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비바람 날씨 예고가 있으니 약속한 필드에 나갈지, 스크린으로 변경할지 의견 주세요." 내일 날씨가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억수로 예민한 A가 방송을 보고 단톡에다 날린 쪽지다. 근무지가 깊은 산골 학교였을 때, 나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듯이 내리던 날에도 SUV 차를 몰고 1시간을 달려 퇴근한 적이 있다. 뒷좌석에는 자기들 차는 얌전하게 모셔두고 내차에 잽싸게 앉은 두 명의 건장한 후배 남자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부장 노릇한다고, 나를 믿게 한다고 조금은 과하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칠게 불면 운전도 겁이 나고 외출하기도 꺼리는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할 때 노인의 특징으로 겁이 많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쉽게 결정을 못한다고 배운 것이 생각난다. 난 이제 노인인가 보다. 책임을 피하기 쉬운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겠습니다." 하고 도움 의견이 아닌 생각 쪽지를 보냈다. 그런데, "필드 나가도 좋고 스크린도 좋습니다."하고 B가 쪽지를 보낸다. 어찌하오리까? 역시 우리는 같은 무리인가 보다. 하하하. 평소에도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야.' 하는 사고방식으로 갈등이나 어느 한쪽 편드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B는 늘 저런 의견을 내세운다. 결국은 비슷한 성향끼리 모인 우리는 분명한 결정을 못 내리고 밤새도록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그것도 창바깥으로 손바닥을 내밀어 굵은 빗방울을 만져보고야 당일 이른 새벽에 필드 불가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추후 예약 시 추가금을 물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퇴직 후 해외로 다니고 있는 측근들과 달리 조신하게 집안 살림에 열중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보기에 답답했는지 제주도 가서 좀 쉬고 오자고 했다. 그것도 한달살이를 말이다. 1월 초에 그 말을 듣고 좋아라 했고 남편이 비용은 자기가 담당한다고 하며 모든 계획을 나에게 맡겼다. 그로부터 2월 말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 몇 개의 앱을 깔아놓고 들락거리며 비교하고 저장하였다. 한 달 방값이 와 이리 비싼지, 보증금은 왜 필요한지, 바닷가가 좋은지, 숲세권이 좋은지, 단독주택, 아파트, 복층 원룸, 빌라, 레지던스, 동네 안이냐 바깥이냐 등등 비교해 볼수록 엄청난 항목들이 나의 결정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 달 우리 집을 비워놓고 가도 되나? 하는 생각까지 머리를 복잡하게 하였고 더구나 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남편은 더욱 더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예약 가능 기간을 클릭하여 보니 아뿔싸, 우리가 가고자 하는 4월 한 달이라면 벌써부터 이미 예약을 해두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을 먹고 마주 앉은 남편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였더니 "아이고, 철저하게 알아보고 계획도 세우고 진행하고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평소에 나는 사전 답사도 하고 주변 환경도 살펴봐야 하는 그런 식의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살아오다 보니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지금의 이 상황에서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남편이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든지 숙소를 결정하자고 하였다. 이것도 노인의 특징인가? 아니면 내 안에 결정 장애라는 인자가 자리 잡고 있는 탓인가? 아니면 인생을 단순하게 살지 못하는 성격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