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됐든 내가 좋아하는 걸 하세요
어린 시절 나는, 사는 게 참 버거웠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내 기도는
‘내일 아침 눈뜨지 않게 해 주세요!
진짜 신이 계신다면 제발 그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허락해 주세요!’였다.
죽을 용기까진 없던 내가 믿지 않는 신에게 매일 갈구하던 기도였다.
모두 제 살기 바빴고,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위로는
마당에 앉아 훌쩍이는 내 눈물을 핥아주던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안고 느끼던 따스한 체온과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성인이 돼서도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청춘은 늘 우울하고 무거웠고 슬펐다.
나는 내가 아리고 아픈데, 내 빼앗긴 시절과 고통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렇게 슬픔과 고통을 안으로 안으로만 삭혔다.
늘 사람들 곁에서, 괜찮은 척·행복한 척·해맑은 척하며 속으로는 헛헛한 마음을 채워줄
그 무엇을 찾아 굶주린 짐승처럼 사람을 찾고, 마음을 갈구하며 버티는 나날들이었다.
그 와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고 아껴주는 그 마음이 한없이 고맙고 좋았다.
그렇게 사랑을 배웠고, 내 모든 걸 걸기로 했다. 무모했다.
갓 태어난 동물이 처음 만나는 존재를 제 어미인 줄 아는 것처럼,
그 사람만을 따르고 사랑했다.
내 모든 걸 걸고!
그렇게 우리는 부부가 됐다.
물론 도피성의 감정도 일부 포함되기는 했었다.
가정을 이루고 소소한 행복도 느끼며, 마음을 주고받는 것도 조금씩 배워갔다.
내 사람들과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언제나 마음 한편에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늘 가슴속에선 찬 바람이 불었고, 뻥 뚫린 가슴은 늘 헛헛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평탄치만은 않았던 결혼 생활에서 오는 피로감과 절망감에도
내 가정, 내 식구가 생긴 것 같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냈다.
가정만은, 아이들의 행복만은 지켜내고 싶었다.
세월이 흐르며 경제적 안정과 가정의 평안한 행복도 이뤄냈다.
노력한 결과가 그 결실을 맺고 있었다.
모든 것은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 삶이 이제 조금씩 신나 지던 시점!
나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충격적이었다.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애들도 좀 컸고 이제 하고 싶은 것도 좀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 인생 가장 신나고, 이제야 내 삶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데 왜?
누군가 내 삶에 태클을 건 듯했다
행복은 네 몫이 아니라며, 강탈당한 듯한 기분에 화도 나고 분노가 치솟기도 했다.
누구라도 원망할 대상이 있다면 실컷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왜! 왜! 왜! 수많은 의문과 분노가 가슴에서 들끓어 주체할 수 없었다.
분노와 원망이 가라앉고 차분해지자 나는 내 안으로,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면서 이렇게 나약해진 적이 있었나?
나 스스로에 화도 나고 무기력한 나 자신을 용서하기도 어려웠다.
‘아, 내가 너무 나약해졌구나!’, ‘좀 살기 편해졌다고 나약해졌구나!’
나는 극복하고 싶었다.
마음의 병도, 몸의 병도!
이런 상태로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도,
내 가족을 지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일어서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짜내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결심하고 다짐하며,
다니던 정신과도 먹던 약도 끊었다.
매일 약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나를 견디기 힘들었고,
결국 이 난관과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이 건강해지려면 몸도 건강해져야 했다.
처음엔 혼자 외출도 힘들었지만, 열심히 운동하고 재활하며
이제는 어려운 동작도 거뜬히 해낼 만큼 체력도 키웠다.
지금도 하루 한 움큼의 진통제와 약으로 버티고 있지만,
예전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 갇혀 나를 괴롭히며 하루를 보내진 않는다.
왜 내게 벼락같은 고통이 찾아왔을까?
왜 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까?
감정은 썩는다. 속 썩는다는 말이다.
그 값을 다 치를 때까지 곪고 썩는다.
한번 고삐 풀린 감정은 묶어둔 맹수가 줄이 풀려 날뛰듯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공격 해댄다.
조절된다고, 관리한다고 생각하는 건 자기 위안이자 기만일 뿐이다.
속에서 그 몸집을 키우고 독성을 키우며 자라는 것이다.
외면하며 위안하지 말고 해소하고 해결해 줘야
감정도, 나도 건강해진다.
자신을 꾸깃꾸깃 넣어두고 밀어두지 말고,
지금 꺼내서 말하고 해결해줘야 한다.
하다못해 울기라도 시원하게 해 주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위로해 줘야,
건강한 마음과 감정으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행복하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니, 치를 것을 치르고 나니
나는 이제 자유로워졌다.
살면서 내가 이토록 나 자신에게 정성을 들였던 적이 있었나?
살피고 아껴주고 보살펴 준 적이 있었나?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일어나야만 했고, 겪어야만 했던 일이었다.
수면 아래로 감춰두기 급급했던 문제들을 무시한 채 그냥 버티고만 있었고,
언제든 올라올 문제였다.
모든 강제적인 것들은 저항감을 갖는다.
감정도 그랬다.
내가 외면하고 무시하고 누른 감정들은 숨죽인 채, 억눌린 채
상하고 곪았으며,
폭발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친 감정과 상처는 외면한다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었다.
음지에서 그 몸집을 키우며 병으로 자랐다.
'괜찮다! 괜찮다!'만 되뇌며 가라앉히고, 가라앉힌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인생 후반기를 위해 건강도 챙기고,
너도 잘 보살피라며 하늘이 준 기회와 배려였다는걸
지금 사는 게 버거운가? 그래서 행복 따위 엄두도 안 나는가?
몸이 아파도, 사는 게 힘들어도,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 쟁취해야 하고 힘들어도 살만해야 한다.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땐 그래야지!'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엔 행복하겠지?' 하고 있는가?
매일 자신의 힘듦과 고통을 외면하며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느라 자신은 못 챙기는 누군가에게,
내가 건네는 말들이 동기가 됐으면, 이유가 됐으면 좋겠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빛나는 조개껍질처럼
내 눈에,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그런 작은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했으면, 내일 말고 오늘 더 즐거웠으면!
누구 때문에 행복한 것 말고, 나라서 그냥 좋은 그런 행복이
모두의 마음속에 싹트기를,
조금 더 행복하기를 나는 매일 바라고 기도한다.
이 세상이 지금보다 한 뼘은 더 살만해지기를!
※모든 이미지는 AI를 이용 생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