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이다. 어제 초집중한 6시간 장거리 운전과 배를 타고 거의 3시간가량 이동한 것이 피로감을 불러왔나 보다. 남의 집이지만 긴장이 풀려서 그렇게도 안 오던 잠을 깊이 잤다.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오늘은 5시간쯤 소요되는
제주 올레길 1코스를 걷다가 중간에 성산일출봉에 오르기로 하였다. 그래서 일찍 서두르기로 전날 약속을 하였었다. 집에서 준비해 온 간단한 반찬과 잡곡밥으로 소박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보통날 같으면 새벽형 인간인 내가 차려 놓으면 저녁형 인간인 남편은 11시쯤에야 아침 겸 점심을 먹던 스타일이었는데 오늘은 벌떡 일어나 밥 한 공기를 해치운다. 더구나 오후부터 제주는 비가 좀 많이 내린다 하니 더 서둘러야 했다. 우리는 8시 10분쯤 지나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시작되는 1코스 출발 사진을 찍고 센터에 들러 기념품을 샀다. 땅끝에 있어 말미오름이라고도 하는 두산봉을 올랐다. 천천히 걷기로 하였기에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지만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가쁘고 다리가 아팠다. 나이는 어쩔 수없나 보다. 중간에 몇 번 쉬다 보니 다들 휙휙 지나갔다. 말미오름을 올라 멀리 보니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왼쪽으로 우도가 보였다. 알오름은 낮으막한 구릉지였다. 옆에 남편이 손을 잡아주고 뒤에서 등을 밀어준다. 무뚝뚝한 남자가 집 떠나니 그래도 나를 챙겨준다. 종달리 동네 골목을 지나니 시골인데 참으로 예쁜 카페가 많다. 책방도 보였으나 구경만 하고 지났다. 여기저기 유채꽃도 이쁘다. 소금밭을 구경하고 바닷가 길을 걷는데 빗방울이 거칠어졌다. 우산을 쓰고 걸으니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옆에서 걷는 남편을 보니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사진도 열심히 찍어준다. 반면에 나의 포즈는 항상 차려자세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가지 모습을 눈에 담아두려고 하고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시흥리 해녀의 집을 지났다. 광치기 해변에 가서 도장을 찍고 차를 타고 성산일출봉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세찼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혼합되어 들리는 단체 여행객의 가이드 목소리가 들렸다. 궂은 날씨에 인파에 떠밀려서 정상까지 올랐다. 아, 평일인데도 내외국인들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렸다. 미끄러운 계단에 넘어질까 봐 우리는 서로 조심시키면서 올랐다. 특히 급경사로 이루어진 곳의 계단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우산까지 들고 걸었더니 빗물인지 땀인지 줄줄 훌러내렸다. 드디어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성산읍 시내가 다 보여서 고통뒤의 기쁨을 맛보았다. 오늘은 올레길 1코스와 성산일출봉까지 너무 무리한 것 같았다. 빨리 숙소로 오고 싶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가 다 되어 갔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시장을 보았다. 집에서 먹던 대로 샐러드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자고 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렇지 다시 오지 않을 지금 현재 이 시간, 귀하게 알차게 누리자 싶어서 넉넉하게 담았다. 우리는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점심도 굶고 먹은 거라고는 곡물라떼 한잔뿐이었다. 배가 고파 죽겠다는 남편을 옆에서 보니 미안했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힘들었지만 아무런 말을 안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빗줄기가 더욱 굵어지고 있었고 행안부에서 호우주의보 재난 문자가 왔다. 아래층의 어젯밤 젊은이들은 갔는지 차도 안 보이고 조용하다. 급히 된장찌개를 끓이고 약간의 고기를 구워 저녁상을 차렸다. 배고파 허겁지겁 먹은 후 시간을 보니 8시가 넘었다. 제주살이 2일, 너무 무리하게 움직인 것 같다. 금방 피곤이 몰려왔으나 눈은 또 안 감아진다. 거실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정원에 서 있는 커다란 야자수가 비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몸을 흐느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