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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Jul 25. 2022

고래 이야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인트로부터 스토리 내내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는 고래의 이미지는 강하고, 커다랗고,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영우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헤엄쳐 다니는 고래( 세상에!! 고래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고래가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인지 생각조차 못해본 나)는 영우의 쉼이자 호흡이자 꿈이자 그리움 같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완치가 어려운 콤플렉스를 안고 사는 영우의 삶이 얼마나 두렵고 고단한지는 짐작이 다일뿐 , 알 수는 없다. 드라마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날 것의 진실을 두려워한다. 내 현실 같아서, 내 삶 같아서. 우영 우가 자 팩스 펙트 럼을 완벽히 극복하는 스토리였다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판타지를 원한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이야기이다. 영우가 자폐 스펙스 럼이라는 장애를 혼자서 오롯이 감당하기란 어렵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보고 싶어 하는 모순의 양가감정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어려운 일이야.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너는 선녀지만, 나는 자폐인이니까."


법정에서 자신의 자폐 스펙트럼을 밝히고 변론을 시작하는 우영우 변호사는 당당하다. 내가 자폐인이니까 감안하고 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자폐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변론을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그냥 자신의 장애가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밝히고 시작하는 당당함. 그 이상도 이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우는 사랑스럽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지만, 그것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고래였다면 , 엄마는 날 버리지 않았을까?"

왜 고래일까 내내 궁금했다. 가끔 죽은 아기고래 곁을 떠나지 못해 맴도는 엄마 고래의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아기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 고래의 마음을 이용하여 고래 사냥을 하는 인간을 잘 알면서도 끝내 떠나지 못해 죽게 되는 엄마 고래의 이야기. 그렇게까지 가슴 아픈 모성애는 아니더라도 그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영우의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소덕동 언덕 위에서 함께 마을을 바라보았을 때...

좋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냐는 엄마의 물음에 영우는 이렇게 대답한다. 자신이 딸인지 모르는 엄마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왜 버렸냐는 원망보다, 

그저 그리웠다고, 

많이 그리웠다고... 대답했다.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큰 마음이 아닐 수도 있을 거 같다.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그저 같은 마음이었으면 하는 것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조금의 욕심...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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