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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Apr 16. 2022

채워지고 싶어, 나도 한 번은.

- '나의 해방 일지' 중에서-

어두워 보이지만 실상은 나의 모습이고, 행운이라도 찾아올 것 같지만 그런 일은 드라마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너무 현실이라 현실 같지 않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그랬다.


지안의 감정이고 아저씨의 감정인 줄 알고 따라갔던 드라마 속 수많은 감정들은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나의 감정들이었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세상, 나한테만 찾아오는 듯한 불행, 그럼에도 희망이 보고 싶은 마음, 그런 감정들을 불편함 없이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며 해소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드라마였다.

다시 그런 드라마를 만날 수 있을까 했는데, 나의 해방 일지 인트로를 보니 풀어가는 서사들이 낯익은 느낌이다. 같은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미정을 포함한 세 남매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일상이다. 수도권이나 서울에서 생활해본 적 없는 나 또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이다.


"집이 좀 멀어서......"

 미정의 이 말 한마디에는 많은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환할 때 퇴근을 해도 집에 돌아오면 밤이라고 투덜거리는 언니의 하소연, 연인을 데려다주며 함께 하는 시간보다. 집으로 돌아갈 한 시간 반이라는 거리가 더 부담스러운 오빠, 회사에서 권하는 동호회조차 선뜻 가입하기 어려운 퇴근 거리.

멀리서 보면 단순히 경기도에서 원거리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의 일상이지만, 한 발짝만  다가가면 보인다. 대파 농사와 싱크 일을 생업으로 하시는 부모님이 계시고, 그런 부모님을 두고 독립하기 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삼 남매의 결핍 가득한 이야기. 연애도 소개팅도 회사 동료들과의 사소한 일상도 세 남매에게는 사치이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짝을 찾겠다고 울어대는 귀뚜라미보다 못하다며 아무나 사랑하겠다는 언니, 차가 없는데 어디서 키스를 하냐며 중고 전기차라도 사겠다는 오빠, 전 여자 친구에게 가버린 남자가 남겨준 신용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미정. 세 남매의 결핍 가득한 일상을 보고 있자니 상황은 다르지만 저들만큼 아니 세 남매보다 더한 결핍을 안고 살아내야 하는 내가 보인다.




"엄마, 우리는 중산층이야? 아니야? 가난한 거야?"

언젠가 아이가 물었다. 가난한 건 뭐냐고.

글쎄...


나라에서 상위 7프로(??)를 제외하고 다 준다는 재난지원금도 못 받고, 지역 의료보험은 왜 그렇게나 나온 건지... 그런 걸 보면 가난하지 않은 것도 같고.

매월 돌아올 카드값을 생각하며 불필요한 지출을 빼고, 필요한 지출은 쪼개고 쪼개는 걸 보면 가난한 것 같기도 하고.


가난은 불편한 거라고 했던 것 같다.

가난이 별 건가... 매월 수입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고, 가지고 있는 자산 없고, 아이 학자금을 일시불로 낼 수 없고, 차가 있어도 기름값 무서워 마음껏 타고 다닐 수도 없고, 요기요 주문 금액을 한 달에 얼마 이하로 맞춰야 하고, 계절이 바뀐다고 옷을 살 필요까진 없고...뭐 대충 그런 거 아닐까.


"그래도 우리는 갖고 싶은 게 많이 없어서 다행이네."

라는 아이 말에 , 그래 너무 다행이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웃픈.


모두 부자로 살 순 없겠지. 그렇지만 굳이 내가 가난할 필요도 없잖아. 그런 투정을 했었다.

한 번은 채워지고 싶다는 미정의 말에 내 속을 들켜버린 기분이다.

늘 결핍 가득한 삶을 살면서 나도 그런 꿈 한 번쯤은 꾸어보고 싶었다. 그 결핍이 억울할 때도 많았지만, 살면서 굳은살이 박혔다고 해야 하나. 점점 그냥 꿈이나 한번 꾸어보고 싶은 정도로 덜 억울해진 듯도 하다.


 '나의 아저씨'에서도 구겨진다는 표현을 썼던 작가님은 이번에도 비슷한 표현을 쓰셨다. 우리 세 남매 쨍하게 볕 들 날 한 번은 왔으면 좋겠다고, 구겨짐 하나 없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미정의 나레이션이 내 마음 같다.


자신들의 결핍이 억울하다 속상하다 늘 투덜거리는 언니 오빠와 다르게 아무 말 없이... 결핍도 삶이려니 일상이려니 내 몫이려니 ,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내던 미정의 마음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채워지고 싶다고.

한 번쯤은 , 나도, 채워지고 싶다고.

미정의 대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따라 말하고 싶어졌다. 채워지고 싶다고, 한 번쯤은.

작가님이 그런 미정을 어떻게 채워주실지, 그들의 구겨진 삶을 어떻게 펴 주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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