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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향 Apr 04. 2024

[광치기해변]에서 [온평리 포구]까지

(제주올레길 2코스)

  4월 3일 수요일, 아침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쉬기로 했다. 젊지 않은 우리는 이제 관절을 생각하여 무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차려놓으니 집에서 새로 담가서 가지고 온 김치가 달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다시 묵은지를 볶아줬다. 신경질이 났다. 갈수록 음식에 대한 잔소리와 요구사항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안 했다. 서로 배려하며 제주도 한달살이를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그냥 원하는 대로 챙겨주기로 결심하였었다. 누구든지 곁에 있을 때 잘하여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 돌아가시고 더 강하게 느낀 바다. 설거지를 하고 나니 비가 멈춘 것 같았다.


8시 20분경, 숙소에 있으면 무료하니까 일단 올레길 2코스 출발점 광치기해변 주차장으로 갔다. 거기서 걷기 시작하여 종착점 온평리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우리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차를 세우고 나니 부슬비가 내렸으나 우산을 쓰고 출발점을 가서 우선 시작 도장을 찍었다. 어제 본 일출봉이 또 우리를 보고 있다. 하늘을 보니 반은 검은 구름으로 덮여있고 반은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여 걷기로 하였다. 광치기해변 주차장 앞에는 넓게 조성된 유채밭이 있었는데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샛노랗다. 오조리 둑방길을 걷다 보니 어마하게 만들어놓은 양식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버려져있었다. 투자비용이 아깝다. 식산봉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완만해서 걷기 쉬웠다. 다시 바다 위 테크길을 지나 수산리 동네를 지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람들은 다들 우리보다 걸음이 빠르다.


다시 대수산봉이라는 오름에 올랐다. 어두컴컴할 정도로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급했다. 다시 힘든 고비가 찾아왔으나 우리는 깡으로 쉼 없이 올랐다.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이 정상에 있었다. 단체로 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힘을 북돋우어 주는 목소리가 우리에게도 전해져 에너지가 솟아났다. 내려오는 길에 코를 벌름거리니 달콤한 숲냄새가 났다.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 그대로인 것이다. 비가 다시 오락가락했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거름기 많은 시커먼 무밭에는 군데군데 커다란 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상품가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일손이 부족해서 버려둔 것인가? 남편과 나는 아깝다고 하면서 걸으면서 주위를 빙 둘러 바라보니 낮은 오솔길들이 또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빙빙 돌고 있다.


숙소 근처인 혼인지에 들르니 또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다. 삼성혈에서 솟은 탐라의 시조 고, 양, 부의 혼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연못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16호 지정되어 있다. 우리도 옛날 혼인 복장으로 나무 인형뒤에서 얼굴만 내민 채 사진을 찍었다. 연못 주변은 벚꽃이 만발하였다. 다시 동네길로 접어들어 걷다 보니 바닷길이 나왔다. 고려말에는 삼별초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조선시대에는 왜구를 막기 위해 돌담으로 이루어진 환해장성이 나타났다. "탐라의 만리장성"이라도 한다고 하였다. 바닷가를 따라 다시 걸으니 2코스 종점인 온평리 스탬프가 멀리서 보였다. 걸음보다 마음이 앞서갔지만 완주한 늙은 우리 부부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남편이 내 마음과 통하였는지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하였다.


우리는 힘차게 마주쳤다. 택시를 부르니 5분 만에 도착하였다. 우리 차가 세워진 광치기해변주자창으로 가서 차를 타고 다시 마트에 들렀다. 쫄쫄 굶은 우리는 잔치국수와 떡볶이를 시켜 먹으니 눈이 번쩍 뜨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0분이었다. 우리가 젊었을 때의 패기를 생각하고 15.6킬로를 걸은 오늘 하루가 힘들었지만 씨익 웃음이 나올 정도로 참 좋은 하루였다.

(혼인지에서, 둑방길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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