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게 고삐를 쥐여주지 마세요!

아무것도 안 할 자유

by 오렌지샤벳



가끔 우리는 생각의 노예 혹은 신봉자처럼 생각의 꼬리를 끊임없이 따라간다.

생각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걱정과 불안들!

휴식의 시간마저 그것을 좇느라 머리는 쉬지 못하고, 과부하 걸린 기계처럼

열감에 머리가 띵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머릿속의 생각만을 하루 종일 따라가다 보면 삶은 균형을 잃고 만다.

모든 에너지가 정신으로 쏠리면서 우리 몸은 랙이 걸린 로봇처럼 정지된다.

그렇게 몸은 정신을 좇느라 고장 난 기계처럼 무기력하게 방치되고,

시들어가는 식물처럼 좀체 기운을 차리지 못하게 된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은 덩치를 늘리며 점점 더 과장되고,

두려움과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에너지를 생성한다.

부정적 감정은 다시 부정적 생각과 불안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상황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들고 실체화시키기도 한다.

“그것 보라고!” 내 말이 맞았다면서,

잘못되기를 바란 듯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생각은 어떻게 우리를 흔들어 놓는 것일까?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빼앗길 때,

우리의 생각은 현재가 아닌 미래나 과거에 머물 때가 많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미련이나 후회,

미래의 걱정이나 불안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실체가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형체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붙들려 현재를 소모하고 희생시킨다.



아무리 힘이 센 과거도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상의 세계에 먹이를 주고, 생명을 불어넣곤 자신을 괴롭힌다.

부정적이고 불안한 감정과 마음에서는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길 여유가 없다.

상황을 바라볼 안목과 통찰력이 생기지 못해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점점 늘어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우리는 왜 끝없는 생각들을 생성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됐을까? 어쩌다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생각이 없네!” 말하며 상대를 무시하기도 하고,

“생각 좀 하고 살자”며 비난하기도,

“생각이 있기는 하냐?”며 상대를 다그치기도 한다.

우리에게 생각은 그 사람의 존재자체이며

‘생각 없다’는 ‘개념 없다’가 되고,

생각이 없으면 대책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부족한데 노력도 안 하는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 말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목적으로 하는 말들이 아닐 수도 있다.

상대에게 가르침이나 일깨움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계속 생각해야만 한다고 다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혼자 있을 때도!

그렇게 생각의 더미와 무덤 속에 갇히고 만다.


어지러운 생각과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과부하 걸린 자신에게 열을 식힐 시간을 줘야 한다.

자신이 다시 운전대를 잡고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생각의 고삐를 스스로 잡을 수 있게 되면, 운전대를 잡게 되면

우리는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고,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단번에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를 괴롭힐지 알 수 없다.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기쁠 텐데, 행복해질 텐데!’ 스스로 세뇌시키지만,

안타깝게도 그 문제만 해결된다고 행복해지진 않는다.

우리는 또, 어리석게도 고민거리가 사라지면

새로운 문제를 발견해 다시 고민하고 다시 고민하기를 반복하며,

끝없는 생각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지고 만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문제집을 풀고 또 푼다.

그렇잖아도 피곤한 삶에 사서 걱정을 하는 것이다.



도장 깨기 하듯이 고군분투하지 말자!

나중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면 된다.

현재를 즐기고 느끼며 살기에도 짧은 세상이다.

삶은 여백을 가져야 한다.

악보에 쉼표와 음표가 함께 있어야 소음이 되지 않고,

그림에서도 여백이 있을 때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것처럼

삶의 곳곳에 여백을 놓아야 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삶에

여백이 들어와야 숨 쉴 구멍이 생긴다.

소리가 끊긴 여백의 평온과 안정, 고요함 속에서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들린다.

여백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추스를 힘을 얻고 휴식을 얻는다.

‘멍 때리기 대회’가 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시간의 사치를 부릴 시간을 주자는 취지의 대회이다.

아무것도 안 할 기회를, 시간을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또 금세 생각들이 치고 들어올 수도 있다.

생각은 생명이 존재하는 한 끝없이 분열을 반복하는 세포처럼,

우리 안에서 가지를 치고 또 친다.

그럴 때는 '아, 내가 또 생각을 했구나!' 알아차리고 생각을 멈추고

고삐를 넘겨주지 않으면 된다.

처음엔 어려울 수 있다.

계속 반복하며 알아차려주고, 또 알아차려 주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없는 상태가 더 길어지고 익숙해진다.

생각이라는 환영, 망상과 가상의 세계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열심히 자신을 건져내고 구해내면 된다.

생각이 지난 일이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자신을 끌고 가면 현재로 돌아와

'I’M OK!', ‘지금은 아무 일도 없어!’ 인식시켜 주면 된다.

생각이 더 이상 허구의 소설을 쓰지 않도록 힘을 뺏으면 된다.

미래의 문제는 미래의 내가 해결할 것이고,

우리는 현재 그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스스로에게 얘기해줘야 한다.


폭풍을 만나면 깨끗했던 물에 거품이 일어 시야가 탁해지지만,

폭풍이 지나고 나면 깨끗했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생각이 없는 상태는 고요한 물과 같다.

힘과 지혜는 단단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얻을 수 있다.

분열과 소란스러움, 혼란과 동요 속에서는 그 힘을 발휘할 여력이 없다.

파도와 물거품이 가라앉고서야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고,

본질을 알고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 복잡하고 힘들 때 생각이 날뛰지 않게 하려면,

감정이나 상황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지키며 조용히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레카”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을 발견한 것도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목욕을 위해 잠시 쉴 때였다.

지금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몰아붙이고 휩쓸고 있다면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쉬어보자!

나의 숨에 집중해도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잠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겠다.

잠시 생각이 소리를 멈출 수 있도록 지금을 느껴보자!

바람을 느끼고, 맛을 느끼고 풍경을 느끼고!

현재 함께 있는 사람 혹은 존재와 교감을 나누며 현재를 온전히 맛봐야 한다.

그러면 생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힘을 잃는다.

그렇게 현재로 감각을 돌리고 잠시 쉬면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잠시 문제를, 상황을 뒤로 미루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그 사이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의 소요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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