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안 고프다던 아이가 짜파게티를 먹고 웃었다
“저 진짜 배 안 고파요.”
오늘, 신욱이가 처음으로 나를 이긴 것 같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빡빡한 하루였다.
목요일이면 늘 그렇듯,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영어 숙제를 하고, 잠깐 게임을 한 뒤 영어학원에 간다.
그런데 오늘은 치과 일정이 끼어 있었다.
시간이 애매하게 비어버렸고, 그 틈이 문제였다.
치과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괜찮았는데
막상 집에 와보니 게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를 건드린 것 같다.
정말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게 아이 마음에는 꽤 크게 들어왔던 모양이다.
저녁을 뭐 먹을지 물었더니
배가 안 고프다며 안 먹겠다고 한다.
나는 안다.
배가 안 고픈 게 아니라, 게임이 더 하고 싶다는 걸.
그래서 말했다.
“게임하느라 밥 안 먹는 건 안 돼.”
그랬더니 갑자기 컴퓨터를 끄고,
툴툴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문 닫는 소리도 없이, 그냥 ‘휙’ 하고.
참, 웃기지도 않다.
방 앞에 서서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저녁 뭐 먹을 거냐고.
그러자 아이가 자기 나름의 논리로 말한다.
“저 진짜 배 안 고파요. 오늘 급식 맛있어서 두 그릇 먹었어요.
제가 이렇게 배 안 고프다고 할 때는 그냥 내버려두고
아침을 잘 차려주시면 안 돼요?”
뜬금없이 아침 얘기를 꺼낸다.
오늘 아침 달걀 스크램블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화가 날 뻔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럼 가정부를 고용해서 살아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알았다.
이게 다 그 이야기라는 걸.
괜히 심통이 났는데, 그 마음을 어디다 풀지 몰라서
엉뚱한 데다 꺼내는 말이라는 걸.
그래도 밥은 먹여야 했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밥 먹고 자는 게 공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배 안 고파도 한 숟갈은 먹고 가야 돼.”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짜파게티 해주세요.”
결국 나는 짜파게티를 끓였다.
그리고 아이는
아까 배 안 고프다고 한 게 무색할 만큼
코를 박고 맛있게, 싹싹 다 먹었다.
다 먹고 나서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아까의 투정도, 짜증도, 서운함도
다 풀려버렸다.
참 이상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렇게 마음이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사춘기는 아이에게만 오는 게 아니라,
엄마에게도 같이 오는 것 아닐까.
아이의 감정에 흔들리고,
아이의 말 한마디에 웃고,
또 금방 풀려버리는 나를 보면서.
그래도 괜찮다.
짜파게티 한 그릇으로
다시 웃을 수 있는 사이라면,
우리는 아직
꽤 잘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