었다.
내가 “아빠!” 부르자 못 들은 척 외면하며 오던 길로 돌아가려고 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다가가 와락 껴안아 붙잡아 버렸다.
아빠는 감색 양복에 몸이 갇힌 것처럼 버둥거리기만 했다.
얼굴도 없는 아빠가 내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다.
“왜 그래?” 물어도 답은 없었다.
그저,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만 느껴졌다.
나는 꿈속에서 아빠가 왜 그렇게 반가웠을까?
의아했다.
늘 악몽이었는데,
또,
아빠는 왜 그렇게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을까?
서로 닿을 수 없는 공간적 거리감이었을까? 심리적 거리감이었을까?
꿈속에서도 우리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서 있었다.
아빠의 모든 행동이 나의 심리의 반영이든 아니든
우리는 늘 허우적댄다.
서로가 불편하다.
그게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왜, 어떤 일들은
절대로 그 일이 발생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이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을까?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입은 사람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다.
부모는 완전체가 아니다.
부족하고 못생긴 것투성이 일수도 있다!
아빠의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그래선 안 됐었다.
어른이기에, 부모이기에, 자식이기에…….
폭력에도 중독성이, 전염성이 있던 걸까?
폭력이 주는 권위와 힘에 취해 어느 때부턴간 그 이유를 찾아다녔다.
휘두를게,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세상에 대한 울분을 화풀이하듯 쏟아냈다.
나는 그저 세상의, 사람의, 불행의 대명사일 뿐이었다.
가족 안에서 나의 자리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발 디딜 곳, 의탁할 곳 없이 어디론가 내몰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전의 세계는 파괴됐고, 이전의 나는 죽어버렸다.
저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죽어버린 거다.
나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가던, 죽었다고 믿었던 그 아이를,
오랜 세월이 흘러 나는 알아챘다.
내 속에서 웅크리고 자신을 알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줬다.
가끔 '똑똑' 두드리기도, '쾅쾅'대기도 했을, 그 아이를
너무 늦게 알아본 것이다.
이제는 내가 열어둔 문으로 열심히 들락날락거리며 제 존재를 드러낸다.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때때로 말을 걸고, 종종 아는 체하며, 가끔은 알아도 달란다.
모두 내 몫이 돼버렸다.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에
내가 날마다 초를 켜고, 내가 날마다 위로를 전하며,
그 아이를 키운다.
이제는 제법 나를 따라 늙어서 “허허” 거릴 줄도 알게 된 그 아이는,
이제 이해라는 것도 좀 하고 용서도 제법 할 줄 알아서,
그 마음씀씀이가 제법 깊어졌다.
아니 가끔은 나보다 더 넓고 큰 것도 같다.
모두의 외면 속에, 무책임에, 폭력에 멍들고 짓밟혔던 아이는 자라서
사랑을, 용서를 이야기한다.
행복을, 나눔을 이야기한다.
또 다른 아이가 폭력 속에서,
차가운 냉대 속에서 죽어가지 않길 바라며,
그렇게 세상에 있는 힘껏 외치고 있다.
돌아봐 달라고, 생각해 달라고, 살펴달라고!
혼자 외롭게, 상처받게 두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조금은 나아지고 행복해질 아이들을,
보듬는 어른들을 보게 되리라!
또, 스스를 껴안고 토닥여 줄 그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해지길 기도하듯 글을 쓴다.
사랑에 대해, 행복에 대해
함께 잘 사는 것들에 관해!
나는 오늘도 그 달콤한 꿈을 쓴다.
※미리 준비했던 주제가 아닌 글을 갑자기 쓰게 된 건 오랜만에 꾼 꿈 때문이었습니다.
꿈을 꾼 후 나도 모르게 키보드 앞에 앉았고,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쓴 이야기들을 올릴까 말까를 또 한참, 망설였습니다.
제 마음이, 제 이야기가 곡해될 수도 있고
저의 선의가 그저 누군가에겐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어서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이야기,
제 글들의 주제가 가진 목적과 제가 글을 쓰는 이유가 설명될 수 있겠다 싶어서
꺼내 놓을 용기를 가졌습니다.
오랫동안 꿈에 나타나지 않던 아빠가 그런 모습으로 강렬하게 꿈에 나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