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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향 Apr 06. 2024

아름다운 [제주올레해안길]

(제주올레길 4코스 걸었다.)

  4월 6일 토요일 제주살이 6일째다. 너무너무 조용한 숙소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거실에서 테라스 쪽을 내다보니 깜깜하다 못해 캄캄하다. 이런 어둠을 칠흑 같다고 하나 싶었다. 남편은 많이 피곤했는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그렇지, 저녁형 인간이니까 지금 잠이 아주 달콤할 것이다. 자기는 절대로 코를 안 골고 고상하게 잔다며 억울해하길래 녹음하여 들려준 적이 있다. 증거가 있으니 요즘은 "혹시 또 골더나?" 하며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 "아래 위층 사람들 다 들었지 싶다."라고 뻥을 치곤 한다. 자꾸 늙어가면서 체력이 약해지니까 걱정이다. "오늘은 어쩔 거야요? 많이 피곤하면 쉽시다요." "아니, 할 수 있다." 그런데 4코스가 해안선을 따라 주욱 걷기는 하는데 무려 19킬로이다. 우리 걸음으로 대략 6시간쯤 걸릴 것 같았다. 묵은지 김치김밥을 도시락으로 마련했다. 혹시나 식당이 없으면 또 굶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주에 온 지 벌써 6일이나 되었건만 우리는 그 흔한 흑돼지구이나 갈치찜을 먹지 않았다. 내일 일요일이면 서울에서 아들내외가 온다길래 함께 먹으려고 아껴 두었기 때문이다. 아들내외는 월, 화요일 연차를 내고 온다고 했다. 늘 바쁘다던 아들은 우리와 추억이 너무 없다면서 며느리와 같이 온다고 했다.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말자'는 것이 나의 관계지론이다. 그래, 오려면 오고 려면 가라 했다. 그러나 아들은 우리가 기다린다는 것을 아는 놈이다. 몸이 조금 힘들었지만 아들이 온다는 기대감으로 기분이 좋았다.  시작 시동에 힘이 찼다.


어제 마무리한 3구간 종착지이자 4구간 시작점 표선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제주민속촌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출발하기 전에 남편이 "해내겠나?"  하고 물었다. "걱정 "하고 대답은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해안선을 따라 주욱 걷기 때문에 단조롭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날씨는 구름이 약간 덮여있어서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남편은 하늘이 자기를 늘 돕는다나? 옆에서 나는 콧방귀를 피식했다. 9시 조금 넘은 출발 시간인데 가족, 부부, 연인, 서너 명씩 조직된 그룹, 자전거 팀 등 다양하게 걷거나 달리고 있었다.


표선면 시내를 조금 걷다 보니 당케포구가 나왔다. 당케는 당이 있는 케(경작지)라는 의미로 당은 할망당을 가리킨다. 포구사이에 바다를 향해 있던 길 끝에는 등대가 서 있었다. 해녀 탈의장을 지나니 오솔길이 대나무와 여러 가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나타났다. 키가 별로 크지도 않은 남편이 휘어진 나뭇가지에 머리를 박았다. 웃지도 못하고 어설픈 표정으로 바라보니 본인이 더 웃다가 화를 내기도 하였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고 있다. 35년 만에 복원된 해병대길을 걸었다. 제주올레길을 복원 시 해병대 장병들이 도와주어서 그렇게 불린다고 하였다. 오른쪽으로 농협수련원이 보였다. 그 앞으로 걸어 내려와서 우리 부부는 지나간 사람들처럼 돌탑을 쌓았다. 나는 소원 몇 가지를 손 모아 빌었다. 철없어 보이는 나의 행동이었으리라. 그러나 남편은 사진까지 찍어주면서도 말이 없다. 굳이 내가 말은 안 해도 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안다고 했다.


다시 해양수산연구원을 지나고 갯늪을 지나니 황근자생지 세화 2리가 나타났다. 세화 2리의 옛 이름 가마리의 해녀 올레는 '세계최초의 전문직 여성'으로 불리는 해녀들이 바닷가로 다니던 길이라고 하였다. 황근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무궁화 속 식물로 8월경에 노란 꽃이 핀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나무의 줄기모습이 특이하였다. 멸종위기인 이식물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대량 증식황근을 기증받이 복원하였다고 한다. 토산 2리 마을회관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오늘은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진을 멀리서 당겨 찍기도 하였다. 덕돌포구에 산긋불턱이 나왔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휴식하는 장소라고 하였다.


 옥돔마을이라는 태흥2리 포구가 나타났다. 쉼터에 들러 준비해 간 김밥과 사과를 먹고 다시 일어섰다.  벌포연대라는 모습과 설명이 적혀 있었다.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 시에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연락을 취했던 통신수단이라고 하였다. 멀리 남원읍이 보이는 카페에 들러서 아픈 다리를 쉬어주기로 하였다. 커피와 망고주스를 한잔씩 하고 일어서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이고야, 내 다리가 아닌 것 같다." 하니 옆의 사람들이 웃었다. 멀리 올레 4코스 종착지인 남원 포구에 도착하니 안내소 근무자가 나와서 아주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다. 먼 길 걷느라고 고생했다며 그리고 남편과 함께 서라며 사진을 아주 근사하게 찍어주었다.


택시를 불러 우리 차가 있는 제주민속촌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 차를 타고 아들내외를 위한 간단한 장을 보고 숙소에 오니 6시가 넘었다. 오늘은 바다만 보다가 바다로 끝난 하루였다. 동네 이름도 헷갈려 순서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타난 오솔길이 아름다운 길이기도 했다. 아이고야, 머나먼 4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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