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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사상에는 샤부샤부를?

by 김수기

"저는 엄마 제사상에 엄마가 좋아하던 샤부샤부 차릴게요"

뭐시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노무자슥이 "우리 엄마 부디 아프지 말고 오래 사셔요" 하더니 저런 말을 전화상으로 불쑥 내뱉었다. 아들이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설날이다. 아들은 시어른들께서 살아계실 적에 늘 "아이고 우리 장손이 잘 되어야 할 건데" 하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늘 불만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구식으로 말하면 장손이다. 나의 남편도 장손이라는 단어를 경상도말로 억수로 싫어했다. 생각해 보면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지만 그만큼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해를 했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던 서울내기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지만 우리 세대에서 정말로 제사를 끝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옛날에 비하면 눈곱만큼만, 아주 조금 달라진 의견을 피력했다. 제사를 지내기는 하되 아주 간소하게 차린단다. 그럼, 그 간소하다는 라인이 어디까지냐? 물으니 내가 이제 나이 들어 힘드니 가능하면 음식을 사서 하잔다. 아이고 성의없이 사서 차릴 바에는 내가 하겠다. 그랬다. 직장 생활할 때도 거뜬히 해내었는데 못하랴? 싶었다. 그러나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 서서히 기력도 부족하고 하기가 겁이 난다. 그래서 아들에게 쪽지를 보냈다. "네가 이제 제사 안 지내고 명절에 만나서 가족 여행도 가고 모두 쉴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혁명을 일으켜야한다."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전화가 두르르 오더니 건강하게 팔팔 살아있는 지 에미에게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하기사 내가 죽은 후 날자를 안 까먹고 그나마 좋아하는 샤부샤부라도 차려준다는데 뭐 서운해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고 진정했다. 그날 밤 꼬박 새웠다. 잠이 안 왔다. 안 그래도 늙어가면서 밤이 되면 깨다가 자다가 하기 일쑤여서 밤이 두려웠는데 말이다. 아들의 통화내용에 서운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 오는 순서 있지만 가는 순서는 없다고 했다. 우리 같으면 설사 그런 생각이 들어도 내뱉지 않을 것인데 이놈은 불쑥 내뱉었다. 그 소리를 듣고 지에미가 며칠간 잠 못 이룬 사실도 모르리라. 역시 요즘 뭐 MZ 세대들의 특징이 자기의 생각을 아주 당당하게 표현한다더니? 그러나 싶었다. 아님 자식 교육 잘못시킨 내 아들놈 표현 부족인가 싶기도 하면서도 씁쓸하다. 40년을 제사상 차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삼님께 우리 자식들 돌보아 주신다고 찰떡 같이 믿는 육십 대 할미이다. 이제 이생에서 샤부샤부는 그만 먹어야겠다. 저승에 가면 아들놈이 매년 차려준다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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