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아이는 중학교 3학년까지 국, 영, 수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지인들 자녀들은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고교과정 선수학습을 다하고 간다고 했다. 난 속이 탔다. 그러나 딸아이는 나의 바람에도 꿈쩍을 안 해서 손바닥에 힘을 가한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도 학원에는 안 간다고 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 할 무렵만 해도 시골에서 유학한 나말고는 거의 학원이나 가정교사를 통하여 영, 수를 진도 나간 친구들이 많았다고 해도 꿈쩍을 안 했다. 오히려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니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학교 공부만 충실히 해도 충분하다 하니 가만 두었다. 남편도 놔두라고 했다. " 할 놈은 언젠가는 스스로 한다." 면서 그것이 알게 된 진리라고 했다. 사실, 딸아이는 중학교 졸업까지는 학교 공부만으로 전교 몇 등을 했다. 고교입학 후, 1학년 중반까지는 좋았다. 고1담임 선생님이 극칭찬을 하셨다. 그러나 하늘이시여! 딸아이는 1학년 후반이 되고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오면 토하고 잠꼬대를 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왜?" 수업시간이면 친구들은 벌써 다 배워서 대부분, 복습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딸아이가 다닌 학교는 중소도시이지만 조금은 공부 잘하는, 중학교 때 우수한 아이들이 오는 학교였다. 그제야 딸아이는 '아하, 엄마말을 들을걸.' 싶었나 보다. 그래도 자존심 강한 딸아이는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니 부모들의 과잉 열성이 문제니 뭐라고 나름대로 변명을 하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지만 현실 앞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검정고시도 알아보고 대안학교도 알아보았으나 나 또한 자존심이 상했다. 명색이 교육자의 자녀가 공교육을 포기하고? 그리고 자식 공부를 어떻게 시켰나? 등등 온갖 상상만으로도 소설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는 지금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지원해 줄 것이다. 너를 믿는다. 엄마는 끝까지 믿을 것이고 그까짓 대학 안되면 천천히 가면 되고 그래도 안되면 안 가도 된다." 그랬다. 딸아이는 웃었다. 그리고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딸아이는 얼마간 안정을 찾는 듯하더니 조금씩 대화를 하고 늦은 시간까지 불 켜진 것을 보았다. 딸아이의 고3수능일까지 우리는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다. 애써 모의고사가 몇 점이니 묻지도 않았다. 수능을 치른 날, 딸아이는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내게 안겨 펑펑 울었다. 주위 사람들이 쳐다보아도 신경 안 쓰고 울던 딸아이는 말은 안 했지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모두 열심히 하는 아이들 가운데서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자존심 떨어지면서 과연, 왜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 등등 수많은 갈등 속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고득점은 아니지만 자기가 원하던 서울 중위권 대학에 합격을 하고 학교생활도 무난히 하더니 직장도 걱정 없이 잘 다니고 있다. 여기까지 너무 장황한 이유는 지금부터의 모순적인 상황이 나오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공부가 적성에 맞았든 맞지 않았든 앞의 저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사회인으로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또 엄마 역할도 힘들겠지만 해내고 있다. 3월 초에 외손주 초등학교 입학이라서 서울에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생각에 잠긴 나는 지금까지 지켜본 딸아이의 교육관을 보면서 우습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딸아이 본인은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점이 있니, 학부모의 자식에 대한 과잉 관심이 문제니 하면서 나름대로의 주장을 토해놓고는 자신이 학교 시절 엄마 속썩힌 것은 생각이 안 나는가 보다 싶었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한 손주에게 벌써 영어, 수학, 글쓰기 등 진도가 어마어마하게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본인이 엄마 말을 안 들어서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어서인가 싶어서 이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손주는 내게 그랬었다. "이제 할미는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고 자유라서 좋겠네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일을 어쩌면 좋을꼬? "00야, 학원 가기 싫으면 엄마에게 가기 싫다고 당당하게 말해.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축구하고 바둑하고 인라인스케이트만 하고 싶다고 해." 그랬다. 딸아이가 들으면 자기 자식 교육에 왜 엄마가 잔소리하냐고 하겠지만. 벌써 걱정이다. 한창 호기심 많고 학교에서 뭘 가르쳐주실까? 궁금하여 하루하루가 새롭고 가고 싶은 학교가 되어야 할 텐데, 선생님도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많아서 가르쳐주는 보람도 느껴야 할 텐데, "선생님 저 그거 다 알아요." 할 것이다. 나는 유명한 교육학자의 무슨 발달과정이론을 여기서 내세우고 싶지 않다. 현장에서 가르쳐본 경험학(?)상으로 아이들은 자기가 안다고 판단되면 거기서 멈추고 생각을 더 이상 안 하려고 한다. 그러면 가르치는 교수자나 배우는 학습자는 서로 재미가 없다. 큰일이다. 물론 선생님들께서 요즘 학부모님의 관심과 아이들 각자 개인의 선행과정을 다 파악하고 하시겠지만 '아, 선생님들 아주 부담이 크시겠다.' 싶었다. 조금은 물러나서 먼발치에서 봐주시고 아이들에게는 기다려주면 좋겠다. "할 놈은 언젠가는 스스로 한다." 이것이 조금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안 해도 걱정이고 또 그렇다고 너무 해도 걱정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할미이지만 걱정덩어리를 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