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요?" "이제 자려고 한다. 와?"
이쪽 안방에서 저쪽 끝방에 있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답장이 온다. 벌떡 일어나서 직접 가면 열 걸음도 안 되는 집구석에서 카톡질이다. 열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맞는 게 없는 우리 로또 부부는 은퇴 후 각자의 인생을 각각 즐기며 살고 있다. 뭘 하는지 남편 서재의 불빛은 새벽 2시까지 안방으로 비쳐 들어온다. 깨다가 자다가 하던 나는 벌써 나이 70을 바라보는 남편의 건강이 걱정되어 빨리 자라고 하지만 요거만 하고 요거만 하고 자꾸 그런다. 행동이 잽싸던 나는 요즘 들어 만사 귀찮아 방문 열고 들어가서 재촉하기도 싫어 카톡을 보냈더니 저런 답장이 또 온다. 새벽형인 나는 일찍 일어나 남편의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고 집뒤에 운동하러 간다. 갔다 오면 남편은 슬그머니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혼자 아파트 뒷산에 간다. 예전에 둘이 같이 올라갔다가 괜한 일로 투닥거리다가 내려올 때는 다른 코스로 각각 온 기억이 있어서 이제는 자기만의 시간에 자기만의 코스로 간다. 각자 개인별 약속이 없이 둘 다 집안에 있어도 하루 종일 집안이 조용하다. 이 방 저 방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남편은 책 읽기, 미드 보기, 영어회화공부하기(단어 외우기가 특기), 당구공부하기 등 나름대로 공부하는 쪽이다. 나는 오카리나연주 연습하기, 신변잡기적인 글쓰기, 제목 없는 요리하기, 뒷산 걷기, 실내골프연습하기로 시간을 보낸다. 둘이 일치하는 정점이 없다. 그러다가 서울에 사는 사위가 외손주와 영상 통화를 연결해 주면 우리 둘의 목소리는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대화한다. 사람이 반가운 것이다. 통화가 끝나면 다시 고요가 우리 집을 감싸고돈다. 어항 속 작은 구피의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이 보일뿐이다. 둘의 대화 소재가 많아서 시끌벅적하던 작년과는 완전 대조적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거실에서 둘이는 시답잖은 이야기라도 많이 했었는데 그만 이모양이 되었다. 이뻐 죽겠던 외손주도 이제 성큼 크니까 영상 통화도 잘 안 해준다. 거기다가 수시로 "엄망!"하고 콧소리로 에미를 부르던 아들놈도 장가가서 지 아내 하고만 논다고 전화가 뜸하고 딸내미는 늘 회사일로 바쁘다고 하니 우리가 성큼 전화하기도 눈치 보인다.
그러다 보니 둘이의 대화도 서서히 줄어지더니 이젠 뜸하다. 내가 뭐 정치문제를 이야기하면 대뜸 반격이 들어온다. 그래서 안 한다. 경제 이야기를 하면 또 생각이 다르다. 또 안 하게 된다. 아주 평범한 이야기로 오늘 날씨 좀 춥네. 그렇다. 오늘도 뒷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집안 구석구석 필요 없는 물건을 다 비우고, 더러는 나눔도 하고 나니 방은 비었고 간결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사람도 둘만 남았다. 이러다가 누가 한 사람 먼저 가고 나면 텅 비겠지 싶었다. 자식들 각자의 인생 산다고 떠나고 나면 남은 부모들은 빈둥지증후군을 겪는다고 하더니 지금 내가 체험하고 있구나 싶다. 남은 옆지기라도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을 해주면 좋으련만 도대체 언제쯤 저 남자랑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할까 싶다. 결혼기념일 40주년에 우리는 라면을 삶아 먹었다. 조금 아쉬워 그래도 가래떡 몇 개를 넣은 떡라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