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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Apr 10. 2022

경력직

경력직도 신입부터 출발했을 텐데...

"우린 경력직 뽑는데..."

"아니!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 가서 경력을 쌓나!!!!!!"


유명한 SNL경력직 에피소드!

다소 격한 재연이지만, 경력직만 뽑아서 경력직이 될 수 없는 신입의 마음이 요즘처럼 와닿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겨우 얻은 채용의 기회를 날리고 다시 기회가 오겠지 애써 위로해 보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서류 심사만 통과하면 면접만 잘 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놈의 경력! 경력! 경력..... 이미 이력서에 기재해 놓은 이력이 면접을 본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면접을 본다는 것은 경력 외에 다른 기대가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어필했다. 처음 면접을 볼 때 쿵쾅거리던 긴장감이 전혀 없을 만큼 면접을 보고 또 봤는데 마지막에 발목을 잡는 건 역시 경력이다.


영양사라는 직종의 특성상 경력이 중요한 것은 이해한다. 학교에서 지식으로 습득한 업무와 현장의 업무는 완전히 다르고, 대량 급식을 하는 주방은 늘 위생과 안전이라는 아슬아슬한 위험 부담을 안고 업무를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물차를 부르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기계가 갑자기 고장 나기도 하고, 안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고,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영양사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니 경력만큼 신뢰가 가는 이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학교경력만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는 유감이었다.


영양교사 임용을 준비하면서 학교에이력을 쌓을 생각이었던 내 계획은, 생각보다 높은 학교의 문턱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오로지 학교 경력만 보는 학교, 행정 시스템이 다른 곳과 다르기도 하고, 채용 절차 자체가 다른 업장보다 많이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다. 겨우 며칠 시간제 근무를 하더라도 요구하는 서류가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유연성 있게 봐주면 안 되려나. 학교 급식 시스템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업장이 달라도 본질적인 내용은 모두 통하는 업무들이다. 학교에서 다루는 프로그램을 접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제되는데, 실무적인 부분까지 습득하려면 실제로 근무를 해야 한다. 멘토 신청도 재직자만 가능하다니 채용이 되지 않는 한 관련 업무를 습득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래서 경력단절의 재취업이 어려운 모양이다. 채용이 되어야 경력을 쌓는데, 경력이 부족하다고 채용이 안되면, 경력은 어디 가서 쌓아야 할까. 경력직도 처음엔 신입으로 시작하는 거 아닌가.

졸업하고 경력 조금 쌓으려나 싶으면 찾아오는 결혼 적령기, 결혼과 육아로 경력 단절, 아이들 어느 정도 크고 나서 다시 일을 하려니 경력이 부족하다고 채용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저조한 출산율과 비혼자의 증가세가 과연 개인의 문제일까?


치열한 입시 지옥을 거쳐 비싼 등록금 내면서 따낸 대학 졸업장과 자격증이다. 결혼도 출산도 적령기가 있다고 해서 잠시 보류해 둔 경력인데... 육아를 오롯이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있어도 쌓을 수가 없던 경력인데...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보이고 엄마들의 취업문이 닫히는 것은 보이지 않나 보다. 출산장려금 만으로 설마 출산율이 정말 올라간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능력도 열정도 성실함도 갖춘 많은 엄마들이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벽이 안타깝다.


아이가 한 번씩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나는 그러라고 한다. 행복한 부모도 좋지만,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얻는 행복이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예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엄마도 좋지만, 내가 사라져 버린 내 삶은 결국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세 시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내 삶도 준비해야 하는 시대이다. 과거처럼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기에는 아이들 본인의 삶도 너무 무겁고 치열한 세상이다. 아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지 부담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더 일이 필요한 지금인데.... 경력 단절 신입은 경력을 어디 가서 쌓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학교 경력만 원하는 학교에 지쳐서 결국 다시 일반 사무직... 세상은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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